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눈치 있는 대처- 2019. 7. 19.

jaykim1953 2019. 7. 19. 18:39

지난 주 칼럼 내용에 대하여 여러 독자분들이 코멘트를 보내 오셨습니다. 눈치 없는 H를 탓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서도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는 H를 동정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여러 분들께서 보내 주신 답 글들을 읽다가 문득 눈치 없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W는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부장까지 승진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장 진급과 함께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미국 뉴욕에 있는 현지 법인에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성격도 활달하고 회사를 위하여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의욕이 넘쳤으며, 상당한 능력도 인정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통 주재원들은 한 번 발령이 나면 3~4년 혹은 그 이상을 현지에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으나 W는 2년 만에 본사로 귀환하였습니다. 그의 이른 귀환을 두고 회사 내부에서는 뒷말이 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더우기 본사로 돌아오면서 근무할 부서와 직책이 정해지지 않은 채 일단 귀환 조치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한 두 달 동안 보직 없이 대기 상태로 지내던 W는 결국 조금은 한직이라고 생각되는 자리에 앉혀졌습니다. W가 본사로 귀환하게 된 것은 자그마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본사에서 미국의 현지 법인으로 본사의 고위급 임원- 사장님이 출장을 왔습니다. 일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 사장님은 현지 주재원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가벼운 반주가 있었고 사장님은 주재원들에게 돌아가면서 애로 사항과 건의 사항이 있으면 기탄 없이 이야기하라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현지 상황이 본국과 많이 다른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으나 좀 더 노력하여 더 좋은 성과를 올리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런 유사한 상황에서 늘 있었듯이 듣기 거북한 이야기는 피하고 거의 상투적인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W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작심한 듯, 주재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졌고, 특히 현지에 주재하는 임원들이 사고 일으키지 않고 편히 지내면서 자식 교육을 먼저 걱정하고 회사일은 등한시 한다는 등 날선 비판을 쏟아 냈습니다. 순간적으로 식사자리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현지 법인의 임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본사에서 온 사장님은 여유 있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하면서 W와는 나중에 다시 만나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W는 본사로 발령이 났고, 보직 없이 본사로 귀환 되었습니다. 귀환 직후 그 사건 당시 미국 지사를 방문하였던 사장님과 W는 긴 시간 동안 면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장님은 W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개선 방향과 대책을 문서로 작성하여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W는 나름 열심히 준비하여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W가 지적한 사항들이 시정되거나 개선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W도 인정하였지만 그가 보고서에서 건의한 대책은 실현에 옮기기에는 다소 과격하거나 비현실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W는 한직에 오래 머물다가 임원진급에 계속 누락되었습니다. W의 동기 동료 직원들이 모두 임원 진급을 할 때까지 그는 진급을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임원 진급을 하지 못한 채 직장을 떠났습니다.

W가 조금 더 세련되고 지혜로웠다면 그가 발견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과 시정 방안을 좀 더 자연스럽게 시행할 방법을 강구하였을 것입니다. 직선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할 수 있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장님을 모시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문제점을 나열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절차와 계통을 제대로 좇아서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직장을 떠나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과도하게 눈치 빠른 의사결정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차량 공유 사업에 대한 정부의 결정입니다. (관련기사: yna.co.kr_2019/7/17_과도한 진입장벽) 기사 내용을 보면 엉뚱하게도 정부가 택시업계의 눈치를 본 모양새입니다. 눈치를 보아도 아주 많이 보아서, 소위 말하는, 알아서 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기존의 차량 공유 사업자에게는 새로운 규제와 부담을 덧씌우고 택시업계에는 호혜를 베풀려고 노력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차량 공유 사업자에게서 기여금을 받아 택시업계의 불만을 해소하는 데에 사용하겠다던가, 차량 공유 사업 운전기사는 택시 면허를 보유하여야 한다는 등, 모든 새로운 규제가 차량 공유 사업을 짓누릅니다. 마치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한 것이 커다란 죄라도 지은 것인 양 부담을 지우고 진입장벽을 높이려 합니다. 왜 이렇게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사실 정부가 눈치를 보아야 할 집단은 소비자들입니다. 택시업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차량 공유 사업체가 생겨나게 된 원인은 택시의 경쟁력이 열세이고 그러한 뒤떨어진 경쟁력을 보완하고 나선 것이 차량 공유 사업입니다. 차량 공유 사업의 대표 주자격인 ‘타다’ 차량은 저도 이용합니다. 택시보다 편하고 쾌적하며 친절하고 불필요한 신경을 쓰지 않게 합니다. ‘타다’의 운전기사는 말 없이 승객의 눈치를 봅니다. 그러나 택시를 타게 되면 승객은 운전기사의 눈치를 봅니다. 조금이라도 운전기사의 비위를 건드리면 운전이 거칠어지고 말 대답이 험해집니다. 행여 ‘타다’를 옹호하는 발언이라도 하였다가는 속사포 같은 ‘타다’ 비난을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감수하여야 합니다. 택시 운전기사들이 그리 이론적으로 정교한 말 주변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학업과 연구를 통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길 위에서 차를 운행하면서 승객을 태우고 택시 영업을 해 온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사양 산업에 불과한 택시를 부여 잡고 살려 내라고 떼를 쓴다고 택시 산업이 다시 크게 흥할 리는 만무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그런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치적인 이해(利害)와 득실을 기준으로 주판알을 튕겨 보았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눈치를 과도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택시에 염증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인하여 정부는 엉뚱한 눈치를 보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택시업계, 차량 공유 사업체, 여객 운송사업의 소비자- 이들 세 집단의 기대치를 제대로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어느 한 쪽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느라 균형 잡힌 조정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W 처럼 눈치가 너무 없어도 곤란합니다. 그리고 이번 차량 공유 사업과 택시의 분쟁 조정을 하며 택시업계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았던 정부도 그리 현명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눈치를 보고 처신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 택시 업계의 눈치를 본 것과 같이 어느 한 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