본의 아니게 지난 주에 이어서 다시 야구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지난 주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야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프로야구 순위 2위 팀과 3위 팀 간의 경기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투수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모처럼 주자가 나가더라도 투수의 역투와 수비의 선방으로 점수를 내지는 못하지만 순간순간 눈을 뗄 수 없는 경기였습니다. 그런 경기가 한 순간에 한 쪽 기둥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5회말 2사 만루의 상황, 3루수의 멋진 수비와 2루 송구로 이어져 2루로 달려 오던 주자가 아웃되고 이닝이 끝나려는 순간 느닷없이 2루심이 세이프 판정을 내린 것입니다. TV에서 다시 보여주는 슬로우 모션을 보면 세이프가 아닌 것을 확연히 알 수 있고, 구태여 슬로우 모션을 재생하지 않는다 하여도 한 눈에 아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타이밍이었고, 플레이도 매끈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오심은 번복되지 않았고, 오심에 펄펄 뛰던 투수는 평정심을 잃어 난타 당하면서 경기는 일방적으로 승패가 갈리면서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관련기사: 2013.6.16. LG:넥센_오심)
오심에 관한 한 야구의 본 고장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00년이 넘는 야구의 역사만큼이나 미국의 야구도 오심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 야구에서 최근 가장 커다란 오심으로 명성(?)을 날렸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오심으로 인하여 날아간 퍼펙트 게임입니다. (관련기사: 연합뉴스_2010.6.3.MLB오심_퍼펙트게임) 이 기사를 보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팀의 투수 아만도 갈라라가(Armando Galarraga)는 9회 2 아웃까지 잡아 놓고 마지막 한 타자를 1루에서 아웃 시켰음에도 1루심의 오심으로 세이프가 선언되면서 퍼펙트 게임의 기록이 물거품이 됩니다. 오심을 범한 1루 심판은 경기후 비디오 판독을 통하여 자신이 오심을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날 오심을 하였던 1루심이 바로 다음 날 경기에서 주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감독은 아만도 갈라라가에게 배팅 오더를 주심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아만도 갈라라가는 흔쾌히 이에 응하여 배팅 오더를 들고 주심에게 다가갑니다. 전날 자신의 오심으로 인하여 퍼펙트 게임을 날려 버린 것을 알고 있던 주심은 배팅 오더를 자신에게 건네 주는 아만도 갈라라가를 보고 깜짝 놀라며 회한과 사과의 눈물을 또 한번 흘립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만도 갈라라가가 주심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용서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비록 오심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인간적인 휴먼 드라마가 이어진다면 아쉬운 마음이야 크겠지만 그래도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판은 사람이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 (imperfect creature)입니다. 그러다 보니 완벽한 판결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고, 그로 인한 불평등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또한 더 큰 문제입니다.
1980년대 중반, 소위 5공 시절에 있었던 일 가운데 ‘불실기업’에 대하여 철퇴를 내린 일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매경_1986.5.6._불실기업) ‘불실기업’이라는 단어는 원래 한자 ‘不實企業’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말 사전에 따른 올바른 발음은 ‘부실기업’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최고 권력자가 이를 ‘불실기업’으로 읽자 모든 언론기관이 ‘불실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신문에서는 한자로 ‘不實企業’이라고 표기하여 ‘불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나, 방송 뉴스에서는 모든 아나운서가 ‘불실기업’이라고 발음하여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의 ‘불실기업’ 정리 방침에 따라 정부 주도하에 기업의 ‘불실’ 여부와 회생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 ‘불실기업’들은 퇴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때에 퇴출된 대표적인 기업이 ‘국제그룹’입니다. 실제로 국제그룹의 경영상태가 얼마나 부실하였고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었는지에 관하여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심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후에 최고 권력자가 바뀌자 이에 대한 불복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관련기사: 국제그룹반환소송_1988.4.2.) 국제그룹을 되찾겠다던 전(前) 회장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 당시의 기업환경으로 보면 정부가 지원을 하여주느냐 아니면 퇴출시키기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갈릴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정부가 국제그룹을 도와주고, 살려내겠다고 결정하였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 당시 국제그룹의 퇴출을 결정한 정부가 일종의 오심을 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근 금융가에 있었던 또 하나의 오심은 최고경영자의 책임에 대한 금융감독기관의 무리한 징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자가 재임시에 있었던 투자에 대한 결정에 대하여 임기 후에 손실이 발생하였다고 하여서 재임시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계를 내렸고, 이에 불복하는 전임 최고경영자가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결과는 금융감독기관이 무리하게 칼을 빼들었다는 판결로 종결되었습니다. (관련기사: 머니투데이_2013.2.14_황영기) 결과론적으로 금융감독기관이 오심을 하였고 불필요하게 대법원까지 기나긴 송사가 이어지면서 시간적, 경제적으로 양쪽이 모두 피해를 보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최고경영자에게 오심으로 징계를 내린다면 앞으로는 어떤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도 몸바쳐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감독기관의 오심으로 인한 피해는 전체 금융기관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다시 금융소비자인 전국민에게 불필요한 비용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심 없는 세상에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실수로 오심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오심을 인정하고 이를 수습하려는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야구의 오심은 심판의 사과와 해당 팀, 선수들의 너그러운 용서로 휴먼 드라마로 끝을 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금융감독기관의 오심은 자칫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하고 전체 금융시스템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보다 공정한 금융시스템, 오심 없는 금융감독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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