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규제- 2016. 4. 22.

jaykim1953 2016. 4. 22. 10:24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규제에 대한 원성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규제란 없어져야 할 나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규제와 관련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언론에 보도된 야구장 맥주보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느닷없이 국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동시에 나서서 야구장의 맥주보이를 없애겠다고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donga.com/2016_4_17_야구장맥주보이)

국세청과 식약처의 논리는 대강 이렇습니다;

맥주보이가 허가된 장소인 영업장에서만 주류를 판매해야 하는 주세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국세청의 의견이다. 일반 야구장 좌석은 영업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이 쉽게 음주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점도 반영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동식 주류 판매원이 관중의 나이를 일일이 확인해 주류를 판매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청소년 음주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맥주보이의 주류 판매를 재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국세청과 식약처의 이러한 조치는 여론의 커다란 역풍에 휩싸였습니다. (관련기사: hani.co.kr/2016/4/18 차라리 홈런을 없애라) 그뿐 아니라 국세청과 식약처의 조치는 스스로 자신들의 직무태만을 폭로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하였을 때부터 맥주보이는 야구장에 있었고 지나간 35년간 계속 있어 왔다는 것입니다. 국세청과 식약처는 지난 35년간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새로운 잘못이라도 찾아낸 듯이 요란을 떨었던 것입니다.

국세청과 식약처는 결국 그들의 결정을 번복하여야만 했습니다. (관련기사: chosun.com/2016/04/21/2016 맥주보이허용한다) 국세청과 식약처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면서 불과 2~3일 전에 펼쳤던 그들의 논리를 180도 바꾸었습니다.

식약처는 사안을 다시 검토한 끝에 "일반음식점 영업신고를 한 이가 제한된 야구장 내에서 입장객을 상대로 고객 편의를 위해 음식의 현장판매가 이뤄지므로 식품위생법상 허용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국세청은 식품위생법상 영업허가를 받은 이가 세무서에 신고하면 주류판매면허를 자동으로 부여하는 주세법 규정을 고려해 식약처 판단을 근거로 맥주보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렇게 유연한 해석이 가능한 사안이었으면 진작에 맥주보이를 합법화하는 조치를 먼저 취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법보다도 우선하는 관행이 적지 않습니다. (금요일모닝커피_2016.4.15.) 그리고 한 번 관행으로 굳어지게 되면 이를 수정하는 작업은 매우 어렵습니다. 맥주보이의 예도 그렇습니다. 국세청과 식약처에서 나름대로 분석한 처음의 의견 대로라면 위법적인 요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35년간 야구장에서의 맥주보이가 들고 다니는 맥주를 관중들이 사서 마셔 온 관행을 이제 와서 단칼에 바꾸겠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관행을 고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가장 오래 되고 잘못된 관행은 차명계좌였습니다. 이 관행은 19938월 여름 휴가기간 중에 전광석화와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합니다. 처음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때에는 약간의 혼란이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우리나라의 금융관행에 당연한 제도로 뿌리 내리고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금융실명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금융실명제는 한 두 가지의 지엽적인 실무적 관행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맥주보이의 경우에는 야구장에서 맥주를 파는 지엽적인 관행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맥주보이와 유사한 관행으로 치맥 배달은 허용됩니다. 그러면서 맥주보이는 왜 안되느냐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와인 택배 판매도 주류를 배달 받는 사람이 미성년자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데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야구장에서 맥주보이가 판매하는 맥주가 미성년자에게 팔릴 수 있다는 것을 문제 삼는지 거칠게 항의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규제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규제가 없다면 사회 체제는 무너지고 무질서한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특히나 금융 분야에서는 더욱 규제가 필요합니다. 금융분야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여서 무턱대고 규제를 만들어 내어서는 곤란합니다. 필요한 규제, 소비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금융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합니다.

금융기관에서는 소비자가 작성하여야 할 서류가 많습니다. 수북이 쌓여 있는 서류를 읽지도 않고 서명하고 내용을 읽고 이해하였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기도 합니다. 금융기관에서 소비자에게 작성하도록 하는 각종 서류 가운데에는 내용이나 성격이 비슷비슷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을 통합하고 간소화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법률적으로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소비자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금융기관이 소비자에게서 받는 서류에는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소비자의 동의 (同意, consent)가 필요한 경우- 예를 들어 자산운용회사에 자신의 계좌에 있는 돈의 운용을 위탁하는 경우 반드시 계좌 명의인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또는 금융기관의 고지를 이해하였음을 나타내는 경우에도 서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의 경우는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있음을 소비자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밖에 자신의 계좌에서 거래를 일으킬 때에 승인을 하기 위하여 서명을 등록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에는 자신의 서명이 있어야만 하고 그 서명은 사전에 등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서류들은 상당 부분이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에 의한 서류이거나, 금융기관의 책임회피성 서류인 경우가 많습니다.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으로 어떤 서류에 금융소비자의 서명을 받아서 고객과 금융기관을 공정하게 보호할 것인지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규제하여야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철폐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규제는 철저히 지켜져야만 합니다.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원칙에 입각한 규제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문가 - 2016. 5. 6.  (0) 2016.05.06
연고판매 (緣故販賣) 2016. 4. 29.  (0) 2016.04.29
비즈니스 매너- 2016. 4. 15.  (0) 2016.04.15
재벌과 대기업- 2016. 4. 8.  (0) 2016.04.09
强者의 아량- 2016. 4. 1.  (0) 201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