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크루즈 (Cruise) - 2013. 7. 5.

jaykim1953 2013. 7. 10. 15:02

저는 지난 주말에 서울을 떠나 알래스카에 와 있습니다. 앵커리지에서 출발하여 매킨리 마운틴, 데날리 국립공원을 3일 동안 둘러보고 다시 앵커리지로 내려와 크루즈 배에 올랐습니다.

 

난생 처음 타보는 크루즈인지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첫 시도에 대한 막연한 공포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저희 부부와 함께 제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두 10 쌍의 부부가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이미 크루즈를 여러 번 경험한 친구도 있어 좋은 가이드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을 배 안에서 생활하며 크루즈를 즐겼습니다. 라인 댄스, 볼 룸 댄스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도 하고 쇼도 구경하였으며 갑판에 올라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근처에 떠다니는 유빙(물 위에 떠도는 빙하 조각)도 구경하였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배가 크루즈 선박 가운데에는 작은 축에 든다고 합니다. 빙하 사이를 헤짚고(?) 다니려면 배가 작아야 한다는 설명이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제 눈에는 이 배도 어마어마하게 커 보입니다. 어젯밤 극장에서 쇼를 볼 때에 모인 관객이 수 백명이었고 그 만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이 배 안에 있다는 것은 배가 얼마나 큰 지 쉽사리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또 하나의 이벤트로 선장이 주최하는 환영 파티가 있었습니다. 저도 나름 나비 넥타이를 매고 검은 색 정장을 차려 입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선장과 함께 샴페인 폭포 (샴페인 잔을 피라미드 식으로 쌓아 올리고 맨 꼭대기에 있는 잔에 샴페인을 부어 흘러 내리게 하는 것)에도 참여 하고 기념 촬영도 하였습니다.

 

이 배에서 한 가지 불편한 것은 인터넷 연결입니다. 저는 $69를 주고 100분을 사용하는 플랜을 샀습니다. 인터넷에 로그 인 하여서 꼭 필요한 것만 사용하고는 바로 로그 아웃 합니다. 지난 3일 동안 그렇게 아껴 썼지만 벌써 58분을 썼습니다. 이 곳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생각보다 사용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크루즈를 하면서도 '개 눈에는 X 만 보인다' 고 저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배 가격은 얼마나 할까?  그리고 뱃 값을 어떻게 조달하였을까?'

 

이 만한 배를 현금을 주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ISA(Installment Sale Agreement)라는 리스(lease)를 합니다. ISA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PF)의 대표적인 상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부실을 야기하여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ISA를 설명하려면 여신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여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1) on credit (순수 신용) (2) secured (담보), (3) guranteed (보장) 의 세 가지입니다. (1) 순수 신용은 말 그대로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을 믿고 아무런 담보나 보증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2) 그 다음으로 담보를 이용한 금융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산 담보(asset backed)입니다. 부동산, 매출채권 등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현금 흐름 (cashflow) 담보입니다. 미래의 수입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보장은 제 3자의 신용을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이 경우에 '보증'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의 보증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거나, 국영기업체의 채권발행에 정부가 보증을 서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현금 흐름을 담보로 하는 여신입니다. ISA를 비롯하여 일반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자산 담보 금융과는 많이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ISA를 이용한 금융에서는 배의 소유권은 대개 SPV (Special Purpose Vehicle)라고 불리는 특수목적법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흔히 페이퍼 컴패니라고 부릅니다.)에게 주어집니다. 배의 소유권을 가진 SPV가 금융기관에서 배를 담보로 돈을 빌립니다. 그런데 배는 비행기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새 것을 구입하였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있어 담보로서의 가치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소유하고 있는 SPV도 껍데기뿐인 회사일 뿐 자산이라고는 배 한 척을 달랑 가지고 있으므로 그 회사를 보고 신용을 공여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그 배를 빌려서(리스하여서) 운영하고 수익을 올리는 운영 회사(크루즈 회사)가 지급을 보증합니다. 그런데 배의 가격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배의 가격을 담보할 만한 신용능력이 있는 선박운영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미래에 기대되는 영업수익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에 금융기관은 이 배를 운영하여 돈을 얼마나 벌 것인지를 면밀히 분석하게 됩니다. 배를 운영하여 올리게 될 미래의 수익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돈을 빌려 줍니다.

 

일반적으로 여신을 일으킬 때에는 맨 먼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결정합니다. 신용으로 여신을 일으킬 것인지 아니면 담보를 받을 것인지. 신용으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담보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담보로 제공된 자산 혹은 현금흐름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보장(보증)을 요구하게 됩니다. 보장이 제공되면 이 번에는 다시 보장을 제공하는 법인, 회사, 사람 등- 보증인- 의 신용을 검토하여야 합니다. 보증인은 대출을 받는 사람보다 신용 상태가 더 좋아야 합니다. 보증인의 신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보증인에게 담보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신용분석(credit analysis)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책입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의 신용을 검토하고 담보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분석을 기초로 여신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집니다. ISA, 혹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면밀한 신용분석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너무 쉽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선박의경우 어느 나라 선박 혹은 선적(선박의 등록 국적)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흔히 듣는 선적 가운데 하나가 파나마입니다. 예를 들어 선적이 파나마라는 것은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SPV가 파나마에서 법인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나마 선적의 선박이라 할지라도 이를 리스하여 운영하는 회사는 다른 나라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박회사에서 리스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나라 회사도 리스하여 운영할 수 있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배도 제 짐작으로는 껍데기뿐인 어떤 SPV의 소유일 것이고, 이 배를 운영하는 크루즈 회사가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것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ISA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에서는 현금 흐름에 대한 주도면밀한 분석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타고 있는 크루즈 선은 선적이 어떤 나라에 등록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제공한 금융기관은 알 수 없으나, 이 배를 리스하여 운영하는 회사는 프린세스 크루즈 회사입니다. 그리고 제가 타고 있는 배의 이름은 아일랜드 프린세스입니다.

 

제깐에는 휴식을 취한답시고 크루즈 여행을 떠나 왔는데 배 안에서 선박 금융 생각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요즘 젊은 세대의 표현에 따르면; 허걱  ㅉㅉㅉ  ㅠ.ㅠ  OTL


다음 주에 서울에 들어가서 새로운 글을 배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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