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금융- 2019. 8. 30.

이번 주 화요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국내은행의 본점을 찾아가 일명 ‘애국 펀드’라 불리는 세칭 ‘필승 코리아 펀드’에 투자하였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joins.com_2019/8/27_문대통령 필승코리아펀드) 이 펀드의 정식 명칭은 ‘NH-아문디 필승코리아 국내주식형 펀드’입니다. ‘NH-아문디’는 이 펀드의 운용을 맡은 자산 운용사 이름입니다. 그리고 투자 대상은 국내 주식입니다. 그리고 이 펀드를 식별할 수 있는 이름을 지은 것이 ‘필승 코리아’입니다.

필승이란 한자로 必勝일 것입니다. 반드시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펀드가 어떤 승부에 관련이 있어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것을 다짐하는지 의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요즈음 시류를 따라 붙인 이름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맞대응의 일환으로 소재 중심의 국내기업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극일’ (克日) 펀드라고 부르기도합니다. 이 펀드는 주로 부품 소재 관련 주식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hankyung.com_2019/8/27_필승코리아 펀드)

만약 제게 이런 펀드의 운용이 맡겨진다면 매우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펀드란 모름지기 투자자들이 위탁한 자산을 운용하여 수익을 올려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펀드의 성격은 수익보다는 극일을 우선으로 하는 듯 합니다. 그러니 극일이라는 사명에 부합하면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극일이라는 상당히 추상적인 목표는 경우에 따라서는자의적,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 대적하여 부품을 개발하고 소재 개발에 앞장서는 회사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투자하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의수익성, 사업성이 불확실하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하다면 이 펀드의 운용자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금융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고, 그로 인하여 일본이 경제 보복이라는 칼을 들이대자 이를 극복하자고 펀드를 조성하여 대항하자는 지극히 애국심을 자극하는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애국 성금을 모은다던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과는 달리 극일 펀드를 조성하였습니다. 극일이라는 애국적인 목표와 이익 추구라는 금융 상품의 성격을 결합한 것입니다. 과연 결합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두 가지 목표를 이 펀드 매니저가 얼마나현명하게 충족시켜 갈 것인지 주목됩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금융이 우리의 생활에 깊게 스며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통사고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과실비율입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에 흔히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 비율은 ‘가해자 80: 피해자 20’ 등입니다. 가해자가 100% 과실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면 어느 한 쪽이 100% 잘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교통관련 법에도 ‘통행 우선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행 우선권이 있는 차량은 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므로 그렇지 못한 차량, 즉 통행 우선권이 없는 차량은 통행 우선권이 있는 차량에게 길을 양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통행 우선권이 있는 차량은 과실 비율이 작아질 뿐 과실이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통행 우선권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공통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교차로에서 정지표시가 없는 쪽에서 오는 차량은 통행 우선권이 있고 정지 표시가 있는 쪽에서 진행하는 차량은 통행 우선권이 없으므로 통행 우선권이 있는 차량에게 양보하여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자주 눈에 띄는 회전식 교차로- 일명 로타리- 에서는 먼저 회전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이 통행 우선권이 있고, 아직 회전 교차로에 진입하지 않은 차량은 통행 우선권이 없으므로진입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회전 교차로에서는 회전 교차로에 이미 진입한 차가 있는데도 그 앞으로 통행 우선권이 없는 차량이 진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20:80으로 통행 우선권이 있는 차량의 과실은 작게 통행 우선권이 없는 차량의 과실은 크게 판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판결은 서구식 사고 방식으로는 매우 불합리합니다. 통행 우선권이란 먼저 통행할 권리가 주어진 것이어서 통행하는 것입니다. 통행 우선권이 없는 차량이 통행 우선권을가진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여 사고가 발생하게 만들었으면 통행 우선권이 없는 차량이 잘못한 것이지 어떻게 과실이 둘 모두에게 있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이 과실을 사고의 두 당사자에게 모두 지우는 것은 한 편으로는 보험회사의 수익 보전과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차량 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과실이 인정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처리에 자기 부담금 (deductible)을 지불하여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약 20 만원 정도 되는 금액인데, 사고 처리를 위하여 차량을 수리한다던가 할 때에 보험 가입자가 차량 수리비 가운데 20 만원을 자기 돈으로 지불하여야 합니다. 그 만큼 보험회사가 부담하는 차량 수리비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고로 인하여 보험금 지급을 유발한 보험 가입자는 계약 만료시 보험 연장을 할 때에 보험료가 할증되는 불이익을 받습니다. 사고를 일으키는 데에 20% 라도 과실이 있었던 보험 가입자는 보험 계약 갱신에 보험료 할증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할증된 보험료만큼은 보험회사가 수익을 더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A는 가해자, B는 피해자입니다. B가 100% 잘못하였으면 A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습니다. B는 사고처리 비용 가운데 자기 부담금을 지불하고, 다음 번 계약 갱신 때에 보험료 할증이 됩니다. A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A 과실 20%, B 과실 80% 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B는 물론, A도 자기 부담금을 지불하여야 하고, B뿐 아니라 A도 다음 번 계약 갱신 때에 보험료가 할증 됩니다.

보험 회사의 입장에서는 사고 당사자 가운데 한 쪽의 자기 부담금을 징구하는 것 보다 양 쪽 모두에게 자기 부담금을 징구하면 자기 부담금 징구 금액이 두 배가 됩니다. 그리고 보험료 할증도 어느 한 쪽만 하는 것보다 양 쪽 모두의 보험료를 할증하면 보험료 수입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납니다. 결국 교통사고의 과실을 양쪽 모두에게 묻는 것은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수익 개선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험회사의 논리가 이제는 우리나라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시하게 되었습니다. 금융기관의 수익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우리나라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물론 피해자에게 사고 예방의 주의 환기를 의무화한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음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우리 생활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좀 더 진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