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취미와 특기- 2016. 3. 25.

jaykim1953 2016. 3. 28. 14:55


요즈음에는 개인 신상 정보 보호가 강화되었습니다만 예전에는 개인 신상 정보에 대하여 별로 민감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개인 신상에 대하여 불필요한 것까지 기록, 보관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학년을 올라가게 되면 담임 선생님들은 자기 반 학생들의 신상명세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자가용은 있는지, 집안에 어떤 가재 도구가 있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냉장고, TV, 전축, 피아노, 녹음기 등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식에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가 있는 칸이 있었습니다. 바로 취미특기였습니다. 이 취미와 특기는 심지어 입학원서나 회사의 입사지원서에도 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취미 칸에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독서, 음악 감상, 등산을 적어 넣었습니다. 독서, 음악 감상, 등산의 세 가지가 당시에 제 또래에서는 3 대 국민 취미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특기는 온통, 노래, 그림, 스포츠의 세 가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쩌다 어려서 피아노라도 배운 사람은 특기에 피아노를 적었습니다. 사실 이렇다 하게 오락이나 여흥을 즐길 만한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남 달리 할 줄 아는 특기를 찾아 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직장 입사 지원서에 취미와 특기를 쓸 때에는 조금은 신경을 써서 작성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면접 시험을 보면서 간혹 취미와 특기에 대하여 자세히 묻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1978년 가을 제 친구 Y는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여 필기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 시험장에서 면접관이 Y에게 물었습니다;

“Y군께서는 특기가 스포츠라고 기재하였는데 어떤 스포츠를 잘 하십니까?”

그런데 Y는 실제로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입사원서에 특기는 스포츠라고 적어 놓았으니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입사원서에 허위 사실을 적었다고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엉겁결에 대답을 둘러 댔습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그러자 면접관은 알고 묻는 것인지 그냥 한 번 떠보는 것인지 계속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요? 야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어느 팀에서 했나요? 그리고 포지션은 어디지요?”

,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였고 과() 대항 야구대회에도 출전하였습니다. 제 포지션은 센터 필더입니다.”

Y는 임기응변으로 둘러대어서 답변을 하였습니다. 면접관은 집요하게 캐물었습니다.

좋아하는 야구선수는 누구인가요? 특히 좋아하는 센터필더 포지션의 선수는 누구이지요?”

Y는 갑자기 눈 앞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Y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잘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기 칸을 비워 둘 수도 없어 그냥 스포츠라고 적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면접관은 껄걸 웃으면서 Y군을 나무라듯 이야기하였습니다.

정 특기가 없으면 나의 특기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던가 아니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지 그랬나요?”

다행히 Y는 그 회사에 입사하였고 임원까지 승진한 다음 지금부터 4~5년 전에 은퇴하였습니다.

Y는 직장을 다니면서 이따금 술자리에서 버릇처럼 하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의 취미는 부모님께 효도, 특기는 나라에 충성이야.”

그 당시에 반듯이 취미와 특기를 기록하라고 하였던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별 필요도 없는 것을 칸을 만들어 놓아서 입사원서를 작성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의 특기는 이 것입니다 하고 내놓을 만한 특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 특기라고 적어 놓은 내용들을 실제로 눈 여겨 보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있습니다.

며칠 전 새로 나온 ISA 계좌를 하나 개설하였습니다. 무려 7~8 장에 이르는 가입 양식을 작성하여야 했습니다. 증권사의 입장에서는 고객의 자유 의사로 계좌를 개설하고 고객에게 상품에 대한 충분한 고지와 설명이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양의 가입 서류를 작성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여 불완전판매로 몰리지 않기 위하여 세세한 설명과 가입자가 이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었음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해당 설명서를 확실히 전달하였다는 증빙으로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증권사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일부 불완전판매의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mk.co.kr/2016_3_22_ISA불완전판매0) 표면상으로는 불완전판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7~8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꼼꼼히 들여다 보고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고객은 증권사 직원이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곳에 증권사 직원이 불러주는 대로 쓰고 서명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미국의 사례도 있었습니다만, 이러한 경우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국 법원의 판단은 계약서 내용을 일반인이 읽고 이해해서 서명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과 실제로 고객이 증권사 영업점에 머무른 시간을 비교하였습니다. 고객이 증권사 영업점에 머무른 시간이 현격히 짧으면 증권사가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여 고객이 상품을 이해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불완전판매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증권사 영업사원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증권사는 물러난 직원의 자리에 다른 직원을 앉히고 또 다시 불완전판매의 가능성이 높은 똑 같은 영업행위를 계속 시킬 것입니다.

예전에는 취미를 쓰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독서, 음악감상, 등산을, 그리고 특기를 쓰라 하면 노래, 그림, 스포츠를 썼습니다. 특별히 쓸 것이 없었지만 칸을 비워둘 수 없어서 썼습니다. 지금도 증권사에서 계좌를 개설하거나 상품을 구입할 때에 상품 설명을 잘 듣고 이해하였다는 글을 고객이 자필로 씁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계좌를 개설할 수 없고, 또는 원하는 금융상품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저 빈 칸으로 둘 수 없어서 칸을 메우는 그런 식의 서류 작성은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증권사 창구에서는 증권사 직원이 불러주는 문구를 서류 양식의 해당 칸에 받아 적고 있는 고객이 있을 것입니다.

금융소비자가 충분한 상품 지식을 가지고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상품을 구입하여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