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반면교사- 2015. 6. 19.

jaykim1953 2015. 6. 21. 09:13

30여 년 전인 1983년 봄 제가 미국의 Los Angeles에서 외환 딜러 (FX Dealer)로 일하던 때였습니다. 제 사무실에 저보다 1살 아래인 네델란드계 외환 딜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이니셜은 R이고 성()은 Groenveld (그뢴벨드)였습니다. 그뢴벨트의 의미는 푸른 풀밭- green field- 이라고 합니다. (편의상 그를 R이라고 부르겠습니다.)
R은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나이 30도 되기 전부터 이미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습니다.그의 직책은 기업고객담당 외환 세일즈 오피서 (FX sales officer - corporate customers)였습니다. 그는 고객들에게 시장상황에 대한 설명도 잘 하였고 리스크 분석, 대안 제시 등에도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남가주 본부 (South California Head Quarters)의 외환 딜링 룸이었고, 그가 담당하던 고객들은 주로 멕시코와 아시아 지역에 엑스포저를 가지고 있는 고객들이었습니다. 저는 미국 달러화 대 일본 옌화 (US$/¥)를 담당하는 외환 딜러였습니다. R의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 옌화 엑스포저 관리를 위한 외환 거래를 하기 위하여서는 그는 저에게 옌화 가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R과 자주 거래를 함께 진행하게 되어 더욱 친해졌습니다.
제가 LA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무실 직원들을 저희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퇴근 후 직원들이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제 집사람은 빈대떡, 불고기, 잡채, 약식 등을 준비하였고, 후식으로 식혜도 내 놓았습니다. LA에 코리아 타운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사람 집에서 제공하는 가정식 음식을 처음 접해보는 저희 직원들은 마냥 즐거워하였습니다. 사교성이 좋은 R은 제 집사람에게 음식이 맛 있다고 칭찬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따금 사무실로 음식을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하였습니다.
LA의 외환 딜러들은 아침에 일찍 사무실에 나옵니다. LA의 시계는 뉴욕보다 3시간 늦습니다. 뉴욕의 딜러들이 9시에 사무실에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사무실로 나오려면 LA에 있는 딜러들은 새벽 6시에 나와야 합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6시에 사무실에 도착하여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보통 5시쯤에 나서야 합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는 제 손에 빈대떡과 약식을 들려서 보내려면 제 집사람은 새벽 4시쯤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여야 했습니다. 제 기억에 아마도 한 달에 1~2번은 제 집사람이 빈대떡과 약식을 싸 주었습니다. 제가 빈대떡과 약식을 싸오는 날이면 사무실의 제 동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였습니다. 특히 R은 빈대떡을 여러 장 확보하여서 자기 책상에 가져다 두고는 조금씩 아껴 먹었습니다. 그리고 퇴근 전에 휴게실에 다시 들러서 혹시라도 남은 음식이 있나 살펴 보고 남은 음식을 자기 집으로 싸 들고 갔습니다.
R하고는 제가 LA를 떠나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4~5년 후였습니다. 제가 파리바 은행 서울지점의 외환, 자금 책임자(Country Treasure)로 일할 때였습니다. 마침 일본 동경에서 세계 외환클럽 총회 (Annual ACI Meeting)가 열렸습니다. 저는 회의 참석차 일본에 가서 짬을 내어 저의 옛 동료 친구들을 만나려고 Bank of America 동경지점을 찾아 갔습니다. 저는 1981년에 Bank of America 동경지점에서 1 개월간 OJT (On-the-Job-Training)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 알게 된 친구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들과 반갑게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한 구석에서 갑자기 큰 목소리로 “이게 누구야?제이!” (“Who is this? Jay!”)라고 소리지르며 달려 오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R이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던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R은 Bank of America의 동경지점에 발령을 받고 3년간 일하였습니다. 저도 그를 반갑게 반기며 몇 년 동안 밀렸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랜만에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일정으로 인하여 그와 다시 만날 수는 없었고 저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그를 다시 만나지는 못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동경에 있을 때에는 전화 통화도 자주 하면서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그와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한 것은 2008년 가을 레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주; 2008년 9월 문을 닫은 150년 역사의 미국 증권회사.) 사태 직후였습니다. 저와 R이 Los Angeles 에서 일할 때 함께 있었던 Henry Chan 이라는 홍콩계 이민자 미국인이 있습니다. (Henry 에 관하여서는 제가 2012.4.27.금요일 모닝커피-제2의 인생경력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Henry와는 이따금 전화로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2008년 가을 전화를 통화하던 중 Henry가 제게 혹시 R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기억한다고 답하였습니다. Henry는 제게 R이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전화해서 위로해 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그러겠노라고 답하고 R의 전화번호를 받아 그에게 전화하였습니다.
저의 전화를 받은 R은 예전의 그답지 않게 전화 목소리가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전화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그저 세일즈맨으로서는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그 이상의 관리자(manager)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는 푸념을 하였습니다. 그는 혼자 일을 할 때에는 곧잘 실적을 올렸으나 조직을 맡아서 일을 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팀웍이 깨지고 실적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를 따라야 할 그의 조직원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부하직원들과의 반목으로 인하여 일하던 은행을 그만 두었습니다. 제가 부럽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팀을 이끌어가는 팀 리더의 덕목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였습니다.그리고 그가 겪은 어려움이 또 한 가지 있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의 은퇴 자산이 크게 줄었다는 – 1/4 토막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리스크 관리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그가 무리한 거래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리스크가 매우 큰 몇 가지 파생상품에 손을 댄 것이 하필이면 2008년 초였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원금만 날아간 것이 아니라 레버리지 효과로 인한 추가 손실까지 있었습니다. 그 날 저는 그와 거의 한 시간 이상 전화 통화를 하며 그를 위로하여야 했습니다.
그 날 제가 그에게 해 준 이야기는 제가 처음 직장 생활을 할 때에 저의 보스셨던 분께서 제게 해 주셨던 이야기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9.27. 환갑 참조) “공경(恭敬)은 위로,책임(責任)은 내가, 공()은 밑으로.” 윗사람을 공경하는 모범을 보여야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리더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믿고 따릅니다. 밑에 사람들(subordinates)의 공을 가로채지 않고 그들에게 공을 돌려야만이 그들이 열심히 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팀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 팀의 능력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우수한 악기 연주자가 훌륭한 지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R은 훌륭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직접 목격하였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그가 뛰어난 세일즈맨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조직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에 그 조직을 잘 이끌 수 있는 리더인가의 문제는 또 다른 것입니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하였으나 R 스스로의 평가에 따르면 그에게는 조직을 이끌어갈 만한 리더십이 부족한 듯 합니다. 그의 세일즈맨으로서의 능력만큼 리더십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그의 은퇴 자산이 줄어든 것도 그에게는 또 다른 불행입니다. 이를 복구하려고 나이 60이 넘은 그는 지금도 계속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은퇴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은퇴 준비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R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그 동안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조그마한 지역은행(Community bank)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여 옮겼다고 합니다.이제는 콧수염도 깎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잘 해보겠다고 다짐합니다.
많이 늦기는 하였으나, R이 그의 새 직장에서 동료들의 신뢰를 받으며 60이 넘은 그의 인생에서 새로 시작한 경력을 잘 마무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동안의 R의 인생경력은 본받아서는 곤란한 반면교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같은 힘든 상황을 겪는 사람이 제 주변에R 말고는 더 이상은 없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