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스튜어드 쉽- 2018. 8. 3.

jaykim1953 2018. 8. 3. 16:43

어렸을 때에 선친으로부터 들었던 옛날 이야기입니다.

너무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라서 중국의 고사(故事)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어느 왕조의 어느 황제 시절인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주 옛날 중국의 황제 한 사람이 민정(民情)을 살피려고 평복을 입고 저자 거리로 나왔습니다. 시장 구석 한 곳에 점괘를 보아주는 점쟁이가 눈에 띄어 그 앞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 점쟁이는 나무 젓가락을 수십 개 들고 있다가 점을 보러 온 사람이 그 가운데 하나를 뽑으면 그 나무 젓가락 아래 쪽에 씌어 있는 글자 한 자()를 보고 그 사람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길 가던 사람 하나가 점쟁이에게 돈을 건네고 점괘를 보았습니다. 점쟁이가 내민 젓가락 가운데에서 그 사람이 뽑은 글자는 물을 문 ()자였습니다. 그 점쟁이는 그 글자와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훑더니 혀를 끌끌 차며 ()이 문()에 붙어 있으니 남의 집 문 밖에서 밥을 빌어 먹고 다니겠구나. 쯧쯧쯧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를 본 황제는 재미 있어서, 방금 그 사람이 뽑았던 젓가락을 유심히 보아 두었다가, 황제 자신이 점쟁이 앞으로 나가 돈을 내고는 점쟁이가 내민 젓가락 가운데 아까 그 젓가락을 뽑았습니다. 그 젓가락에는 당연히 물을 문()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황제는 속으로 이 점쟁이가 내게도 밥을 빌어 먹을 팔자라고 하려나?’ 하며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쟁이는 이번에는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모으고 공손히 황제에게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린 채로 군자께서 뽑으신 글자는 좌로도 군()이고 우로도 군이니 군자께서는 필시 대군(大君)이십니다.” 라고 말하였답니다.

좌로도 군, 우로도 군이란, 물을 문자를 잘 뜯어 보면;

 

image.pngimage.png
와 같이 왼 쪽에도 임금 군()자와 비슷한 모양이 나오고, 또 오른 쪽에도 임금 군자를 좌우 대칭으로 뒤집어 놓은 듯한 글자가 나옵니다. ;

 

  

왼쪽에는 


오른쪽에는image.png

이러한 모양이 되어 좌측으로도 임금 군, 우측으로도 임금 군이니 이 글자를 뽑은 당신은 필시 대군(大君)일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글자 問 자를 뽑아도 그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걸인에게는 입이 문에 붙어 있다고 하고, 황제에게는 좌로도 군이고 우로도 군이니 필시 대군이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해 주시면서 저의 선친께서는 아무리 똑 같은 일을 하고 똑 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그 사람의 얼굴, 풍채, 몸가짐, 행동거지에서 베어나는 것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하시며 제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유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앞의 우화에서 점쟁이는 아마도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고, 글자를 뽑는 것은 해석의 단초(端初, clue)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구태여 글자를 뽑지 않아도 외모와 풍기는 인품으로 상대방에 대한 추측은 충분히 하였을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hief Investment Officer, CIO) 인선을 두고 여러 보도가 있었습니다. 최고위층에서 간여를 하면서 적임자라고 추천하였던 사람이 낙마하고, 그 과정에서 직권남용이 있었다 아니다 하며 정치권이 시끄러웠습니다. (관련기사: donga.com_2018/7/7_장하성이 밀었지만...)

만약 제가 국민연금의 CIO를 선발하는 인터뷰를 한다면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 사람이 적임자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태여 이력서를 받아 보고, 직무 수행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단 둘이 마주 앉아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면 이 사람이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또 자금 운용 능력은 얼마나 될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만약 30분 정도 인터뷰를 하고도 상대방에 대하여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는 인터뷰를 시행하는 면접관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국민연금의 기업경영참여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소위 스튜어드쉽 (Stewardship) 에 대한 찬반 논쟁입니다. 스튜어드(Steward)란 청지기를 말합니다. 재산 꽤나 있는 집의 곳간을 지키는 일을 비롯하여 수청(守廳)을 맡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좋은 의미로는 기관투자자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기업 경영을 지켜 보면서 그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주주총회 등에서 경영에 간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에 투자를 하면서 그 기업의 가치가 상승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데,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잘못 되어 기업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투자자는 손해를 봅니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투자자가 주주총회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보고, 개입하는 것입니다.

스튜어드쉽의 원래의 의미는 투자 가치를 지키려는 방어적 수단의 하나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쉽은 조금 다릅니다. 국민연금의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정부가 기업들의 경영에 간섭하고, 정부의 의도대로 기업이 움직이도록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관련기사: joins.com_2018/7/31_국민연금 경영 참여) 지금은 기업가치가 심각하게 훼손 되었을 때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개입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명분은 언제든지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은 주주총회를 통하여 기업에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반영하도록 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연금의 CIO는 기금운용을 잘하여서 투자 실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부의 입 맛에 맞게 기업들로 하여금 정부의 의도를 잘 반영하도록 만드는 것을 현 정권이 국민연금의CIO에게 기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언론에 국민연금 CIO 후보로 언급되었던 곽태선 전 베어링 대표는 저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1980년대 초반 프루덴셜 베이치(Prudential Bache) 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던 증권회사, 투자회사에서 부대표로 근무하면서 한국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몇몇 증권사와 투자운용사를 옮겨 다니면서 계속 한국 시장에서 근무하였고,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상당히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였습니다. 그 동안 그의 실적은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국민연금의 CIO가 된다고 하여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가 이해하고 있는 스튜어드쉽이 지금의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스튜어드쉽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국민연금의 CIO 자리에 오르지 못한 배경에는 그의 스튜어드쉽에 대한 이해가 현 정권의 기대와 다르다는 것이 작용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기금이사 추천위원회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에 크게 좌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겉으로는 독립기구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듯이 만들어 놓았지만 이는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윗선의 의사결정을 합법적으로 추인하는 것 이상의 역할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10 여 년 전 국민연금의 기금인사 추천위원회에서 면접을 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모욕과 수치심이었습니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고 저는 요식행위를 위한 들러리로 세워졌다는 것을 인터뷰 현장에서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면접관은 4~5 명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어느 대학 교수 한 사람만이 제게 진지한 질문을 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질문 한 두 가지씩 던지고는 제 대답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습니다. ‘너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들러리다.’ 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그 당시 인터뷰에서 제가 이야기한 것 가운데 대학 교수 한 분의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연령과 각 연령대의 납입금 적립규모를 파악하여,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적립금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여 빠른 성장을 하도록 하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만회하는 전략을 예비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연장자들, 이미 연금 납입이 끝난 노년층의 적립금에 해당하는 부분은 안정적인 채권 등에 투자하여 수혜자의 연금혜택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여야 합니다.

저의 이 말에 그 대학교수는 관심을 보였고 저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은 제게 김 선생님 같은 분이 우리 연금 자산을 관리해야 할텐데요…’ 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저 자신도 나는 들러리에 불과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대학 교수도 제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연금은 연금에 가입한 국민들- 가입자들-의 노후가 걸려 있는 자산입니다. 그 자산을 어떻게 잘 운용할 것인가를 제일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 자산의 규모가 크니 그 힘을 이용하여 정부 정책을 반영하는 데에 이용하려는 생각은 고려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스튜어드쉽이란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좋은 의미, 선의의 도구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튜어드쉽을 휘두르는 사람이 친기업정서인가 혹은 반기업정서인가에 따라 그 영향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글자를 뽑더라도 사람에 따라 걸인의 운명으로, 또는 대군의 운명으로 갈리듯이 말입니다.

국민연금 자산의 가치를 증식하고 안전하게 운용할 능력 있는 CIO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런 CIO가 진정한 스튜어드쉽의 도덕성에 부합되도록 스튜어드쉽을 행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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