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의 언론에서 가장 뜨겁게 다루는 뉴스 거리는 오늘 개막식이 열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남북한의 개막식 동시입장과 여자 하키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따른 소식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보도와 이야기 거리가 있었습니다. 여자 하키의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저항과 적지 않은 비판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강한 저항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우리 여자 하키팀은 어차피 메달권에 들지 못 한다…’는 말을 하면서 구설수에 올랐었습니다. 이 발언과 관련하여 결국 이낙연 국무총리는 언론을 향하여 사과를 하였습니다. 이 총리가 사과한 내용을 보도한 신문기사 (관련기사: 한겨레_2018/1/19_이낙연 총리 사과)를 보면;
“제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제 발언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사과 드린다”
이렇게 사과를 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 총리의 사과에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총리의 사과는 자칫 새로운 시빗거리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진실한 사과는, ‘미안합니다. 제가 행동(또는 발언)을 잘못하였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사과는 이러한 사죄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고 은연중에 상대방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끌어들입니다. 대표적인 표현이 ‘오해가 있었다’는 식의 표현입니다. 자신은 말을 제대로 하였으나 듣는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여 오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은연중에 잘못이 상대방에게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과는 하겠다. 이런 류의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이 총리의 발언에도 자신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듣는 사람이 잘 못 이해하여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발언을 제대로 상대방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잘못도 있지만 자신의 발언을 오해한 상대방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암암리에 비치는 것입니다.
원래 정치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과를 하면서도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는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국가간의 외교에서도 자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향후 두 나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재정적인 부담이나, 외교적인 제약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하여 섣불리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상대방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도 섣불리 하지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외교 현장에서는 절묘한 역할 분담으로 외교적으로 사과를 하는 듯이 보이면서 실제로는 책임 있는 사과를 피해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해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종전일 기념행사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은 “앞의 대전(大戰)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 유족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을 새롭게 하게 된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라며 ‘깊은 반성(深い反省)’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 총리들이 관례적으로 해 오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선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관련기사: joins.com_2017/8/15_일왕 반성, 총리 사과없어)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일왕과 총리의 불편한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으나, 국정에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없는 일왕이 나서서 사과를 하고, 실권을 가진 총리는 모르는 척하는 고도의 정치적인 제스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방법 가운데 또 한 가지는 희생양(犧牲羊)을 내세워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에 능한 사람도 역시 일본의 아베 총리입니다. (관련기사: yonhapnews.co.kr_2018/01/29_아베 차관급 발언 사과 사표 수리)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잘못된 상황에서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적극 해명할 뿐 아니라 잘못을 책임질 대상을 찾아내 징벌을 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사과의 제스쳐를 보이는 것입니다.
정치의 세계와는 달리 경제에서는 이런 식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사과는 쉽사리 통하지 않습니다. 섣불리 사과하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아 소비자로부터 배척 당합니다. 얼마 전 애플 사(社)가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아이폰의 속도를 늦춰서 성능이 떨어지도록 업데이트를 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지난 해 2월부터 업데이트가 이루어졌고 이를 애플이 인정하기까지는 무려 6개월이 넘었으며, 그나마 소비자에게 사과의 의사를 전하기까지는 또 다시 여러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관련기사: mk.co.kr_2018/1/6_애플의 불통) 이러한 애플의 콧대 높은 대응은 결국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2016년 7~8월 경에 삼성전자의 신제품 휴대폰 갤럭시 7의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었습니다. 그 때 삼성전자는 수 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을 무릅쓰고 발 빠르게 제품을 회수하고, 소비자에게 보상해 주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6. 10. 28. 참조) 삼성전자의 발 빠른 대처 덕분인지 갤럭시 7의 후유증은 뜻 밖에 큰 문제 없이 가라 앉았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가 전세계 4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관련기사: mk.co.kr_2018/2/2_삼성브랜드 가치 100조) 지난 해까지만 하여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6위였습니다. 전세계 기업들 가운데 브랜드 파워가 6위라는 것도 대단한 것인데 금년 들어 2 단계 더 올라 4위가 되었습니다. 1년 반 전 갤럭시 7으로 인한 배터리 결함이 블거졌을 때만 하여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오히려 브랜드 파워가 상승한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브랜드 파워 상승의 밑바닥에는 갤럭시 7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대응 조치가 한 몫 하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적절히 보상해 주는, 진심 어린 사과가 오히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였으리라 추측합니다. 이 때 만약 우리의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방식으로, ‘저희 회사 제품의 일부 적절치 못한 성능으로 인하여 소비자들의 오해가 있었음에 유감을 표시하는 바입니다. 해당 문제를 야기한 관련 부품의 제공업체를 찾아내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앞으로의 제품 개선에 만반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면… 아마도 소비자들은 삼성전자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사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마도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기대가 지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제계에서만이라도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내키지 않는 사과, 사과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사과가 아닌 진정한 사과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경제계가 건강해지고 경쟁력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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