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세(稅)- 2011. 12. 2.

요즈음 들어서 ‘버핏 세’(Buffett 稅)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세계 최대 거부(巨富) 가운데 한 사람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 자신의 세금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고, 자신을 포함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http://www.guardian.co.uk/business/2011/aug/15/warren-buffett-higher-taxes-super-rich ) 자신의 세율은 19%였으나 (2006년 소득 기준) 자신의 직원들은 33%의 세율을 부담하였다는 것입니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득이 많은 자신이 부하 직원들보다도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또한 상속세를 강화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폈고, 자본주의가 플루토크라시(plutocracy: 부(富)에 의한 지배)가 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고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그의 논리를 일명 ‘Buffett Rule’이라고 부르며, 부자에게 더 많이 물리자고 주장하는 세금을 ‘Buffett Tax’ (버핏 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과연 버핏의 주장은 현실적인지, 그리고 그의 논리에 오류는 없는지 한번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2010년도 소득에 대한 버핏의 세금 보고를 살펴보면; 총 소득은 약 $6천만 ($62,855,038)이고, 이 가운데 세금 면제 수익 (지방채-Municipal bond- 이자, 미실현 이익 등), 기부금 등 소득 공제 금액이 $23,040,254 였으며, 과세 소득(taxable income)은 $39,814,784 였습니다. 소득 공제를 하고 나서도 거의 $4천만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소득을 올린 것입니다. 그가 2010년도 소득에 대하여 지급한 연방 소득세는 거의 $7백만에 육박하는 큰 금액 ($6,923,494) 이었습니다. 이는 과세 소득 기준으로 계산하면 17.4%의 세율이 됩니다. 일반 임금 소득자를 기준으로 17.4%의 세율이 적용되려면, 기혼자의 경우 연간 소득 $98,000, 미혼 독신의 경우 연간 소득 $49,000 입니다. 기혼자의 경우 연간 소득이 $9만 8천-을 넘게 되면 버핏보다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버핏의 소득 신고 금액은 90만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격주 발행 비즈니스 전문잡지 Forbes의 금년도 10월 14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관련기사: http://www.forbes.com/sites/matthewcampione/2011/10/14/warren-buffetts-tax-return-and-what-congress-already-knew )

소득공제를 하고 난 후에도 연간 $4천만에 육박하는 거금을 벌어 들이는 버핏의 세율이 어떻게 연봉 $10만을 받는 월급쟁이와 같아질 수 있는지 얼핏 보면 불가사의해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세율과 과세제도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이런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미국의 소득세는 크게 일반소득(ordinary income)과 자본소득(capital gain)으로 나뉩니다. 일반소득은 자본소득을 제외한 모든 소득- 임금, 이자, 지대, 이윤-을 포함하며 세율은 최고 35%입니다. (소득세 누진율 자료; http://www.consumerismcommentary.com/2010-federal-income-tax-brackets-marginal-rates.)

2.    자본소득은 다시 단기 자본소득(short-term capital gain)과 장기 자본소득(long-term capital gain)으로 나뉩니다. 자본소득의 단기-장기 구분의 기준은 1년, 즉 365일입니다. 투자 대상물- 부동산, 채권, 주식 등-을 매입하였다가 365일 이내에 되팔아서 남긴 이득은 단기 자본소득이 되고, 366일 또는 그 이상 보유하였다가 팔아서 이익을 실현하면 이는 장기 자본소득이 됩니다. 단기 자본소득의 최고 세율은 일반소득과 같은 35%이며, 장기 자본소득의 최고 세율은 15%입니다.

2010 소득 신고를 보면 버핏의 소득 가운데 임금으로 신고된 금액은 $5십9만9천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소득은 장기 자본소득으로 신고되었습니다. 4천만이 조금 못 미치는 소득 가운데 $6십만 정도의 임금소득에는 세율이 최고 35%(실제로는 각 소득 구간별 세율이 달리 적용되어 실제 세율은 35%보다 낮음)가 적용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금액(약 $3천9백2십만)에는 세율이 최고 15%가 적용됩니다. 따라서 전체 소득에 대한 평균 소득세율은 17.4%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장기 자본소득에 대하여서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장기 자본소득에 대하여 세제상의 혜택을 주어 주식과 부동산의 장기 보유를 장려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안정과 부동산 시장에서의 투기성 단기 매매를 억제하려는 것입니다. 장기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이러한 세제 지원은 지나간 약 90 년 동안 미국의 부동산 시장과 증권 시장의 안정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 왔습니다. 만약에 부자들의 세율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장기 자본소득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을 없앤다면 미국의 세금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수많은 주식 투자자와 부동산 보유자 들은 엄청난 세금 폭탄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수백만에 달하는 투자자들로부터 엄청난 조세 저항을 유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버핏의 주장이나 버핏 자신의 소득과 납세에 매우 비판적인 시각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비판적인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미실현 수익

미국의 조세제도에 따르면 미실현 수익에 대하여서는 과세를 하지 않습니다. 버핏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Berkshire Hathaway는 단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으며, 버핏을 위시한 주주들은 배당에 따른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버핏의 개인적인 부(富)는 그가 소유한 주식 등 유가증권의 가치가 증가하여 이룩한 것으로 유가 증권을 매각하여 이익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가치의 증가분에 대하여서는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Berkshire Hathaway의 주가(NYSE code: BRK-A)는 1990년 1월 $8,200이었으나, 2011년 11월 말에는 무려 $118,500로 약 14.5배 상승하였습니다. Berkshire Hathaway의 지난 20여 년간의 주가 상승은 연간 약 13%의 수익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산의 증가에 대하여 버핏은 전혀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2.    절세(節稅)

버핏뿐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 투자자들은 연말이면 자신의 투자 가운데 손실이 난 부분은 손실을 실현시켜서 단기 자본손실로 처리하고, 이익이 난 부분은 그 다음해로 이연시켜 장기 자본소득이 되도록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손실에 대하여서는 적용세율 35%로 소득 공제를 받고, 이익에 대하여서는 최고 세율이 15%에 불과한 납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절세는 지극히 합법적이고 버핏뿐 아니라 주식 투자를 하는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절세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상속과 관련하여서는 미국의 많은 부호들과 마찬가지로 버핏도 신탁 – 트러스트(trust) 제도를 절세의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    소득 공제

2010년도 버핏의 세금 보고에서도 나타났듯이 버핏의 소득 가운데 상당 부분이 소득공제 대상입니다. 각종 기부금은 물론이고, 비과세 소득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부를 하는 것이야 노블레스 오블리쥐 (noblesse oblige: 고귀한 지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절세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각종 비과세 대상 채권 (지방자치 채권-muni- 등)에 투자하면서 소득세를 더 납부하려고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버핏이 진정으로 세금을 더 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비과세 채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세금을 덜 내려고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버핏은 오히려 자신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도덕적으로 본다면 그는 매우 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현실은 그러나 기존 제도의 수정이 쉽지 않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난 문제가 장기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을 어느 수준의 소득부터 어느 정도의 세율을 적용할 것인가 입니다. 이 문제는 섣불리 잘 못 건드리게 되면 지나간 90여 년을 지켜온 미국의 세금 제도와 장기 투자 장려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으므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큰 부자 (super rich), 초고소득자 (squillion incomer)에게 세금을 더 물리자는 아이디어에는 충분히 공감이 가나, 어느 정도의 재산과 어느 정도의 소득을 중과세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결정일뿐더러, 제도의 변화에 따른 커다란 조세 저항을 유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러한 제도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않은 채 단순히 ‘부자 증세’ 만을 외치는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가들에게도 구호를 외치기 전에 조세제도에 대하여 보다 신중한 검토를 권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버핏세는 단순히 소득세율을 높이자는 것은 아니며 미국의 조세 시스템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부자 증세와 관련하여 어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를 표방하는 일간지인 중앙일보에 실린 의견은 귀담아 들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http://p.joongang.co.kr/kr/news.do?_method=webcontent&newsid=20111130N0013)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버핏처럼 소득을 많이 올려서 ‘나도 지금보다는 세금을 더 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돈을 많이 버시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여러분들도 버핏처럼 돈을 많이 버는 상상과 계획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재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