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항공사들이 항공권 가격을 낮추고 그 대신 승객들에게 무료 식사 제공을 중단한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입니다.
10여년 전 미국 국내선 항공기를 이용하면서 제가 겪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식사 시간이 다가 오자 승무원이 메뉴판을 들고 다니며 원하는 사람은 음식을 사서 식사하라며 돌아 다녔습니다. 저는 메뉴판 어린이 식사 칸에 P & J Sandwich 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약 $3~5 정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P & J Sandwich 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익숙하지 않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P & J Sandwich 는 피넛 버터 & 젤리 (Peanut butter & Jelly) 샌드위치 입니다. 식빵 두 쪽에 한 쪽에는 피넛버터를 바르고 다른 쪽에는 딸기 잼을 듬뿍 바른 샌드위치입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간식용으로 잘 알려진 것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남대문 시장 등에는 소위 양키 물건 장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미군 부대 안의 PX 등에서 불법 반출된 군납 물건들을 팔았습니다. 그 곳에서 파는 피넛 버터와 딸기 잼을 저희 어머니께서 사오셔서 제게 P & J Sandwich를 만들어 주시곤 하였습니다. 부정한 불법 군수물자를 사들여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먹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당시- 1950~60 년대-에는 국내 산업이 이렇다 할 제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물건들의 품질이 국산 물건들보다 좋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창 전쟁을 치르던 1950~ 1953 에는 미군 부대에서 불법 유출된 물건들이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소비생활에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유래한 음식 가운데 하나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부대찌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시절에 부산 국제시장에서는 이북에서 월남하여 피난 온 사람들이 미제 물건을 팔면서 ‘메이드 인 유사제라요..,’ 라고 소리치며 팔았답니다. ‘Made in USA’ 라고 씌어 있는 것을 ‘메이드 인 유사’ 라고 읽고 미국에서 만든 상품이라는 의미의 ‘미제’ (美製)에서 ‘제’(製) 자를 따와 ‘메이드 인 유사제’ 라는 말을 만들어 쓰고는 하였답니다.
이 당시 불법 유통되던 미군 부대 물건이 시장에서 버젓이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서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국산품의 상품 종류와 품질에서 불법 유통되는 물건보다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당시 우리나라 산업이 보여 줄 수 있는 경쟁력은 지극히 미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955년 경복궁에서 개최된 우리나라 산업박람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제품이 ‘시발자동차’였다고 합니다.
이 자동차는 비록 엔진은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부속을 미군이 쓰다 버린 지프차에서 조달하였으며 차체는 드럼통을 두드려 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준의 자동차가 산업박람회에서 대상을 받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럴듯한 자동차는 모두 외제차였고, 특히 세계 제 2차 대전의 승전국이었고, 한국 전쟁에 북한군의 침략에 대응해서 거의 무제한적인 군수품을 우리나라에 들여왔던 사람들이 바로 미군이었습니다. 그 미군들이 사용하던 물건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제’ (美製) 였습니다. 그 당시 품질이 좋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미제였습니다. 그리고 미제 물건은 정상적인 경로를 통하여 수입되는 물건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불법 유통 상품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금융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시중금리는 연 15~25%를 넘나드는데 은행에서 지급하는 예금 금리는 불과 연간 10~12% 수준이었습니다. 은행의 대출 금리는 이보다 높아 연15~20% 수준이었으나 예금은 부족하고 대출수요는 많아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습니다. 1954년 당시의 기사를 보면 국내 9대 도시의 예금 총액은 15,645백만환(*주: 당시 화폐 단위는 환이었습니다)이고 대출 금액은 21,632백만환이었습니다. (관련기사:1954/11/4_경향신문_금융동향)약 60억 환의 대출 초과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사금융(私金融)이 횡행하게 되었습니다. 사금융의 대표적인 것이 계(契)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 5. 30 참조) 그런데 계는 구조적으로 계주(契主)의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매우 취약한 구조의 금융거래입니다. 실제로 1950~60년대에는 계주가 곗돈을 가지고 잠적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는 1970년대에도 심심치 않게 계주가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일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1974/3/26_동아일보_계주잠적) 소위 계가 깨지는 일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과거 1960년대~70년대에 있었던 계는 우리나라의 공금융이 제대로 발달하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고리의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소요자금을 조금이라도 먼저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금리보다는 높은 금리의 이자소득을 기대하여서 계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신용상태가 낮은 서민들은 조금이라도 필요한 자금을 먼저 당겨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계를 들기도 합니다. 또는 과거 같지 않은 낮은 금리에 실망하여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 소득을 기대하여서 계를 가입하기도 합니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는 소위 특권층의 이너 서클(inner circle) 의식에서 고액의 계를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계는 어떤 의미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yonhapnews.co.kr/bulletin_2017
예전에 우리가 없이 살던 시절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불법유통 상품도 마다하지 않고 사용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P & J Sandwich 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정상적인 통로를 통하여 적법하게 수입되고, 보다 더 위생적으로 유통된 상품을 구입하여 쌘드위치를 만들어 먹습니다.
우리의 산업- 금융, 제조 등- 도 이제는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고 국민들에게 좋은 제품,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융이 아직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음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우리의 금융기관들이 보다 더 노력하고, 감독당국, 정책당국에서도 더욱 정진하여 우리나라의 금융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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