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우스개 소리들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옳은 표기-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 (서울市 障碍人 福祉館),
잘못된 표기- 서울시장 애인 복지관 (서울市長 愛人 福祉館)
띄어 쓰기를 잘못하여 엉뚱한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나라 말도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뜻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외국어를 사용하여 표현할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요즈음 길 거리를 다니다 보면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 표현된 간판보다는 외국어와 한자어 표기가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금융과 관련된 용어들이 잘 못 표현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강남의 번화가 가운데 하나인 압구정동의 지하철역 한쪽에는 커다란 간판에 은행 이름이 써 있고 그 아래에 영어로 ‘Private Bank’라고 써 있습니다. ‘Private Bank’라고 쓴 의도는 무엇일까요? 단어 자체의 뜻은 사기업(私企業) 은행- 주식이 상장 되지 않고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설립한 은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제 추측으로는 이 간판을 쓴 은행의 의도는 개인금융- 프라이빗 뱅킹 (Private banking)을 영위하는 은행일 것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Private banking bank’ 라거나 ‘Private banking service’ 또는 단순히 ‘Private banking’이라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간단한 금융 용어라 하더라도 외국어로 표현할 때에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집착하기 보다는 정확한 용어를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약 30여 년 전에 국내에 외국은행과 국내 자본의 합작 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설립작업에 잠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경험한 일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은행 입구 안내판에 고객 창구 등과 같은 이름을 써야 했습니다. 이러한 용어를 영어로 무엇이라고 써야 할 것인지를 놓고 우왕좌왕하였습니다. 경영층에는 일부 외국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사소한 내용까지 일일이 묻기는 곤란하였습니다.
한국계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전직을 한 직원들끼리 상의하여 만들어낸 번역은;
고객 창구- individual customer window 였습니다.
물론 틀린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개점을 하루 앞 둔 날 저녁에 사무실을 두루 둘러 보던 최고 경영층 외국인의 눈에 이 안내판들이 보였고, 즉시 이 간판들을 철거하고 새 것으로 바꿔달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새로이 알려준 이름들은:
고객 창구- banking hall 이었습니다.
반대로 영어로 된 용어를 우리 말로 바꾸는 데에도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말로 ‘자산 관리’ 라고 번역되는 용어는 여러 가지 용어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asset management 가 있고 wealth management도 있습니다. 엄밀히 따진다면 wealth management 는 자산 관리가 아니라 재산 관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Wealth management 의 영역은 단순히 고객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의미보다는 재산 형성, 유산 및 상속 준비, 보험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하게 됩니다. Asset management 라는 말은 그야 말로 ‘자산관리’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산관리회사라고 하면 투자관리를 하여주는 회사, 또는 투자자문회사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투자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자산관리라는 용어는 보다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회수가 어렵게 된 부실 자산들- 영어로 non-performing loan (NPL) 혹은 (adversely) classified assets 을 관리하는 회사를 뜻하기도 합니다. 회수가 어렵거나 이자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자산들을 모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데까지 회수하는 작업을 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입니다. 일반적으로 NPL또는 classified assets 등은 액면가액 (최초에 여신이 집행된 금액)보다 할인된 금액에 인수하여 이를 유가증권화하여 투자자에게 판매합니다. 이러한 유가증권을 CLO (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또는 CBO (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여신이 대출의 형태로 일어났으면 CLO가 되고, 최초의 여신이 채권(債券, bond)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CBO가 됩니다. 이렇게 유가증권화된CLO, CBO등의 최초에 일어난 여신을 기초자산 – 영어로 underlying assets- 이라고 합니다. CLO 또는 CBO의 표면 금액은 기초자산의 액면 금액보다 작습니다. CLO, CBO의 금액을 기초자산 금액으로 나눈 차이가 할인율이 됩니다. 예를 들어 기초자산 금액이 $1억 인데 이를 바탕으로 $3천만 상당의 CLO를 발행하였다면 할인율은 70%가 됩니다.
자산관리회사에서 자산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asset manager 라고 합니다.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asset manager도 두 가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첫 번째로는 투자 관리를 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로는 CLO 또는 CBO등의 기초자산이 되는 부실자산을 회수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asset manager 라고 부릅니다.
최근 사드 보복에 따른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중국으로부터 오는 관광객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는 중국식 간체자(簡體字)한자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간체자를 쓰는 나라는 중국뿐이니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위한 간판 가운데 혼란을 야기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형외과 (整形外科)가 바로 그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정형외과란 ‘근육이나 뼈대 따위의 운동 기관의 기능 장애를 치료하는 의학 분야’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중국어로 정형외과는 우리 말의 성형외과(成形外科)를 의미합니다. 우리 말에서 성형외과란 ‘상처 교정, 기능 장애 회복, 외모 개선 따위를 목적으로 하는 의학 분야’ 입니다. 따라서 한자어로 ‘정형외과’라고 씌어 있다면 그 곳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정형외과’인지, 아니면 ‘성형외과’를 중국 관광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써 놓은 것인지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 한자어로는 ‘整形外科’라고 써 놓고 그 옆에 한글로 ‘성형외과’라고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곳은 ‘성형외과’입니다.
띄어쓰기를 조금만 잘 못 하여도 엉뚱한 말이 되듯이, 같은 말도 조금씩 다른 뜻으로 사용될 수 있고, 또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용어를 조금씩 달리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혼란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run’ 이라는 단어는 현재, 과거, 과거 분사가 모두 같은 형태 ‘run’ 입니다. 그러면 그 단어가 현재형으로 쓰인 것인지, 혹은 과거형으로 쓰인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영어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해 주신 말씀은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말, 비슷한 말, 한자어로 씌어서 다른 의미인 말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문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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