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미니 보트린- 2018. 1. 12.

jaykim1953 2018. 1. 11. 23:30

미니 보트린’ (Minnie Vautrin)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습니다. 본명은 Wilhelmina Vautrin 이지만 미니 보트린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미국 출신의 선교사입니다. 이 분은 1886. 9. 27.에 태어나서 1941. 5. 14.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55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간 분입니다. 이 분으로 인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난징(南京) 대학살 사건입니다.
지난 12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날이 바로 1937년 난징에서 일본군 관동군에 의한 대학살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과 사과, 보상에 관하여서는 수 많은 외교, 정치적인 문건들과 기록이 있습니다.

난징 대학살 사건과 관련된 

수 많은 기록과 관련 서적, 연구 논문 등이  미국의 선교사 미니 보트린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 엄청난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려졌을 수도 있습니다.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그녀가 책임지고 있던 대학에 여자들을 보호하고 일본군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일기를 통하여 전세계에 난징 대학살이라는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고향인 미국의 일리노이 주로 돌아가서 난징 대학살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시기는 난징 대학살이 발생한 때로부터 불과 4년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난징 대학살이나 미니 보트린에 관하여서는 저보다도 더 학식 높고 연구를 많이 하신 분들이 수 많은 글과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주제 넘게 무어라 이야기할 사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 보트린의 이야기로 오늘의 금요일 모닝커피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경제와 금융구조가 막 시작할 무렵인 1950년 한국 전쟁- 6.25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한국은행 금고에 국가가 보유한 금()을 보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금괴(bullion)의 형태로 보관하였습니다. 금괴 하나의 무게는 약 400 온스 ( 11.3 Kg)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1. 12. 23. 참조) 알려진 바로는 한국은행 금고에 그 때 약 3톤이 넘는 금괴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한국은행에서는 금괴의 처리가 큰 문제였습니다. 중앙정부는 지방으로 피란을 가려고 하는데 막대한 양의 금괴를 어찌하여야 할 것인지 아무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김일환 대령이라는 분이 등장합니다. 국방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한국은행 금괴에 대하여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데 유독 김일환 대령이라는 분이 한국은행 총재에게 전화를 하여 대책을 묻고 군용 트럭을 동원하고 호위병력을 붙여서 금괴를 운반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우리 국군이 사용하던 트럭은 주로 일본군이 쓰다가 버리고 간 일제 트럭과 미군이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사용하던 것들입니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진주하면서 가지고 들어왔다가 원조물자로 남겨 놓고 간 트럭이었습니다. 가장 적재 무게가 큰 트럭이 미군이 쓰던 2 1/2톤 트럭이었고, 2 1/2톤의 금괴를 싣고 군의 호송을 받으며 한국은행 금고 안에 있던 금괴가 무사히 피란 수도인 부산까지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금고에 원래 있었던 금의 양은 3톤이 넘었고, 금뿐 아니라 은도 적지 않은 양이 있었다고 합니다. 2 1/2톤 트럭 한 대 분의 금괴를 싣고 서울을 빠져 나갔지만 나머지 금과 은은 결국 북한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도 트럭 한 대 분의 금괴를 지켜낼 수 있었던 데에는 김일환 대령이라는 분의 공이 지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쟁이 나고 모두 자기 앞 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시기에 나라의 금고를 지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분의 경력을 잠시 살펴보면, (인물소개-김일환 참조) 중국의 만주 하얼빈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의 육군경리학교를 나와 경리장교로 근무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의 상업학교는 비록 고등학교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수업하는 내용은 경제원론, 상업부기,공업부기, 원가회계 등 지금의 상경계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많은 부분을 가르쳤었습니다. 그리고 육군 경리학교를 수료하고 경리장교로 근무하여 경제와 재무 계통에 상당한 경험과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전쟁이 터지고 임시 수도로 정부를 옮기는 급박한 순간에 중앙은행의 보유 금괴를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전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실제로 금괴를 직접 보관하는 양은 그리 많지 않고 주요 중앙은행에 보관을 위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금 보유량을 외국의 중앙은행에 맡겨 놓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이 해외에 보유 금괴를 보관시키고 있었더라면 한국전쟁 때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닥쳐도 금괴를 옮기느라 군병력을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김일환 대령이라는 분의 기지로 한국은행의 금괴가 무사히 임시 수도로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는 합니다만, 만약 김일환 대령 같은 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보유금 전량이 북한군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사태가 발생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전쟁을 치르느라 재정이 핍박할 때인데 보유 금마저 적군의 손에 빼앗기게 되면 나라 경제는 더욱 더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난징 대학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미니 보트린이라는 한 여성의 일기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듯이, 육군 참모총장도 아니고, 장성도 아닌 육군 대령 한 사람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금 보유량이 적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이 그 이후 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하였고, 또 말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났을 때 한국은행의 국가 보유 금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하여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신문보도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렵다고 종업원 해고 안 돼라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관련기사: 서울신움_2018/1/6_김동연 부총리) 이 기사를 읽어 보면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당연히 고용주에게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늘어난 비용 부담에 대한 대비책으로 고용 인원을 줄이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원 감축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 라인을 경제부총리가 직접 내리게 되면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비용 증가의 부담을 떠안게 되고, 그 결과 자칫 손실을 입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동안 정치적인 언급은 가급적 피하였습니다. 그러데 지금의 정부가 취하는 정책을 보면; (1) 임금인상과 (2)고용창출 그리고 (3) 물가안정과 (4)경기부양의 4 가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기업과 자영업자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의도하는 4 가지 정책 목표는 서로 상호 충돌하고 모순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4 가지 목표가 조화롭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미니 보트린이 아니더라도 잘 못 된 행정부의 집행은 앞 서서 막고 저항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김일환 대령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손길이 미쳐 닫지 않는 곳에 앞장 서서 필요한 조치를 하는 정부 안의 책임자가 아쉽습니다. 가능하지 않은 정책 목표들에 대하여서는 실현 가능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 정책 앞에서는 감히 이의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쉬움이 큽니다.

 

 

[한 가지 사족을 달아 보면; 국가 보유 금괴를 한국은행 금고가 아닌 외국의 중앙은행에 보관하고 있다면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금고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집니다. 정확한양은 알 수 없으나 약간의 금괴가 일부 남아 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은행 금고에는 아직 유통되지 않은 (uncirculated)화폐- 돈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