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저녁 스포츠 뉴스 시간에는 뜻하지 않은 폭력적인 장면이 방송되었습니다. 프로 야구 경기 도중 선수들의 감정이 격앙되어 몸 싸움을 벌이고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관련동영상: sports.news.naver.com_2017/5/21_벤치클리어링)
아직 젊은 혈기의 운동선수들이 승부욕을 앞세우다 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운동경기장에서는 언제고 이러한 몸 싸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의 동영상을 보며 뜻 밖에 놀라운 장면을 발견하였습니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벤치에서 뛰어나온 한 사람이 몸을 날려 발길질로 상대방 선수를 가격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야구 선수들은 발 바닥에 땅을 박차기 좋도록 스파이크를 박아 놓은 신발을 신습니다. 그런 신발을 신고 발바닥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차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발길질하는 사람의 등번호를 보고 소속팀의 웹 사이트에 가서 확인한 결과 그 사람은 선수가 아닌 1군 주루 코치였습니다. 코치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선수들을 진정시키고 보호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선수보다도 더욱 흥분하여 상대방 팀 선수들에게 발길질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연장서열 가치관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선수들이 연장자인 코치에게까지 덤벼들지는 못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놓고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 발길질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동선수들- 특히나 한창 젊은 혈기가 왕성한 선수들에게 운동 경기 중에 이성적인 행동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승부에 집중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흥분할 가능성도 있고 자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운동경기를 하다가 선수들을 흥분시킬 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반응 정도는 선수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하였을 시기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의 야구 팀에는 유난히 나이든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함상윤, 박해종 등의 선수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실업팀에서 야구를 하다가 군대까지 제대하고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7. 4. 14. 참조) 박해종 선수와 함상윤 선수는 1977년에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봉연 선수는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입학하여 군대를 마친 후 학년에서는 김봉연 선수가 위였고, 고등학교 졸업년도에서는 박해종 선수가 빨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년도에 따른 선후배의 서열이 매서웠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박해종, 함상윤 선수가 가장 연장자인 셈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사이의 경기에는 남다른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197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간의 야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당연히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 선수가 등판하리라 예상하였으나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등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사: 동아일보_1978/4/1_최동원 컨디션 난조) 고려대학교에서는 당시 사이드 암 투수로 기대를 모으던 노상수 선수가 나왔습니다. 연세대학교 선수들은 노상수 선수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경기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관련기사: 동아일보_1978/4/15-고려대 승리) 비록 김봉연 선수가 경기 후반에 2점 홈런을 쳤으나 3:2 한 점차로 분패하였습니다. 그러자 일부 흥분한 관중과 연대 선수들이 고대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직접적인 몸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서로 험한 말을 주고 받으며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이 때에 노장선수들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괄괄한 성격의 김봉연 선수는 고대선수단 측을 향하여 무엇인가 큰 소리로 야단을 쳤습니다. 사실 나이로 치면 김봉연 선수는 고대 선수들 누구도 감히 대들 수 없는 선배입니다. 그런 선수가 야단을 치니 고대 선수들은 그저 대꾸를 안 할 뿐 얼굴 표정은 잔뜩 불만에 찬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반면 박해종 선수는 자기 선수들- 연세대학교 선수들을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만약 팀에서 최연장자인 박해종 선수마저 앞에 나서서 고대선수들을 나무랐다면 연세대학교 선수들은 지난 일요일 대전구장에서 있었던 벤치 클리어링과 다름 없이 벤치를 박차고 나와 그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 팀에서 연장자,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지난 해에는 한화 팀의 주장이었던 정근우 선수가 고의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몸에 맞는 공을 맞고도 자신의 팀 덕 아웃을 향하여 진정시키는 몸짓으로 경기를 안정시킨 것이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스포츠경향_2016/6/23_주장의 품격) 그런 팀이 지난 일요일에는 두 번의 벤치 클리어링으로 경기 분위기를 흐렸다는 것이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비록 다른 팀 소속 선수라 하더라도 같은 운동장에서 함께 경기를 벌이는 상대 팀 선수를 동료로서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벤치 클리어링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도 그리 잘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프로 운동 선수들은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팬들의 인기가 없다면 이는 곧 선수의 상품성이 없는 것이고 이는 선수의 생명을 단축하게 됩니다. 프로 구단의 입장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선수를 애써 함께할 이유가 없습니다.
같은 날 저는 인천 스카이 72 골프장에서 있었던 SK 텔레콤 오픈 골프 경기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마지막 18번 홀의 갤러리 좌석에서 경기를 지켜 보았습니다. 마지막 홀에서 홀 아웃한 선수들이 갤러리를 향하여 자신이 사용한 골프 볼을 던져 주곤 하였습니다. 저는 제 손자와 함께 갔었는데 불행히도 선수들이 던져주는 공을 하나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몹시 실망한 제 손자가 갤러리 석 맨 앞쪽에 통로 근처의 빈 곳으로 나아가 선수들이 던져주는 공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어 제가 함께 따라 갔습니다. 마지막 조 선수들이 홀 아웃 하자 제 손자는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부르며 손을 벌렸습니다. 그러자 한 선수가 제 손자와 눈을 마주치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손을 뻗어 제 손자의 손에 공을 하나 쥐어 줬습니다. 제 손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했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박상현 선수였습니다. 제 손자의 입장에서는 박상현 선수는 팬 서비스를 제대로 한 것이고, 제 손자는 아마도 박상현 선수를 오래 기억하며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선수가 있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후 갤러리 석을 벗어나 나가는 길로 향하던 중에 본부석 옆을 지나갔습니다. 마침 최경주 선수가 스코어 카드를 내려고 본부석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제 손자와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라고 묻자, 최경주 선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제 손자를 안전선 안 쪽으로 데리고 가서 포즈를 취하여 주었습니다. 또 한 번의 팬 서비스였습니다.
프로 골퍼들의 팬 서비스에 한껏 기분이 좋았었으나 저녁 시간에 스포츠 뉴스에 나온 헤드라인은 보기에도 민망한 야구장의 벤치 클리어링 사건이었습니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합니다. 프로 야구 선수는 야구를 잘하고 팬들을 즐겁게 하여야 합니다. 프로 골퍼는 골프를 잘 치고 팬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일요일 대전에서의 벤치 클리어링을 야기한 선수들은 프로답지 못하였습니다.
반드시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프로페셔널 다움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산 운용의 프로페셔널은 자산 운용의 결과 수익을 잘 올려야 합니다. 리스크 관리의 프로페셔널은 자신이 관리하는 거래와 자산에서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프로페셔널에게는 적지 않은 보상이 지급됩니다. 프로는 그 보상에 상응하는 실력과 활약이 뒤따라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보다 이성적인 대응을 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프로가 진정한 프로페셔널다움을 보여주고 진정한 프로가 존중 받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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