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비정규직- 2016. 5. 27.

jaykim1953 2016. 5. 27. 09:37


이번 주 월요일 (5 23) 아침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FAPC 이메일 5/22/2016) 미국 뉴욕에 있는 FAPC (Fifth Avenue Presbyterian Church)에서 뉴욕 시간으로 일요일 (5 22) 저녁에 보낸 것입니다. FAPC는 제가 뉴욕에 살 때에 다니던 교회입니다. 그 곳 이메일 리스트서브(listserv)에 제가 아직 올라 있어서 제게도 주기적으로 이 교회의 이메일이 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받은 이메일의 내용은 금년도 -2016- 의 교회 예산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동안 예산 부족으로 인하여 $394,000을 목표로 특별 재정 지원 모금 (fund raising)을 하였으나 약정 기간이 끝난 4 22일 현재 $212,000 의 약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금액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메일 내용 가운데 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원래 목표하였던 금액만큼의 충분한 재정 모금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교회 재정을 긴축운용 하겠다는 것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우리의 정서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FAPC가 긴축재정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세 가지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재정 지출을 미루는 것입니다. 큰 금액의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어서 당장의 지출을 줄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새로운 직원을 뽑지 않고 임시직-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는 정년 퇴임하는 사람들의 대체 인력을 뽑지 않아 임금을 절약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와는 정서가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조직의 재정이 어려우면 그 조직의 책임자들이 제일 먼저 솔선수범하여 임금을 부분적으로 반납합니다. (관련기사: www.yonhapnews.co.kr/2016/05/23/NH임금10%반납) 그런데 FAPC에서는 아무도 임금을 반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규직으로 충원하여야 할 자리를 비정규직 인력으로 대체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비정규직은 매우 부도덕한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관련기사: 한겨레_2016/5/20-일터의 불평등)

피고용자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고용의 안정이라는 면에서는 매우 취약합니다. 그야 말로 언제 잘려 나갈지도 모르는 파리 목숨과 같은 처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임금, 복지 혜택 등에서 정규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이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FAPC의 이메일에서도 이러한 점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부족한 예산에 대한 대책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비정규직을 고용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곧 비정규직=비용절감의 공식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FAPC의 경우에는 직설적으로 비용절감을 위하여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겉으로 내놓고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와는 상황 대처 방법이 직설적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비정규직은 나쁜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너무 획일적인 평가를 피하였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FAPC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조직에는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습니다.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업부문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정규직을 새로 뽑는 것이 기업에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업이 또는 어떤 조직이 비정규직을 뽑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모두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정규직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판단은 다분히 도덕적인 또는 감상적인 판단이 앞선 것입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피고용인은 똑 같은 인격적 존재인데 신분과 지위에 차이를 두고 대접을 달리 한다는 것은 다분히 도덕적인 판단에 의한 평가입니다.

피고용인 개인의 인격이나 존엄성에 차이를 두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노동력이 필요한 기업, 조직 등의 고용주가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어서 비정규직으로 노동력을 고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고용주가 의도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거나 인격적으로 달리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악용하려는 고용주가 없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업의 불확실성, 낮은 수익성 등의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뽑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이 안정되고 수익성이 개선되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례가 많습니다.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이 되고 마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피하여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고용주가 도덕적으로 건전한 판단을 하여 어느 정도 사업성이 안정되고 수익성이 뒷받침 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에 대한 갈등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로 굳어져 가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분이 계시다면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권해 드립니다. 감성적으로는 비정규직이 그리 바람직한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비정규직이 필요한 상황도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도 비정규직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고용주의 이익을 위하여 악용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도덕적,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