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 손자와 집사람을 데리고 2박3일의 일정으로 홍콩을 다녀 왔습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최근 홍콩에서 지속된 반정부 시위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으나 별 탈 없이 무사히 잘 다녀 왔습니다.
홍콩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이하고, 재미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홍콩이 중국의 일부입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는 홍콩은 중국의 한 도시이면서 중국과는 체제가 다른 1 국가 2 체제를 유지하는 곳입니다. 사용하는 화폐도 홍콩은 중국 위안화가 아닌 독립적인 홍콩 달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홍콩 달러는 중앙은행이 발행하지 않습니다. 홍콩 달러는 홍콩 통화 당국으로부터 발권을 위임을 받은 상업은행 2 곳- 스탠다드 차터드 은행(Standard Chartered Bank)과 홍콩 샹하이 은행(Hong 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에서 발행합니다. 금융에 관하여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싱가폴과 함께 가장 자유로운 시장이 허용되는 곳입니다.
홍콩을 제가 처음 방문하였던 것은 1981년 가을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서 일하고 있었고, 싱가폴과 홍콩 등지로 6 개월간 OJT (On-the-job training) 연수차 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로는 쉽지 않게 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 받아 저는 제 집사람과 큰 아들을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3 가족이 함께 지내는 해외 생활은 그 시절의 사람들로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저의 큰 아들은 첫 돌을 홍콩에서 맞이하였습니다. 싱가폴에서는 아파트를 얻어서 지냈으나 홍콩에서는 호텔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호텔 방에 생일 케익을 사다 놓고 조촐하지만 돌상도 차려 놓고 기념 촬영도 하였습니다. 이 때 사진 촬영을 위하여 구입하였던 카메라 받침대 삼발이(tripod)를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홍콩을 방문한 이래 그 동안 저는 수십 번 홍콩에 다녀 왔습니다. 아시아에서 국제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 보니 금융분야에서 일해 온 저는 홍콩을 방문할 기회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언젠가는 아침 첫 비행기로 홍콩으로 가서 미팅과 점심 식사를 하고 간단한 일 처리를 마친 다음 마지막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홍콩 방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홍콩의 관문은 카이탁(啓德) 국제공항이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홍콩 국제공항을 옮긴 것이 1998년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홍콩 국제공항이 첵랍콕(赤鱲角)에 들어서기까지는 카이탁 공항을 이용하였습니다. 카이탁 공항의 활주로는 하나뿐이었고 바다에서 육지로 향하여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행기 이착륙을 바다에서 육지 방향으로, 그 다음 날에는 육지에서 바다 방향으로 하여서 활주로가 한 방향으로 노화되는 것을 방지하던 공항이었습니다. 지금의 첵랍콕 홍콩 국제공항이 훨씬 더 크고 시설이 좋다고 하지만 제게는 예전의 카이탁 공항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1981년 Bank of America 홍콩의 Head of Treasury였던 Thomas Hughes가 제게 해주었던 홍콩에 대한 재미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홍콩은 동서고금 (East & West, Old & New), 빈부 (Haves & Have-nots), 배운자와 못 배운자 (Learned & Ignorant)가 모두 존재하며 함께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1981년만 하여도 길거리에서 윗도리를 입지 않은 노인이 구걸을 하고 그 옆에 최고급 승용차 뒷문에서 내린 밍크코트를 걸친 화려한 모습의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길거리에 남루한 모습의 구두닦이가 통 위에 구두를 얹고 있는 정장 차림의 신사 구두를 닦고 있는 모습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문화와 문명이 어우러져 있는 곳임에는 분명하나 어느 새 빈부 격차는 예전보다 줄어 들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통계 숫자는 아직도 빈부 격차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소득 수준도 우리나라에 비하여 꽤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금년도 1인당 GDP는 약 $2만8천이라고 하나 홍콩은 이미 $4만을 초과하였습니다.
조그마한 도시 홍콩이 어떻게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는지는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고, 지금은 (비록 체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중국의 한 도시에 불과한 홍콩이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된 것에는 우리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7백만에 달하는 홍콩 인구의 90% 이상이 중국계라는 것입니다. 중국민족은 세계에서 유대민족과 함께 경제관념이 가장 투철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저의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도 중국민족의 상업적 마인드에 대하여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참조: 금요일모닝커피_2013.2.1.중국시장)
그런데 중국민족과 유대인 사이에는 한 가지 극명하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를 선호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진출한 곳에서는 많은 곳에서 중국 사람들이 부동산을 보유하고 일대의 상권을 장악합니다. 싱가폴,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일본 요코하마의 차이나 타운도 많은 건물주들이 중국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뉴욕의 플러싱(Flushing)에도 건물주들 가운데 중국계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고, 샌프란씨스코의 차이나 타운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인들이 많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 유대인들은 부동산보다는 귀금속에 투자합니다. 아마도 광야에서의 유랑생활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민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또는 히틀러의 나치스에게 당하였던 것처럼 갑자기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 손쉽게 재산을 정리하여 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귀금속 종류를 선호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귀금속 유통업에 많이 종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도 공산주의 체제가 살아 있어 개인의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홍콩은 다릅니다. 일찍이 영국의 식민지로서 자본주의경제가 뿌리 내린 홍콩에서는 부동산을 개인이 보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시장도 활성화 되고, 부동산 투자도 활발하게 되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 당시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당시 자유중국(타이완으로 망명한 중화민국의 일반명칭)의 총통이던 장체스(蔣介石) 총통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공산주의와 싸우는 같은 처지여서 두 나라의 사이는 더욱 가까웠습니다. 장 총통은 이 대통령에게 한국에 있는 중국계 화교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당부하였고, 이 대통령도 그러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를 금지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당시 열악한 국내 경제기반에 비하여 상당한 자본을 축적한 중국인들이 국내에서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때 외국인에게 부동산 매입을 허용하였더라면 상당한 물량의 부동산이 중국인들의 손으로 넘어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라 당시의 열악한 경제 기반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지금은 1948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즈음에는 제주도에 중국인들의 땅 구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중앙일보_2014.10.21.중국인 소유 제주도땅) 이제는 우리나라의 경제력도 많이 성장하여 외국인들의 부동산 매입을 허용합니다. 제주도에서 부동산을 매입한 중국인들이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손에 들고 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갖고 싶던 부동산을 중국의 체제가 허락하지 않아 갖지 못하다가 드디어 한국에서 자신의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을 갖게 된 것에 감격한다는 것입니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전세계의 부동산 가격 순위에서 최상위 수준에 있습니다. (참조: http://www.globalpropertyguide.com/most-expensive-cities) 중국 본토에서는 부동산 구입이 불가능한 반면 바로 이웃이면서 같은 국가이고 체제만 다른 홍콩에서는 부동산 구입이 가능합니다.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는 중국 사람들이 홍콩에서 부동산을 구입하고 그로 말미암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경제는 장기침체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부동산 경기를 살려 경기를 띄우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중국의 투자자들에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직접 투자로 인하여 국부유출(國富流出)이 된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부동산 펀드 등을 통한 집단 투자형태의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이웃해 살고 있는 중국과 서로 도우며, 윈-윈 (win-win)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Nut Rage- 2014. 12. 12. (0) | 2014.12.12 |
---|---|
관피아: 관치 금융, 정피아: 정치 금융- 2014. 12. 5. (0) | 2014.12.08 |
친절한 써비스 - 2014. 11. 21. (0) | 2014.11.25 |
하와이- 2014. 11. 14. (0) | 2014.11.14 |
Am I that easy to forget? - 2014. 11. 7. (0) | 201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