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시각의 차이- 2019. 7. 26.

jaykim1953 2019. 7. 26. 12:45


20년쯤 전에 나돌던 아재 개그 한 가지입니다.

한 젊은 회사원이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출근하였습니다. 그러자 상사인 임원이 그 직원을 방으로 불러 야단을 칩니다. 사무실에 일하러 출근하는 사람이 머리에 물감을 들이고 오느냐고 야단을 맞고 나오는 직원이 볼 멘 소리로 혼잣말을 합니다. "색깔만 다르지 저도 했으면서..."

맞는 말입니다. 나이든 임원도 염색을 하였습니다. 흰 머리를 감추려 검은 색으로 염색을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IMF 경제 위기를 겪던 시기였습니다. 주유소에 외제 차가 들어오자 주유소 주인이 황급히 뛰어 나와 외제 차를 돌려 보냅니다. 그러면서 일장훈계를 합니다. "당신들처럼 외제 차 좋아하고 외국 물건들 사 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외환 위기를 겪는 겁니다.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외제 차에는 기름을 넣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자 그 외제 차를 운전하던 젊은이는 차를 돌려 나갑니다. 그러면서 하는 한 마디.... "그러면 저도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팔 것이지..." 주유소에서 파는 기름은 모두 원유를 수입하여 정유한 것입니다. 자신이 파는 수입 제품은 괜찮고 남들이 사용하는 수입 제품은 비난하는 격입니다.

요즈음 정치판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일컬을 때 우리는 '제 눈 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나무란다'는 속담을 썼었으나, 이제는 그런 고리타분한 속담보다는 '내로남불'이 더 귀에 잘 들어옵니다.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하는 안 좋은 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하는 것이고 남들이 하는 안 좋은 일은 도덕성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난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법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판단 기준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심신미약(心神微弱)입니다. 법률 용어 사전을 찾아 보면, '심신미약이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 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신미약의 상태가 외부의 영향이거나 건강상의 이유가 아닌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술을 마셔서 과음의 상태에 이르러도 심신미약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심신미약을 이유로 범죄인의 처벌이 감형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seoul.co.kr_2019/6/5_조두순도 만취로 심신미약 감형)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자기 의지로 술을 마셔서 만취상태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무슨 죄를 저질러도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되어 처벌을 가볍게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문외한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경우 흔히 시각의 차이라는 말을 합니다. 다른 말로는 관점(觀點)의 차이 라고도 합니다. 관점은 영어로는 view point 입니다. 회계 용어 가운데에 영어와 한글의 용어 차이에서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18. 참조)

우리 말로 선수 이자 (先受利子)는 영어로 unearned discount 입니다. 우리 말 용어는 먼저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선수(先受)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영어의 표현을 보면, 선이자(先利子)는 이자를 할인(discount)하여 지급한 것이고, 아직 기간이 경과하지 않아 수익이 인식되지 않은 할인 즉, unearned discount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내용을 표시하는 방법에서만 차이를 보일 뿐 근본적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심각한 시각의 차이를 보이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은 소위 갑과 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시각의 차이는 자칫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정부의 경제 관련 부처 장관이 국내 대기업 회장에게 일침을 놓았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제품을 사지 않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자 대기업 회장은 품질 문제와 경쟁력, 수익성을 들면서 중소기업제품으로는 제대로 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장관은 일찍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도와서 국산화를 하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대기업 때문이라는 탓을 하였습니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부 경제 관련 부처 장관은 감히 말대답도 하지 못할 갑 중의 갑입니다. 그런데도 전후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서로의 시각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관은 대기업이 자신의 시각을 받아들일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지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강요된 시각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석은 저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신문의 사설에서도 장관의 시각보다는 대기업의 시각에 공감을 표하면서 장관의 시각을 무지(無知)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hankyung.com_2019/7/19_ 정치인들의 기업경영에 대한 無知)

그런가 하면 최근 또 다른 보도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 부총리가 우리나라의 규제 개혁일 보고 영국도 놀랐다는 자화자찬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국내 대기업을 대표하는 경제 단체 의장이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반론을 제기하였습니다. (관련기사: 홍남기 "英도 놀랄만큼 규제 깼다" 박용만 "체감 못하겠다") 아마도 이런 반론 제기는 거의 목숨을 건 반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가 하는 말을 그 자리에서 반박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을의 입장에 있는 기업으로서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간이 붓다 못해 배 밖으로 나올 정도가 되어야 공개석상에서 정부와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런 농담도 합니다. 만약 경제부총리와 기업인이 막역한 친구 사이였더라면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식의 점잖은 표현이 아니라, '그건 네 생각이고...' 라고 면박을 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는 심각한 시각의 차이로 인하여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제 현장에서는 못 살겠다는 아우성을 치는데,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경제정책의 효과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는 늘어나는 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매는데 정부 발표는 일자리 현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참으로 메우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현집권층의 시각으로는 당연히 당하여야 할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극단적인 결과를 목격하고서야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이 문을 닫고 나서야 최고경영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임금을 줄 기업이 문을 닫고 나서야 기업을 상대로 무리한 요구를 하였던 종업원들이 후회합니다. 우리나라는 제발 그런 상황에 다다르지 않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씁쓸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어느 교회 고등학생부에서 담당 장로님이 한 학생에게 '다음 주에는 네가 대표 기도를 할 차례이니 잘 준비하고 와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일요일에 그 학생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온 것을 보자 그 장로님은 학생을 불러서 나무랍니다. '대표 기도 할 사람 옷이 그게 무어냐. 찢어진 옷을 입고는 대표 기도 못한다. 다른 애를 시킬 테니 그리 알아라.' 이 말을 들은 학생은 교회 문을 박차고 나가서는 다시는 교회 근처에도 얼씬 거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자기가 대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 너무 기뻐서 자기가 가진 옷 가운데 가장 좋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학생 눈에 가장 멋지고 좋아 보였던 옷이 장로님의 눈에는 흉하게 찢어진 청바지였던 것입니다. 두 사람의 시각 차이는 결국 한 학생을 교회에서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찢어진 청바지를 나무라기 전에 찢어진 청바지를 멋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혹시라도 자신의 생각이 부족하였던 것은 아닌지, 자신의 시각이 다른 사람들과 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좀 더 되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