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학교 다닐 때 유행하였던 노래 가운데 영국 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 (Engelbert Humperdinck)가 부른 ‘Am I that easy to forget?’ 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E_Humperdinck_Am I that easy to forget_듣기) 이 노래는 원래 1950년 대에 스키터 데이비스 (Skeeter Davis) 라는 컨츄리 싱어가 부른 노래였다고 합니다. (S_Davis: Am I that easy to forget_듣기) 스키터 데이비스는 1963년에 발표한 ‘디 엔드 오브 더 월드’ (The end of the world)라는 노래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가수입니다. (S_Davis_the end of the world_듣기)
제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당시 동아방송에서 탑 튠 쇼 (Top Tune Show), 세시의 다이얼 등을 진행하던 최동욱 DJ가 한창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만 하여도 TV가 요즘 같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를 중요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하나로 사용하였습니다.
‘Am I that easy to forget?’이라는 노래는 당시에 상당히 히트하여서 라디오를 틀면 자주 이 노래가 나왔습니다. 어느 날 이 노래를 우연히 들으시던 저희 선친께서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면 제게 물어 보셨습니다. ‘이 노래는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이냐?’고. 저는 미국에서 7~8년 전에 유행한 노래를 최근에 잉글버트 험퍼딩크라는 영국 가수가 리바이벌 하여 히트시킨 노래라고 알려 드렸습니다. 그러자 저희 선친께서는 이 노래 가사로 영어를 배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노래 가사가 격조 갖춘 영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래 올바른 영어 표현은 ‘Is it that easy to forget me?’ 라고 하여야 하는데 이 노래에서는 잘 못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품위 있고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영국 사립학교 (Public school)에서 중, 고등학교 교육을 받으셔서 영국식의 고급 영어를 선호하십니다. 그러니 천박한 미국식 영어가 못 마땅하셨던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금요일 모닝커피에서 일찍이 언급하였던 ‘I wanna hold your hand’라는 표현도 고급 영어는 아니라는 지적을 하셨었습니다. (2012.4.6.금요일모닝커피-I wanna hold your hand? 참조) 하지만 현재의 대세는 미국식 영어가 인터넷, TV, 영화, 팝송 등을 통하여 전세계에 퍼져 나갔습니다. 영국 영어를 고집하기에는 미국 영어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습니다. 많은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금융 분야에서는 미국의 고집스러운 관행이 꺾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외환 거래 관행입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환율을 나타내는 방법이 미국과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많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프랑(ISO의 통화 코드 CHF)의 환율을 표시할 때에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USD 1 = CHF 1.0375 를 의미하는 USD/CHF 1.0375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같은 환율을 다른 방법으로 표시하였습니다. CHF 1 = USD 0.9639 를 의미하는 CHF/USD 0.9639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환율을 서로 다르게 표시하면 소수 다섯째 자리에서 반올림을 하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오차가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오차를 이용하여 거래 금액을 키워서 차익을 노린 거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USD/CHF 환율을 CHF/USD 환율로 계산하면서 0.00004의 차이가 발생하였다면 거래 금액을 $ 1천만쯤 하게 되면 약 $400 정도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5천만을 거래하면 $2,000의 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에는 USD/CHF 로 표시하는 방식을 유럽식(European term) 환율표기라고 불렀고, CHF/USD 로 표시하는 환율을 미국식(US term) 환율표기 방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전세계 외환딜러들의 모임인 ACI (국제외환협회; Association Change Internationale- 프랑스어 표기이며 영어로는 International Exchange Association)에서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환율 표기를 유럽식으로 통일하기로 하였습니다. 즉, 미국내에서도 은행간 외환시장 거래에서는 환율 표시를 USD/CHF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이 일반고객을 상대로 환율을 고시하는 경우에는 예외 인정)
이러한 조치는 외환시장의 일관된 가격 표시 방법을 적용하자는 취지로서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는 방침입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서 미국 국내 시장 참여자인 미국의 은행들은 이 결정이 매우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은행에 환율을 물어볼 때에 ‘일본 옌화가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에 ‘1 옌당 9.6339 원입니다.’ 라는 답은 명쾌하게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같은 질문에 ‘1 원은 0.1038 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1 옌당 우리나라 원화가 얼마입니까?’ 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ACI 가 환율 표시 방법에 대한 결정을 하였을 때에 미국의 외환 딜러들은 강력하게 저항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외국통화가 자신들의 달러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표시하는 것이 이해가 쉬운데 반대로 자국 통화인 미국 달러화 1 달러가 외국 통화로 얼마인지를 표시하는 것이 불편하고 얼른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국제 외환시장에서 아무도 미국식 환율 표시 방법을 사용하지 않자 결국에는 미국의 외환 딜러들도 굴복하고 유럽식 환율표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영국 파운드화와 영연방 국가 가운데 호주, 뉴질랜드 등은 미국식 환율표시를 따릅니다. 그리고 유로화도 미국식 환율표기를 따릅니다.
영국 파운드화는 과거에는 12진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미화 1 달러에 해당하는 파운드 화의 가치를 십진법 숫자로 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파운드화는 항상 1 파운드의 가치가 다른 나라 통화로 얼마나 되는지를 표시하여 왔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의 이러한 관습을 따라 자국의 통화를 기준으로 외국 통화 가치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유로화도 같은 방법으로 1 유로화에 상응하는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USD 1.2508과 같이 표시합니다. 이는 € 1 = USD 1.2508 을 의미합니다.
환율을 표시하는 데에는 규칙들이 있습니다. 환율을 소수 몇 자리까지 표기하느냐에 대하여서도 규칙이 있습니다. 환율은 ‘기준통화 1 = 표시통화 상당액’으로 표시합니다. 이 때에 소수점 이하의 표기는 표시통화가 일반 상거래에서 사용하는 최소 화폐 단위의 1/100까지로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통화와 미국 달러화의 환율은 USD/KRW 1,075.25와 같이 표기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 상거래에 사용되는 최소 화폐단위는 1 원이므로 환율에는 1원의 1/100까지 표시합니다. 즉, 소수 둘째 자리까지 표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은 그 동안 화폐 가치의 변화가 심하여지면서 부분적으로 지키기 어려워졌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옌화와 한국 원화의 환율을 표시하는 데에 1옌당 원화 가치를 소수 둘째 자리까지만 표시한다면 환율의 정확성이 떨어지므로 소수 4째 자리까지 JPY/KRW 9.3442 라고 표시합니다. 혹은 100옌당 원화 가치로 JPY 100 = KRW 934.42 와 같이 표시합니다.
전세계 경제가 G1, 또는 G2의 초강대국이 지배한다고들 합니다. G1이라 함은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고, G2라 함은 미국과 중국을 의미합니다. 경제의 흐름은 누가 더 많은 돈을 움직이느냐에 따라 무게 중심이 움직입니다. 아직까지는 미국의 경제력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머지 않아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Am I that easy to forget?’이라는 표현을 따라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Am I that easy to forget?’ 은 틀렸고 ‘Is it that easy to forget me?’라고 하여야 옳다고 이야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현재의 경제나 금융 흐름이 반드시 옳고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장에서의 대세가 그러하다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것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장은 옳은 방향을 향하여 수렴(convergence)한다고 합니다. 현재의 시장 관행, 규칙을 잘 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혹시라도 잘 못된 관행이나 규칙에 익숙해져 있다 하더라도 정확하고 옳은 관행과 규칙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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