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나는 가야지- 2018. 9. 28.

jaykim1953 2018. 9. 28. 20:57



오늘은 오래 된 노래 한 곡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양희은-나는 가야지

 

요즈음 젊은 사람들 눈에는 양희은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써 오래 된 예전 세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예전 세대 양희은이 부른 이 노래 '나는 가야지'는 양희은의 눈으로 보아도 매우 오래 된 예전 세대 노래입니다. 그러니 요즘 젊은이들의 기준으로는 예전에 또 예전의 오래되고 또 오래 된 노래인 셈입니다.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것은 1959년이었고, 그 당시 영화 '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포스)에 삽입되었던 노래입니다. '꿈은 사라지고'라는 영화는 원래는 라디오 연속극이었습니다. 라디오 연속극의 인기를 등에 업고 영화로 제작되어 최무룡(최무룡), 문정숙(문정)이 주연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는 두 곡의 주제가가 쓰였는데 한 곡은 영화와 제목이 같은 '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최무룡) 이고 다른 한 곡이 바로 '나는 가야지' (나는 가야지-)입니다.


라디오 연속극에서 쓰인 주제가 꿈은 사라지고를 부른 가수는 당시 KBS 전속 가수였던 안다송이었으나 영화를 만들면서 주연을 맡은 최무룡이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쓰이지 않았던 새로운 노래를 하나 더 주제가로 사용하였는데 그 노래가 나는 가야지이고 이 노래를 주연 여배우 문정숙이 불렀습니다. 그 당시 이 노래는 공전의 힛트를 하였고 문정숙이라는 연기파 배우가 가수로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그 후로도 여러 가수가 불렀습니다. 혹시라도 흥미가 있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가야지- 나훈아, 나는 가야지- 남진, 나는 가야지- 블루벨즈, 나는 가야지- 홍민.

 

이 노래가 실려진 영화 꿈은 사라지고는 그 당시로는 대단한 흥행작이었습니다. 관객수 10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1959년의 10만 관객이라면 지금의 거의 1천만 관객에 버금 가는 흥행이었습니다. 관객수에도 인플레이션이 적용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의 영화 제작 여건, 제작 비용 등을 감안하면 10만 관객이면 손익 분기점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기대 이상의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꿈은 사라지고가 나온지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나라 영화 산업은 어떨까요? 지금은 1~2 백만의 관객으로는 만족할 만한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에서는 2003년 실미도, 2004년의 태극기 휘날리며를 필두로 국제시장, 신과 함께, 명량 등이 1천만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여 최고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로 손꼽힙니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최고의 흥행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명량이라는 영화는 다분히 민족 감정이 작동하여 관객수가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시류가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있어 이 영화의 흥행에 일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영화산업에서의 발전 못지 않게 금융산업에서도 커다란 발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위탁투자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70년대 중반 투자신탁회사가 생기면서입니다. 그 당시 한국 투자신탁, 대한 투자신탁 등의 회사가 생겼으며 이 회사들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예치받아 위탁자산의 운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투신사들의 운용자산규모는 미미하였으며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한국 투자신탁이 1조원을 돌파하였습니다. (관련기사:매일경제 1982/6/5 한투 1조원)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1조원 수탁자산은 소규모 자산운용사의 운용규모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단한 성과였던 것입니다.

 

1997~8 IMF 사태라고 부르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펀드(fund)라는 형태의 위탁 자산 운용이 도입되었습니다. 그 당시 H증권의 L사장은 수 년 안에 100조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고 호언하였습니다. (관련기사:바이 코리아 3년내 100조원) 그 당시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이 200조 원 밑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호언장담은 마케팅 드라이브라는 측면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과도한 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치부하였습니다. 이 펀드는 1999년 한 해에만 100%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펀드 투자 열풍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에 소위 '닷 컴 열풍'이 꺼지면서 수익률이 마이너스 77%까지 떨어지면서 1/4토막이 나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 지금과 비교하여 많은 차이가 나고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기도 합니다. 197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에 투자 신탁 회사라는 형태로 위탁 자산 운용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소개 되었고, 1982년에1조원의 운용자산을 돌파하였습니다. 지금의 자본 시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기 자본시장의 규모에 불과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1959년에 만든 영화가 10만 관객을 돌파하여 흥행 성공작이였다고 평가 받는가 하면, 그로부터50여년이 흐른 후에는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천만 관객 돌파 영화 가운데 최고의 관객 기록을 가지고 있는 영화 '명량'에 관하여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 가운데 하나인 적군의 군함과 조선군의 군함이 충돌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을 높이 치켜 세우며 자신의 병사들에게 "백병전이다!' 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최근 일간지의 한 외부인 칼럼에서 이에 대한 코멘트를 하였습니다. (chosun.com_2018/09/20_신상목의 스시  조각)

이 칼럼에 따르면;

'백병전(白兵戰)' '창·칼 등 도검류를 사용한 근접 전투'라는 뜻으로, '백병'은 하얗게 빛나는 도검류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arme blanche'를 번역한 말이다.

백병전이라는 말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 시대를 거치면서 외국의 문물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프랑스식 군대 용어가 유입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니 일본에서 1870년대에 프랑스어를 번역하여 만들어낸 단어를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군대가 아닌 우리나라 수군(水軍)의 총사령관이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고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일깨워 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하는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현대에 쓰이는 단어로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라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아직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새로운 모델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기업과 개인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금의 변변치 않아 보이는 시장 규모도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고,수익도 많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초기에는 커다란 수익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비즈니스의 모델이 옳은 방향을 지향한다면 꾸준히 사업을 계속하여 결국에는 성공적인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만족할 만한 비즈니스 규모를 이룩하여서 그로부터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제가 일하던 프랑스 은행의 본점에서 위탁투자를 전문으로 운용하던 책임자 A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저녁 식사를 겸한 전문가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고 저의 은사이신 P 교수님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P교수님은 A에게 한국 주식시장 펀드를 만들어서 프랑스의 투자자에게 팔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때 A P교수님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I wish I could. It's fantastic to have your customer travel to the moon. But you need a rocket to take your customer to the moon. Tell me how I can invest in Korean capital markets."

(나도 그러고 싶어요. 나의 손님들을 달나라로 여행시키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려면 달나라로 가는 로켓이 있어야지요.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그 당시에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가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 주식 펀드를 팔려고 하여도 어찌 할 수가 없었던 시절입니다. 외국인의 투자 규모가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50%를 넘어선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 저뿐 아니라 많은 국내 금융기관이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국내 주식시장 상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노력의 결과 오늘과 같은 해외 투자자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비유일지 모르나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갈 길을 '나는 가야지' 라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자본 시장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여 많은 시장참여자들이 꾸준히 갈 길을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