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현충일- 2014. 6. 5.

jaykim1953 2014. 6. 5. 08:49

 

내일은 6 6 현충일입니다. 국가 지정 정부 기념일로서 공휴일입니다. 그래서 저의 금요일 모닝커피는 하루 먼저 목요일- 6 5일에 배달됩니다.

우리나라의 현충일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3년이 지난 1956년에 정하여졌다고 합니다. 6.25 한국전쟁 기간 동안 희생되었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한국전쟁은 6.25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한국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배운 바로는 전쟁이란 국가와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고, 6.25사변의 경우는 우리나라 국토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북한의 불법집단이 남한을 공격하여 발생한 변란이므로 이는 전쟁이 아닌 사변(事變)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변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1.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없는 천재(天災) 밖의 사건.

2.     전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의으로는 막을 없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

3.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

6.25사변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위의 2번과 3번에 해당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북한의 존재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2번의 뜻에 가깝게 사용되었다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할 정도까지 상대방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 불릴 만큼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1950년대에는 전후 복구에 급급하던 시절이었고, 1960년대에는 경제부흥을 위하여 힘쓰던 시절이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경제부흥(經濟復興)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습니다. 부흥이란 다시 일으켜 예전처럼 ()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1945 해방 이후 경제가 그리 좋았던 적이 없었으므로 부흥이라기 보다는 경제를 일으키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1960년대에 자주 듣던 가운데 대망(待望) 70년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때에는 70년대가 밝아오면 세상이 달라지고 우리나라가 살게 것이라는 희망과 꿈을 가졌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경제력이 확실하게 앞서기 시작한 것은 1970 즈음이라고 합니다. 1968 말에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시작하면서 눈부신 경제 도약을 이루던 시절입니다. 경제력의 향상을 빌미로 정치적인 독재성향이 더욱 기승을 부렸던 아픔 또한 당시 우리나라의 실상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의 발전상이라는 것이 지금의 기준으로는 보잘것없는 수준임을 부인할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처음으로 연간 10 달러를 넘어선 것이 1971년입니다. 해에 수출실적이 1십억68백만 달러였습니다. 수입은 2394백만 달러였습니다. 숫자들을 지금의 우리나라 실정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커다란 차이를 느낄 있습니다. 2013 우리나라의 수출은 559649백만달러이고, 수입은 515561백만 달러입니다. 40 남짓한 시간이 흐르면서 수출은 524, 수입은 215 성장하였습니다.

1970년과 지금(2012 통계치 기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국민 소득(GDP; 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 비교하면 1970년에는 89 달러였으나 2012년에는 11296 달러로 성장하였으며, 1인당 소득은 255 달러에서 2278 달러로 성장하였습니다.

수치로 드러나는 발전은 분명 우리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러한 양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선진 문화, 교양, 성숙함 등에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부인할 없습니다. 지금도 밖에만 나서면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불법 주차, 무질서한 교통, 법을 무시하는 시위, 노점상, 불법 광고판 등등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아직 선진사회가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위법행위, 사법부 판사들의 퇴임 행적 우리 사회의 치부는 들치기가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 도취되어 소득이 늘어났다고 바로 선진국이 것이라는 착각을 하여서는 됩니다. 우리의 조상들, 선열들이 목숨 걸고 지켜준 나라를 더욱 빛나는 선진국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책무입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것을 기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워 익힌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가슴 깊이 새겨야 말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살아 가는 만큼 지나간 일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일들을 쉽게 잊습니다. 특히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려고도 합니다. 60 전에 우리나라를 침략으로부터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워서 나라를 지킨 사람들도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을 잊어서는 날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충일이라는 기념일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현충일을 맞아 지난 역사와 우리나라를 지켜준 분들을 상기하여야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서 숭고한 목숨까지 바친 이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전쟁 직후에 만들어진 군가의 가사를 보면;

, , 잊으랴!/ 어찌 우리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날을 (후략)

처음 시작이 , , 잊으랴!’입니다. 잊어서는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 군인들의 무기 수준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고 합니다. 군가의 가사처럼 그야말로 주먹 붉은 피로적들과 싸웠다는 표현이 크게 과장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적군의 탱크 앞에서 소총과 수류탄으로 육탄 방어를 하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비단 군가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추모의 글은 읽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날의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만큼 지나간 일들을 가슴 깊이 새겨야 것입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추억하며 인터넷 SNS 상에 놓은 어느 부인의 글을 하나 소개하면서 오늘의 모닝커피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Feeling extra grateful for this man who has been by my side to date. He has been truly more than I could have ever dreamt of - he has made me want to be a better wife and a better person. No one I would rather have done life with than you. Love you and appreciate you!

(지금까지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람에게 특별한 감사를 느끼며. 그는 진정으로 내가 꿈꿀 있었던 이상이어서, 나로 하여금 훌륭한 부인,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