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조심스러운 주제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따금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을 한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의 가장 큰 차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 일이 잘 못 되었을 때입니다.
경제 논리는 잘 못된 원인을 정확히 찾아 이를 시정하고 일이 제대로 될 수 있게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안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에 따라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마저도 기반을 잃게 됩니다.
그 반면 정치 논리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잘못된 일의 원인 제공이 자기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치판(?)에서 생존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 논리가 경제에 부담을 준 사례를 몇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고속철도의 문을 연 KTX는 2004년 4월 1일에 첫 운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개통된 KTX는 엄밀히 이야기하면 반 쪽짜리 고속철도였습니다.
고속철도는 고속철도 전용 궤도로 달리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마치 고속도로가 일반 도로와 다르듯이 고속철로는 일반 철로와는 다릅니다. KTX를 개통하는 시점에서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281㎞는 새로이 건설한 고속 선로를 이용하고, 대구에서 부산까지 117㎞ 구간은 기존의 철로를 이용하였습니다. 고속철로 전체 구간의 70% 만 완공된 상태에서 운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대구~ 부산 구간에서는 고속철도의 최고 속도(300Km/h)까지는 운행을 하지 못하고 저속운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한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나열해 보면;
(1) 고속철로가 아닌 일반 철로 위를 달림으로 인한 고속철도의 안전 위협과 기계적인 파손, 마모.
(2) 일반 열차와 고속철이 같은 철로를 사용하면서 구간별 교통 적체 현상과 교통 지연.
(3) 이미 포화 상태인 일반 철로에 추가로 고속철도를 운행하게 됨에 따라 기존 철도 운행을 줄이게 되어 철도 수송 공급의 축소.
(4) 대구~부산 간 일반 철로는 과부하 현상이 발생; 대규모 투자로 신규 건설한 서울~ 대구 구간 고속철로의 이용률 현저히 저하.
(5) 원가 이하의 운임 (서울~부산: 4만5천원)으로 KTX 운행 적자,
(6) 저렴하고 빠른 새로운 교통 수단의 출현으로 기존의 항공 운항 승객이 KTX로 옮겨감으로써 항공 운항에 어려움을 겪게 됨.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KTX를 원가 이하의 싼 운임으로 개통한 것은 당시에 코 앞에 닥친 4.15 총선을 겨냥하였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관련기사: 2004/4/1_뉴시스_4.15총선)
정상적인 경제 논리를 따랐다면 전 구간 고속철로를 완공하고 안전 점검을 마친 다음 운행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운임도 고속철도 건설비를 감안한 합리적인 수준이었어야 합니다.
개성공단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정치 논리가 앞섰습니다. 남북화해와 남북경제협력이라는 대의명분이 우선 되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이 ‘Made in Korea’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혹은 ‘Made in DPRK’ 나 “Assembled in DPRK’로 표시하여야 하는지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관련기사: 2013/3/18_개성공단제품)
개성공단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비용은 우리나라의 토지공사(현 토지주택공사)가 맡았습니다. 단지 분양가는 조성원가를 밑도는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관련기사: 개성공단_분양가_10만원대) 지금도 각종 포털싸이트에서 ‘개성공단 보조금’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개성공단 초기에 입주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정부가 취한 여러 가지 유인책- 특히 보조금에 관한 기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2004/5/17_개성공단입주지원)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에게 가장 큰 매력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싼 임금 (월 $150 수준)과 둘째로는 공단 입주 초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었습니다.
싼 임금은 커다란 매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개성공단 사태의 현실이 말해 주듯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큰 북한 지역에 투자를 하는 것은 대단한 리스크 부담입니다. 그 리스크에 대한 보상과 대안을 북한 당국이 아닌 우리나라 정부에서 제공하였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합니다.
신문에서 흔히 사용하는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표현은 개성공단의 현상황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으로부터의 보장은 없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어떤 보장을 하였다는 것이 정상적인 경제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될 것입니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예는 아직도 여러 곳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장 경쟁자끼리 담합하는 것은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제재의 대상이 되지만, 정부주도의 감독기관이 가격(금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금융기관들이 담합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2013/7/29_재형저축_금리통일)
또한, 과거에는 정부의 산하 기관이었으나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한 한전은 아직도 가격 결정에 정부의 눈치를 봐야만 합니다. (관련기사: 2013/6/13_중앙일보_원가86%) 전기 요금은 아직도 일반인들이 전기세(電氣稅)라고 부를 만큼 공공의 성격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기는 엄연히 민간기업인 한국전력의 제품입니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통제하면서 민간기업에게 손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입니다.
정치적인 논리가 경제 논리를 짓누르게 되면 정상적인 기업활동,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영위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를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경제를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정경분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정경분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이야기를 전해 드려야 하는데 공연히 어두운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만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는 밝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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