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촌이면 가족을 제외한 친척 가운데 가장 가까운 동기간(同氣間)과 같은 사이입니다. 그런 사촌이 땅을 사도 샘이 나고 부러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나보다 잘 되는 것에는 질투가 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모양입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 가운데에 한 술 더 떠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배불리 먹지 못하는 형편은 참고 견딜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잘 되는 것은 싫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혹은 절대 빈곤은 참을 수 있어도 상대 빈곤은 참을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회가 커지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빈부의 차가 커지고 부의 편중이 심해지는 것에 대하여 많은 우려를 합니다. 미국 상무성 (Department of Commerce)의 조사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7년까지 28년간 미국에서의 세후(稅後) 실질 소득 증가율은 평균 62% 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275% 증가하였습니다. 상위 1% 다음에 속하는 19%의 사람들은 65% 증가, 그 밑에 속하는 60%의 사람들은 40%가 채 안 되는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최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 증가는 18%에 그쳤습니다. (자료: US Census Bureau) 소득의 불평등한 증가가 빈부의 차이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부의 편중을 측정하는 지표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가운데 지니계수 (Gini Coefficient 혹은 Gini Index, Gini Ratio)가 있습니다. 이는 이태리의 사회학자이며 통계학자인 지니가 개발한 소득과 분배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이 숫자가 높으면 불평등이 더 심하고 낮으면 소득 배분이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니계수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0.353 (2012년)입니다. OECD 국가의 평균은 0.314 (2010년), 미국은 0.477 (2011년)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6위, 미국은 4위입니다. 이 숫자만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소득 분배가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의 편중을 가리켜 양극화(兩極化)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씌어 온 낯 익은 표현입니다. 그러나 일부 빈곤 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빌면 ‘양극화’라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극화가 문제라기 보다는 한 쪽, 즉 빈곤 쪽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주목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부유층의 부를 빼앗아 빈곤층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습니다. 세금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 기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부유층에게 고용을 창출하고 소비를 진작하여 저소득층의 경제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합니다.
7~8년 전 뉴욕에서 국제연합(UN)의 빈곤 퇴치와 관련된 위원회의 위원 한 분이 하는 세미나를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휴식 시간에 인사를 하며 저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한국은 양극화(bi-polarization 혹은 dual-polarization)라는 이름으로 빈곤의 문제를 부자의 문제와 함께 해결하려는 특이한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빈곤에 대한 대책으로 접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문제는 부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능력과 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 범법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빈곤문제 전문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범죄를 다루는 검찰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접근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부자들에게 불편함,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이 마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으로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는 될지언정 가난한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려면 그 나라에 사는 부자들이 살기 좋아야 하고 기업에 투자하여 경영활동을 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고용을 늘리고, 소비가 진작되어 경제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제가 살아나는 온기가 미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온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퍼져 갈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빈곤 문제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빈곤 대책을 잘 못 이해하면 가난한 사람을 돕기 보다는 부자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부자들이 살기 힘들고, 각종 규제와 불합리한 부담으로 기업활동이 어려운 나라에서는 부자들이 탈출하려 할 것이고 기업들도 해외로 빠져 나가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는 더욱 어려워 지게 되고, 어려운 경제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은 간혹 공산주의식 또는 사회주의식 분배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1970년대에 지금의 캄보디아를 점령한 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Pol Pot, 본명 Saloth Sar)는 지식인과 부자를 적대시하여 전체 국민 5백만 가운데 2백만을 학살하는, 소위 킬링 필즈(Killing Fields)라 불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부를 분배할 분모는 5백만에서 3백만으로 줄어 들었지만 아무리 부를 재분배하려 하여도 가난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투자, 생산,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끌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속에서 기업활동을 가로 막고, 부자를 처벌하여 애당초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생산활동도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 폴 포트는 정권에서 쫓겨나고 게릴라 활동으로 연명하다가 정부군에 붙잡혀 감옥에서 병사하게 됩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분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해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식 분배- 즉, 부자의 부를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분배-로는 결코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포 분위기의 사회에서는 투자가 위축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무상 배분에 익숙해 지면 생산활동에 참여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북한의 경제입니다.
얼마 전 발표된 2013년 북한의 GDP는 854 달러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2014/3/16-동아일보-북한GDP) 이는 우리나라의 1976년 GDP 870 달러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의 2013년 GDP는 2만3천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나라 GDP가 북한 GDP의 27배가 넘습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공산주의 경제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일관되게 조직적으로 분배하면 모든 국민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허황된 꿈이고 자유 경쟁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게 만듭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남북한의 경제 상황입니다. 지금의 북한을 보면 남한의 경제 발전을 배 아파하기 보다는 당장의 배고픔이 너무 커 보입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도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아래에서도 가난한 사람도 있고 또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의 크기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여력도 자본주의 경제에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경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이 있으나 그래도 자본주의 경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경쟁력 있는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발전의 그늘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구제가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후대비 저축- 2014. 4. 4. (0) | 2014.04.04 |
---|---|
출자전환- 2014. 3. 28. (0) | 2014.03.28 |
성숙한 사회- 2014. 3. 14. (0) | 2014.03.14 |
3월- 2014. 3. 7. (0) | 2014.03.10 |
심판- 2014. 2. 28. (0) | 2014.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