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디지털 시대의 금융- 2019. 10. 18.

jaykim1953 2019. 10. 18. 14:55

제 또래의 친구들 가운데에는 은퇴 후 이런저런 사유로 해외에 이민 나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친구인 H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부모에게서 번듯한 사업체를 물려 받았고 적지 않은 유산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체는 부도 나고 파산하여 제 삼자의 손에 넘어갔으며 기업주로서 기업 부채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던 터라 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부모님 덕택에 미국 유학을 가 있던 시절에 태어난 그의 아들이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덕분에 H의 아들이 부모를 초청하여 가까스로 몸만 챙겨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H의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여 취직을 하였고 결혼하여 번듯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H는 그의 아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한적한 교외에 거처를 마련하여 부인과 둘이 특별히 하는 일은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친구도 별로 없고 영어가 유창한 것도 아닌 H로서는 미국 생활이 조금은 무료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 년이면 2~3 달 씩, 또는 그 보다도 길게 서울에 나와 있기도 합니다.

H는 지난 8월 말에 서울에 나왔습니다. 아직도 서울에 머물고 있습닉다. 어제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 해 미국에서 지불한 건강 보험료가 정산 되어 그 가운데 일부가 환불 되어서 수표로 자신에게 왔는데 어찌하여야 하는 지를 제게 물었습니다. 그 가 받은 수표는 미국의 한 보험회사가 발행한 회사 수표였습니다. 은행이 발행한 수표가 아닌 것입니다. H가 제게 묻는 것을 보고 H의 미국에서의 생활이 어떠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H는 미국 사람들의 소사이어티(society)에는 거의 접촉하지 않는 듯 합니다. 어쨋든 저는 H에게 그 수표를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지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1.     휴대폰에서 거래하는 은행의 mobile app을 연다.

2.     Check deposit (혹은 Deposit check) 탭을 찾아서 그 탭을 연다.

3.     그 곳에 나와 있는 instruction 대로 따라서 입력한다.

4.     수표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수표 맨 밑에 있는 숫자들이 선명하게 나오도록 유의한다.

5.     만약에 대비하여 입금이 확인 될 때까지 종이로 된 수표를 보관하고 있는다.

 

미국은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CHIPS (Clearing House Interbank Payment System)을 통하여 은행간 자금 결제를 당일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은행에 입금을 하면 그 다음날 자금이 결제 되었으나 당일 (Same day)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는 당일 결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은행간에는 당일 결제가 이루어지더라도 고객 계좌에 입금되는 데에는 하루 또는 며칠 간의 시간을 두고 입금되는 관행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대에 들어서면서 Check truncation 이라 불리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수표를 디지털화하여 결제 보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Digitalization) 그리고 2004년 일명 Check 21 Act 라고 불리는 (원명은 Check Clearing for the 21st Century Act) 수표 결제에 관한 법이 제정되면서 수표를 디지털화하여 결제하는 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은행 고객은 자신이 받은 수표를 영상으로 기록하여 은행에 제출하면 은행에서는 이를 받아 수표에 기록된 디지털 코드를 바탕으로 전자 결제 시스템에 입력하여 결제합니다. 수표의 디지털 코드는 수표의 맨 밑에 디지털화된 숫자 코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래 수표 샘플 사진 참조)

 


 

이렇게 디지털화 된 데이터를 가지고 결제를 하기 위하여서는 이미지를 디지털화 하는 소프트 웨어와 보안 시스템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표의 이미지를 디지털화 하는 소프트 웨어는 이미 여러 소프트 웨어 회사에서 제작하였습니다. 각 은행마다 자기네 은행에 맞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안 시스템도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ACH (Automated Clearing House)와 연결하여 각 은행간의 자금을 결제하고 상계하여 잔액만을 수도하게 됩니다.

만에 하나 결제 과정에 오류가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수표의 결제가 완료될 때까지 수표 원본을 가지고 있으라고 합니다.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수십억 건의 수표가 결제 되다 보니 매우 낮은 가능성의 오류라도 전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였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살펴 보겠습니다.

일단 우리나라도 당일 결제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은행이 발행한 정액 자기앞 수표에 국한됩니다. 정액 수표가 아니거나 혹은 은행이 발행한 자기앞 수표가 아니면 당일 결제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나 고액의 수표는 정액 수표가 없으므로 당일 결제가 불가능합니다. 은행의 입장에서 아주 중요한 고객이 고액 수표를 가지고 와서 입금한다면 은행에서 특별히 편의를 제공하여서 수표 확인 절차를 거쳐 당일 입금을 잡아 줄 가능성도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같이 은행이 발행하지 않은 수표를 디지털화하여 처리하는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10년 지방 어음교환소를 폐쇄하고 금융결제원에서 모든 어음 수표를 결제하는 전자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이를 '전자정보교환제도' 라고 명명하였고 영문으로 truncation 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은 미국의 truncation 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마도 개인 또는 기업이 발행한 수표가 거의 통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금융 풍토도 이러한 시스템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금융 풍토가 다름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를 제가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기업가 J 씨가 해외 금융에 투자할 것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게 질문한 것입니다. J씨는 제게, '미국에서 금융업을 영위하다가 잘 못 되었을 때에 대주주에게 어떤 제재가 가해지나요? 우리나라에서 처럼 대주주의 사재를 털어서 예금주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하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저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아니오. 투자한 자본금이 손실 나는 것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인데 무슨 추가로 사재를 털어서 보상을 합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금융기관이 부실화 되거나 파산하게 되면 대주주는 자신의 투자 원금에서 손실을 입게 됩니다. 금융 선진국에서는 대주주에게 어떠한 추가적인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대주주들도 똑같은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부실화된 금융기관에 자본금을 투입한 사람들은 주주이고, 예금을 맡긴 사람들은 예금주입니다. 금융기관이 잘못 되고 부실화 되면 예금주뿐 아니라 주주도 손실을 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주들에게 추가적으로 더 손실을 보라고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는 아직도 금융 선진국이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금융 관행이 제대로 자리 잡고 금융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