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대통령 전용차량- 2019. 5. 31.

jaykim1953 2019. 6. 3. 21:29

 

 

2 주 전 목요일은 5 16-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지 58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분분합니다. 군사정변, 군사혁명 등 부정적인 평가와 긍정적인 평가가 엇갈립니다.

1961 5월의 서울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지러운 시기였습니다. 한 해 전 4.19 학생의거로 자유당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헌법에 의하여 의원 내각제 정부가 들어섰으나, 학생의거의 주체들이 소외되었다는 반발과 소급입법, 과도한 남북평화회담 주장 등 연일 데모가 그치지 않고 심지어는 데모를 그만하자는 데모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5.16 직전의 정부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고 윤보선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대외적으로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헌법기관이었고, 내각의 최고책임자는 장면 총리였습니다. 이 당시 대통령 전용 차량은 1956년형 캐딜락(Cadillac)으로서 전임 이승만 대통령이 타던 차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956년 캐딜락)

 

윤보선 대통령의 전용 차량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세 번째 전용차량이었습니다. 취임 초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던 차량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 보려 하였으나 인터넷으로는 쉽사리 검색이 되지 않았습니다. 6.25 한국 전쟁이 끝나고 이승만 대통령의 새로운 전용차량을 구입합니다. 그 당시 미국 GM 자동차 회사의 한국 에이전트(agent)는 저의 선친이었습니다. 정부의 주문을 받은 저의 선친께서는 캐딜락 자동차 2 대를 수입하여 한 대는 대통령 전용차량으로 판매하고 다른 한 대는 당신의 차로 사용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태어나자 마자 캐딜락 자동차를 타는 행운을 누렸었습니다.

 

(1953년형 캐딜락)

 

그러다가 1956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일반 차량은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방탄 차량을 선물합니다. 그 차가 1956년 형 캐딜락입니다. 윤보선 대통령께서는 바로 1956년 형 캐딜락 방탄 차량을 대통령 전용차량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면 총리의 전용차량은 1959년형 뷰익 일렉트라 투 투 파이브(Buick Electra 225)였습니다. 이 차는 1959년 장면 총리가 이승만 정부의 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에 수입하여서 타고 다니던 차량입니다.

부통령의 전용차량은 1954년에 처음으로 수입하였습니다. 당시 함태영 부통령의 차량으로 1954년형 뷰익(Buick)을 수입하였습니다. 이 또한 저의 선친께서 수입하셨는데, 이 때도 똑같은 차를 2 대 수입하여 한 대는 정부에 부통령 전용차량으로 팔고 다른 한 대는 선친께서 당신의 회사 차량으로 쓰셨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대통령 전용차와 같은 차를 탄다는 부담 때문에 캐딜락은 일찍 파셨고, 뷰익 차는 1963년까지 거의 10년 동안 애용하셨습니다.

 

(1954년형 뷰익)

 

그런데 함태영부통령의 뒤를 이어 부통령 자리에 오른 장면 부통령은 1959년에 자신의 전용차량을 바꿉니다. 그 때까지 타던 1954년형 뷰익을 새로나온 1959년형 뷰익 일렉트라 225로 바꿉니다. 1959년형 일렉트라 225는 그 때로서는 혁신적인 최첨단 디자인으로 앞 모양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형상을, 뒷 날개는 물결을 헤치는 가오리의 지느러미를 연상케 하는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장면 부통령은 이 차를 무척 좋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총리가 되고서도 이 차를 계속하여 전용차량으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1959년형 뷰익 일렉트라 225)

 

1959년형 뷰익 일렉트라 225 부통령 전용차량도 저의 선친께서 수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이 차를 한 대만 들여왔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가난한 나라에서 5년 만에 정부의 의전차량을 바꾸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다.’ 라며 내키지 않아 하셨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는 신용장(L/CㅣLetter of Credit)을 열어주는 은행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기업들, 정부의 신용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부가 수입하는데도 신용장을 열기 위하여서는 수입담보금(Import Guaranty Money)이라는 명목으로 선입금을 하여야 은행에서 신용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당시 국내은행은 외국은행과 변변한 코레스판던트 (Correspondent)관계를 맺고 있던 곳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신용장 하나 제대로 열기도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9. 4. 26. 참조) 그러다 보니 수입물건의 대금을 현금으로 모두 예치하여야만 신용장을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입업자의 입장에서는 선불로 물건 대금을 지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를 수입담보금이라 하고, 1970년대 말까지도 이러한 수입담보금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1961 5 16일 새벽 혁명군이 서울 시내로 진입하여 주요 기관들을 접수하고 총리공관으로 향했습니다. 장면 총리는 미군의 휴양시설인 반도호텔 2 201호를 집무실로 사용하고, 반도호텔 내 객실을 공관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반도호텔 201호는 반도호텔이 제공하는 사무실 가운데 가장 큰 사무실 공간이었습니다. 장면 총리가 그 사무실을 사용하기 전에는 저의 선친께서 사용하시던 사무실이었습니다. 장면 총리가 그 사무실을 쓰겠다고 하여서 저의 선친께서는 반도호텔을 나와서 조선호텔 건너 편에 있던 상공회의소 안에 새로이 사무실을 마련하여야 했습니다.

장면 총리는 혁명군이 도착하기 직전에 반도호텔을 빠져나와 미국 대사관에 피신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수녀원으로 피신하고 맙니다. 그리고 며칠 뒤 혁명주체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나게 됩니다. 그 이후 장면 총리가 타던 1959년 뷰익 일렉트라 225는 어디로 갔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지금이야 길거리에 차가 넘쳐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렵고 가난하였던 1950년대, 1960년대 초에는 자동차도 매우 귀한 재화였습니다. 그렇다고 무엇 하나 수입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던 시절입니다. 수입담보금이라는 제도 아래에 물건대금을 선납하여야 할 정도로 국제적인 신용도도 낮기만 하였습니다. 이제는 1960년대 초반 어지럽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이미 돌아가시기도 하였고, 또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기억도 가물가물해 집니다. 오늘은 지난 일들을 한 번 회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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