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경제전쟁- 2019. 8. 9.

jaykim1953 2019. 8. 9. 18:07


제가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도덕 교과서에 있던 이야기입니다.

평소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철수는 어머니에게 졸라서 외제 그림물감인 에노구 (えのぐ, 絵の具)를 샀습니다. 친구들에게 외제 그림물감을 자랑하고 싶어 학교의 미술 시간에도 에노구를 가지고 갔습니다. 철수가 에노구를 가지고 학교에 간 날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포스터를 그리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포스터의 제목이 '국산품 애용'이었습니다. 철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꾸만 자신의 에노구를 손으로 가리고 행여 친구들이 자신의 에노구를 볼까 봐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의 학생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겠지만 그 당시 국산품 애용이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국산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의 매국(賣國)인 양 취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국산품은 사실 품질면에서 외국산 수입품에 비하여 많이 부족한 품목이 많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을 앞세워 국산품 사용을 거의 강제하였었습니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 과거의 이러한 분위기가 재현될 것만 같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 (white list)에서 제외한 다는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 물건을 보이콧하자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일본 물건을 대중이 보는 앞에서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일본이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게 되는 영향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이 일본산 원료물질을 수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일본 물건을 쓰고 싶은데 쓰기 어렵게 되었다고 해당 물건이 아닌 다른 일본 물건들을 쓰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황전개가 전혀 이론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다분히 감정적이고 감성적 반응입니다.

저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심정적인 동조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에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일본에게 무언가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심정적인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제 원료를 사고 싶은데 어려움이 생기자 다른 일본 물건들을 사지 않겠다는 논리는 객관적인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우리나라도 일본도 모두 감정을 앞세우는 듯 합니다. 마치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식의 어린 아이 싸움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맨 처음 시작을 누가 하였는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상황은 언제까지고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아 보입니다. 어느 한 쪽이 대범하게 조금 양보를 하기 시작하면 의외로 쉽사리 문제가 해결 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다만 누가 먼저 양보를 시작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너무 쉽게 깔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저의 선친께서 제가 어린 시절부터 하셨던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일본은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일본에서 만든 항공모함에 일본에서 만든 폭격기를 싣고 가서 미국의 하와이를 공습하였다. 그 때 이미 그만한 기술을 갖추었던 나라이니 그 기술력을 우리가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우리 손으로 만든 항공모함을 가져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기술로 만든 전투기, 폭격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아직 일본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앞선 분야도 적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의 경쟁력입니다.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일본보다 앞설 수는 없고, 일본도 모든 분야애서 완벽하게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국제적인 협업이 이루어지고 원료와 중간재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적어도 당분간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여 오는 원료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의병' (관련기사: chosun.com_2019/7/7 의병 일으켜야 할 일) 또는 '죽창가' (관련기사: yna.co.kr_2019.7.14.조국 죽창가) 등을 들먹이며 강력 대응을 촉구합니다. 그런데 의병이나 죽창을 들고 대응하는 것은 미사일을 발사하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을 향하여 할 행동일 수는 있으나 경제 전쟁을 하는 일본을 향하여 할 행동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보다 냉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제전쟁이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경제에 타격이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일본의 공격을 무력화하고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적인 공격을 하면서 자신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것을 절감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경제적인 공격이 자신들의 의도보다 우리에게 피해가 적고, 오히려 자신들에게 부담이 커진다면 그들도 이러한 부담스러운 공격을 중지할 명분을 찾으려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외교적인 해결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대기업을 향하여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원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일본에서 수입하던 원재료를 우리나라가 자급하도록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기업을 몰아부치는 것은 기업의 수익성과 경제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업 활동은 거래 상대방- 고객의 수요에 맞추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하여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대기업을 운영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사업의 성공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고객의 수요에 맞추어 제품을 생산하고 품질을 고객의 눈에 들게 수준을 높여서 매출을 이어가고 수익성을 맞추어 왔던 것입니다. 낮은 품질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생산한다 하더라도 그런 낮은 품질의 제품을 원하는 고객이 없으면 그 제품은 판매가 안 될 것입니다. 기업 활동은 철저하게 고객의 수요와 입 맛(?)에 맞추어야 합니다.

언젠가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도 언급하였던 사례가 있습니다.

처음 일본의 자동차가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하던 1960년대 중반에는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일본차를 장난감 취급하면서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러나 야금야금 시장 점유율을 높여 오자 일말의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는 엉뚱한 불만을 늘어 놓았습니다. 일본 자동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나날이 늘어가는데 비하여 미국 자동차는 일본에서 단 한 대도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엄청난 불공정한 현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서 시정하여야 한다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일본측에서는 아주 간단하지만 의표를 찌르는 대답이 돌아 왔습니다. 일본은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므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으나 미국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하여 수출용 자동차는 운전석이 왼쪽에 있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 되물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단 한 대라도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차를 생산하느냐고. (금요일 모닝커피 2014. 9. 19. 참조)

일본은 미국이라는 커다란 시장에 자동차를 팔기 위하여 자기네 나라에서는 쓸모가 없는 운전석이 왼쪽에 달린 자동차를 만들어서 미국으로 수출하였습니다. 그 반대로 미국에서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달린 자동차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동차 무역의 불균형을 불평하였습니다. 기업활동은 자신의 눈이 아닌 고객의 눈 높이에 철저히 맞추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눈높이를 고집하여서는 결코 사업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 감정적인 대응, 일본을 배척하는 양 대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고객은 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객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원료부터 생산 기술, 방식 등을 최적화하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료를 제공하는 일본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제품 생산-공급 체인(chain)이 연쇄적으로 삐걱거릴 것입니다. 경제 활동의 전반적인 그림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일본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원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더라도 고객의 수요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매우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일본과 얽힌 사태가 보다 매끄럽게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