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9월 16일 첫 글을 배달한 이래 매주 금요일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금요일 모닝커피’라는 이름으로 글을 배달하였습니다.
요즈음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100회 기념 특집을 방영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100회 특집 ‘금요일 모닝커피’를 멋지게 꾸며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변함 없이 글을 써서 100번째 ‘금요일 모닝커피’를 배달하려고 합니다.
100번째 금요일 모닝커피를 맞이하면서 100 이라는 숫자에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얼마 전 시내에 나갔더니 조선호텔이 개관 100주년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저의 금요일 모닝커피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세월입니다만, 주제 넘게 금요일 모닝커피 100회도 조선호텔의 100년에 못지 않다는 자부심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개관 100년이 되었다는 조선호텔과 얽힌 저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100년 전 처음 지어진 조선호텔은 5층짜리 석조건물이었습니다. (4층이 없는 5층이므로 엄밀히 이야기하면 4층짜리였습니다.) 새로이 개축하여 1970년에 오픈 한 현재의 조선호텔 건물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 옛날의 조선호텔에 대한 저의 추억으로는 제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1950년대 말부터 방문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회전문 (revolving door)이 조선호텔 현관에 있었습니다. 계속 한 방향으로 돌아가는데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이 어린 저의 눈에는 신기하게만 비쳐졌습니다.
그 때의 회전문은 지금처럼 금속이 아닌 나무로 문틀을 만들고 유리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중간 높이에 나무로 만든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회전문이 신기하여서 현관에서 그 문을 여러 번 드나들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가셨던 저희 선친께서는 막내 아들이 신기해 하는 회전문을 구경시켜 주시느라 옆에 서서 말없이 웃으시면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옛 조선호텔은 현관 회전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올라가면 로비가 나왔습니다. 로비를 지나 계속 가면 커피 숍이 있었습니다. 커피 숍을 곧장 지나가면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으로 나가면 테라스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커피 숍 안에는 여름이면 천장에 커다란 선풍기가 돌아갔습니다. 저는 한여름에 그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호사스러운 즐거움을 누리곤 하였습니다.
1970년 봄 새 건물의 조선호텔이 문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생신에 조선호텔의 꼭대기 층에 있는 양식당 갤럭시(Galaxy)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저는 단정한 셔츠에 앞이 트인 카디건 스웨터를 입고 갔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생신은 음력 2월 25일, 양력으로 4월 초였습니다.) 그런데 레스토랑 입구에서 저희 식구 가운데 저만 출입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만 양복 재킷을 입지 않고 넥타이를 매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넥타이와 양복 재킷을 빌려서 매고, 입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빌린 재킷이 제게 잘 맞지 않아 들어가자마자 바로 재킷을 벗어서 의자 뒤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입구에서 넥타이를 매고 양복 재킷을 빌려서라도 입어야만 하였습니다.
조선호텔이 새 빌딩을 짓고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하여도 원칙에 충실하였습니다. 양복 재킷을 입고 넥타이를 매어야만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 저와 저의 아내, 제 두 아들-이 1995년초 미국 뉴저지로 이주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저희 식구가 일요일 아침이면 맨해튼(Manhattan) 업타운(uptown) 쪽에 있는 마크 호텔 (Mark Hotel: 마크호텔홈페이지 참조)의 레스토랑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물론 저의 두 아들은 정장을 입었고, 넥타이도 맸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 복장 그대로 모두 교회로 가곤 하였습니다.
제 아들들에게 정장을 입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과 정장을 입고 교회에 가는 것을 교육하려는 것이 저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제 의도는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유분방한 미국 사회에 물든 아이들이 정장을 입고 교회에 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자기네들만 정장을 입고 교회에 가는 것을 알게 된 제 아들들이 더 이상 정장을 입고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저를 보고 원칙주의자라고도 합니다. 어떤 이는 제게 너무 고지식하다고도 합니다. 그런 저도 요즈음에는 넥타이를 잘 매지 않습니다. 저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넥타이를 맨 사람보다 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듯 합니다. 복장의 원칙에 변화가 온 것입니다.
복장뿐이 아닙니다.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금융 분야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예전에는 은행에서 고객에게 돈을 건넬 때에는 지폐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아래 위가 바뀌지 않게 정리하여서 주었습니다. 100장 묶음의 첫 50장과 그 다음 50장이 서로 등을 대고 있게 정리하여 앞, 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지폐의 정면이 보이게 하였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은행들은 이 원칙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은행에서 고객에게 내어주는 지폐 묶음은 앞 뒤 방향이 제 각각이고, 아래 위도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저는 아직도 지갑에 지폐를 정리할 때에 모두 앞면을 바라보게 정리하고 지폐가 거꾸로 서지 않고 똑바로 서도록 합니다. 저는 첫 직장인 Bank of America 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에 지폐는 그렇게 정리하여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아래 위, 앞 뒤를 맞춰서 지폐를 정리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금융에서 요구하는 원칙들은 지폐를 한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과 같은 지엽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지켜야 할 많은 원칙들이 있습니다.
사업의 원칙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일 먼저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익 모델을 작동하는 시스템 운영 비용을 계산하여 수익-비용 대응의 원칙에 따라 이익이 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 불확실성에 의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금융 사업에서는 제조업과 달리 설비나 기계 등의 생산시설에 투자하는 금액은 상대적으로 작으나 시스템을 운영하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들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은 100년이 아니라 그 보다 더한 시간이 흘러도 지켜져야 합니다. 제가 금요일 모닝커피를 쓰면서 나름대로 금융의 원칙을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금요일 모닝커피는 이제 고작 100번의 글이 배달되었을 따름입니다. 앞으로 제가 얼마 동안이나 계속 글을 쓸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매주 금요일 아침에 모닝커피를 배달하겠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다시 좋은 101번째 글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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