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자 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금리·5만원권 탓에 돈이 안 돈다’ (관련기사: 2013/7/14_서울경제_저금리/5만원권)
이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통화 승수와 통화 유통 속도가 과거에 비하여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부유층이 세원(稅源) 노출을 꺼려 자신의 재산을 현금 또는 금괴 등으로 바꿔 장롱 속에 감춰 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금 금리가 낮다 보니 은행 예금에 대한 매력도 떨어져 구태여 자신의 재산 상태가 금융기관에 드러나게 되기를 원치 않고 현금으로 쌓아 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새 정부 들어서서 지하경제 근절에 대하여 서슬이 퍼렇게 날을 세우자 일부 부유층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재산을 은닉하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리를 살펴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2011년 1/4분기에 4.3%를 기록한 이후 점점 낮은 수치를 보이다가 지난 해 3/4분기에는 급기야 2%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첨부 도표 ‘경제 성장률’ 참조, 출처: 기획재정부)
금년도 (2013) 1/4분기 성장률은 1.5%입니다. 성장률이 이렇게 낮다 보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경기 진작을 위하여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금리가 낮으니 예금 이자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정책적인 면을 살펴보면; 지난 3~4 개월 동안 경제민주화와 함께 새 정부의 경제 공약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지하경제 양성화입니다. (관련기사: 2013.6.1. 한경- 지하경제) 이를 통하여 세수를 확보하고 재정을 건전하게 하려는 의도는 매우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신문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증세(增稅)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재산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것은 곧 세원을 노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피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자신의 재산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에게 이자율마저 기대 이상으로 낮으니 금융기관에 돈을 예치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진정으로 지하 경제의 자금을 햇볕으로 끌어내려면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에 전광석화와 같은 조치를 취하여야 가능합니다. 현재와 같이 언론을 통하여 조세회피지역에 계좌를 가진 사람 명단을 드러내는 식으로 변죽만 울리게 되면 정부가 타겟으로 하는 큰 금액의 지하경제는 해외로 도피하거나 또는 더 깊은 지하로 숨어 버리게 됩니다. 결국 정부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힘 없는 잔챙이(?) 일부를 건지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할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하 경제의 재원(財源)은 무자료 상거래와 무기명 채권, 부동산 또는 점포의 권리금, 고리 사채, 뇌물, 마약거래, 매춘, 절도, 밀수출 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지하 경제를 단 칼에 모두 없애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몇 번의 시도는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지하 경제의 자금이 도망 갈 수 있는 도피로를 만들어 놓고 몰아가는 식의 양성화가 있었습니다. 소위 묻지마 채권이라고 불리던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세제에 의하면 주식 매매 거래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하여서는 아직도 과세를 하지 않습니다. (단, 주식 배당 소득에는 과세를 합니다.) 절세의 방편으로 주식에 투자를 하는 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현재의 주식 시장 상황은 절세라는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어서 수익을 많이 낼 때에는 절세 효과가 크지만, 현재와 같이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게 되면 주식 매매 이익을 내기 쉽지 않습니다. 고객 예탁금이 특별히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주식거래는 과거에 비하여 감소하였습니다. (관련기사: 2013.7.3. 한경_대기자금만20조)
많은 사람들이 당분간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일부 사람들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단기적인 현상일 뿐 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경제의 어려움은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2주일쯤 전에 -지난 7월 11일 (한국시간 7월 12일)-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에는 ‘Crédit Agricole Bids Adieu to Pricey Lunch’ (관련기사: wsj/7/11/2013_Pricey Lunch) 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목을 글자 그대로 번역한다면; ‘크레디 아그리콜이 비싼 점심식사에 작별을 고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프랑스의 최대 은행인 크레디 아그리콜(Crédit Agricole)에서는 더 이상 고가의 접대와 기준 이상의 경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출장시 호텔 경비로 하루에 €165을 초과하여서는 안 되고, 고객과의 점심 식사도 1 인당 비용이 €25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은행은 이미 구조조정을 통하여 2,350명을 해고하였고 ‘MUST’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라고 부르는 경비 절감 계획에 의하여 2016년까지 연(年) €6억5천만을 절감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IB (Investment Banking, 투자은행) 분야는 예전부터 과소비, 과다비용 지출의 대명사(?)가 되어 왔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적잖은 접대비용을 썼음을 고백합니다. 최고급 레스토랑과 비싼 술집, 그리고 각종 고비용의 스포츠, 문화관람 등등 내막을 들추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비용의 뒤에는 독특한 IB 업종의 특성이 있습니다. 1등만이 살아 남을 수 있고, 1등을 하면 모든 비용이 단 칼에 보상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등이 100을 차지하면 2등은 10도 채 못 되는 금액을 손에 쥐게 됩니다. 거래 금액 배정에서 또 수수료에서 모든 것이 1등 중심입니다. 2등과 그 이하는 1등이 주는 대로 받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1등을 하여야 합니다. 1등만 하면 모든 비용과 노력을 보상 받게 됩니다.
저도 IB 업계의 일을 할 때에는 출장을 가서도 최고급 호텔에서 묵고 식사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하였었습니다. 비행기도 비즈니스 석 이상만 타고, 장거리 비행인 경우에는 1등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14~5년 전까지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크레디 아그리콜에서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한 하루 저녁 호텔비 €165은 우리 돈으로 약 24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입니다. 이런 정도의 호텔비로는 절대로 최고 수준의 호텔에서 묵을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프랑스 파리에서 IB 인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George V (죠르주 상) 호텔의 숙박비를 검색해 보면 하루 숙박비가 €1,000 이 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 George_V_예약싸이트) 물론 IB 들이 할인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하루 저녁 숙박비 €165에 George V 호텔에 묵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 €25의 식대도 우리 돈으로 4만 원이 안 되는 금액입니다. 결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IB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국 뉴욕 맨하탄의 최고급 레스토랑 Per Se (퍼 세이)의 메뉴를 보면 코스 요리 가격이 $295(약 €225) 이고 단품 요리로서 가장 저렴한 것이 $30(약 €23) 짜리 샐러드입니다. (참고: PerSe_메뉴) 예전처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크레디 아그리콜이 2016년까지 절감하기로 한 연간 €6억5천만의 경비는 우리 돈으로 약 9천6백억 원입니다. 1년에 9천6백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 은행이 처한 현실의 절박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거품 경제라고 불리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주름살이 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보여 주었던 디플레이션의 폐해는 더욱 큰 문제 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만, 과연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가늠하고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일견 아직은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5만원권이 유통되지 않고 사장되는 것은 정부의 정책과는 달리 지하경제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모두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외국의 투자은행들도 허리 띠를 졸라 매는 긴축 경영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운 이 때에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도 긴축 경영에 동참하여 고비용으로 인하여 금융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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