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기업문화, 노조문화 - 2016. 5. 20.

jaykim1953 2016. 5. 20. 10:07


지난 4월의 국회의원 총선 결과 집권여당이 제 1당의 지위를 내어 놓게 되었습니다그러자 이 곳 저 곳에서 정부와 여당의 실정과 과오를 지적하며 개선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 가운데 하나가 노조의 이사회 참여입니다. (관련기사chosun.com/2016/05/10_노조_이사회_참여)

이 제도는 일부 유럽국가들이 도입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기도 하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 노동조합의 행태로 보아 건설적인 기업 경영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사사건건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부정적인 발목 잡기를 할 것이라는 우려를 합니다.

그 동안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던 대기업 오너들의 여러 가지 갑질 논란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기업문화경영체질을 개선하기 위하여서는 기업주 중심의 경영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을 개인 소유물인양 취급하거나 종업원을 종 부리듯 하는 작태는 지탄 받아 마땅합니다기업주가 임직원을 머슴 취급하는 기업 문화라면 이는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4.13. 참조)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노조에 대한 신뢰 또한 믿음직스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노조의 상급기관이 투쟁을 벌여 왔던 모습을 보면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이유 가운데에는 노사협상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가 적지 않습니다그리고 상급노조의 조직적인 지침에 따라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문제가 아닌 다른 회사의 문제에 동조파업 하는 경우 또한 상당히 많습니다. (관련 신문사설: hankyung.com/2013/12/15_철도노조동조파업)

이러한 양면성을 바라보자면 과연 노조의 이사회 참여가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기업주들이 노조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조치를 할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조가 기업을 살리려는 생각보다는 기업이 망하고 문을 닫게 되어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 불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심과 불신이 싹트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상대방을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심과 불신을 마감하려면 상호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미 두 당사자 사이에 가로 놓여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불신의 골을 어떻게 메우고 신뢰를 쌓을 것인가 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야만 노조의 이사회 참여 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게 만들기 위하여서는 조금씩 양보하면서 무엇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서로에게 신뢰를 보이도록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구호를 바꾸는 것입니다.

타도 XX’, ‘목숨 걸고 OO 사수’, ‘악덕 기업주 XXX 는 즉시 사퇴하고 자폭하라등등 극단적인 표어와 구호는 상대방을 자극하기만 할 뿐 서로의 신뢰를 쌓아 가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호는 노조가 스스로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스스로의 결속력을 강화하려고 한다는 것은 결속력이 이미 약화되어 있거나 스스로의 주장이 논리적 약점이 있어 물리적인 힘에 의존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투쟁의 강도를 높여 밀어 부치려 하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자체의 결속력을 높여야 합니다.

지난 2008년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벌여 물류대란이 일어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화물연대가 내걸었던 구호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였습니다. 그 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그들의 근로조건이나 임금 등의 개선이 아닌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슈인 것입니다. 이러한 구호를 보면 이들은 세상이 바뀔 때까지 끊임없이 투쟁과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심이 듭니다. 그들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는 어떠한 협상도 임시 방편일 뿐 궁극의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파업과 투쟁의 현장에는 외부세력이 투쟁을 격려하는 일명 희망버스가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버스는 투쟁을 위한 투쟁을 부추기는 외부세력의 개입일 따름입니다. 희망버스를 타고 투쟁의 현장에 나타난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력한 투쟁과 그로 인한 기업활동의 마비를 목적으로 한다는 의심이 듭니다. 오죽하면 해당 기업 당사자들과 주변 주민들은 이들을 절망버스라고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절망버스 오지마라) 그런가 하면 폭력시위 논란을 일으켰던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부터 탈퇴한 기업의 노조가 자기네 기업을 살린 사례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무덤 파는 민노총)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마치 노조가 있어서는 안 될 조직인양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노조는 필요합니다. 사용자에 대응하여 피사용자들이 단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노조가 본연의 목적과 관련이 없는 정치성을 띈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노조가 그러한 정치색을 희석시키지 않는 한 기업의 이사회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노조가 이사회 참여를 목적으로 더욱 강력한 투쟁을 벌이면 벌일수록 노조의 정치색과 단결을 위한 과격한 구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몸을 움츠리고 대화의 문을 크게 열지 못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소통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소통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스스로 소통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소통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닌가 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가 쌓이면 그 때에는 조금씩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당장 눈 앞의 많은 문제들을 서로 대치하고 자기 주장만 하고, 구호만 외치는 현실은 앞으로의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으나 구호만이라도 공격적인 내용을 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부에서는 경제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연휴를 끼고 있는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하는 구호라도 만들어 노조와 사용자가 함께 외쳐 보았으면 합니다.

돈의 흐름을 멈추지 않게 하여 경기를 살려 보자!”

물류를 멈춰서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경기를 살리고 경제를 일으켜서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상생(常生)의 지혜를 보였으면 합니다.

판을 깨려는 움직임보다는 판을 키우려는 움직임에 앞장 서는 기업 문화, 노조 문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