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Death toll - 2020. 3. 13.

jaykim1953 2020. 3. 13. 05:42



죤 캔디 (John Candy) 라는 영화배우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4년 이  쯤인 3 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950 10 31일에 태어났으니 만 43세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의 할리웃 영화에도 심심치 않게 출연하였습니다.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케빈의 엄마가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자신들은 폴카 밴드이고 시카고 방향으로 가니 그들이 몰고 가는 밴(van)에 동승하라고 제안하여 결국 그 차를 타고 시카고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진 참조)

 

 

 

때로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좋은 인상으로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개구쟁이 천진난만한 모습으로도, 또 세상을 달관한 듯 만사를 귀찮아하는 사람으로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가 잘 알려진 영화는 '쿨 러닝' (Cool Running)에서의 코치 역할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

 

 

1994 3월 그는 영화 촬영차 멕시코에 가 있었고 촬영 스케줄을 일부 마치고 나서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을 찾아온 동료들에게 라사냐를 요리해 주고 잠자리에 든 다음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사인(死因)은 심근경색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평소에 과체중에 간혹 숨이 가빠하기도 하였고 맥박이 불규칙하기도 하여 의사를 찾곤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과체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이 되어 버린 자신의 외모를 유지하였습니다. 식성도 좋았고 주변에 친구도 많아서 그들과 어울리면서 맛 있는 음식을 즐겼다고 합니다.


존 캔디는 우리나라에는 그리 크게 알려진 배우는 아닙니다. 그가 쿨 러닝으로 우리에게 알려지자마자 바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쿨 러닝이 촬영된 것은 1993,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것은 1994년 초였습니다. 그런데 존 캔디는 1994 3 4일에 죽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한창 쿨 러닝이 상영되고 있던 시기에 그는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후속작은 없었고 또 우리나라에 더 이상 상영할 만한 영화도 없었습니다. 그는 나름 성공한 영화배우였으나 너무 짧은 생을 일찍 마감한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저와 한 때 외국은행에서 함께 근무하였던 S도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9년의 일이니 벌써 11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저와 동갑이었고 우리나이도 5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얼굴도 하얗고 동안이어서 언뜻 보면 저보다 한참 후배인 듯이 보이기도 하였고, 결혼도 조금 늦게 한 편이어서 35살에 하였습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서울에 있는 후기 대학을 나와서 첫 직장으로는 외환은행에 입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 외국은행에 뒤늦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급도 조금은 늦은 편이었으나 품성이 착하고 성실하여 상급자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외국은행 한국 대표 사무소의 소장을 맡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였으나 혈액암이 발견되어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그도 외국은행의 대표사무소장까지 역임하였으니 적잖이 성공 가도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허망하게 중도에 우리에게서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이 문득 이 세상을 하직하고 다시는 얼굴을 마주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일찌기 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7. 12. 1. 참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귀한 생명이고 아까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하여 생명을 빼앗긴 사람들의 숫자가 60 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COVID-19 발생동향) 이들의 생명도 누구 못지 않게 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하다가 이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사망자가 3 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3 여 명의 생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하다가 이번 전염병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로 사망 인원수로 세어지는 죽음으로 인식되고 말았습니다.


영어로 이러한 사태의 사망자 숫자를 death toll 이라고 합니다. 사망 (death)을 알리는(toll) 계수인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사망한 사람들이 이러한 재앙의 사망자 숫자를 채우는 것을 위하여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하다 보니 언론은 이들의 죽음을 그저 계수(計數)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돌아간 분들의 삶이 마감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저 사망자 숫자에 주목하고 맙니다.


직업에 따라서, 또 다루는 상품에 따라서 귀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매우 무덤덤하게 취급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명보험을 다루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한 사람의 사망을 평균 수명까지 산 사람, 그 전에 죽는 사람, 평균 수명을 초과해서 산 사람으로 구분하여 인식합니다. 지난 2000년대 초에 생명보험에 사용하는 생명표 (life table) 80세에서 100세로 상향 조정 되었습니다. 그 때에 새로운 생명표가 도입 되기 직전에 생명보험회사 사장들의 모임에서 오간 대화 한 대목입니다,


"새로운 생명표가 반영되기 전까지는 연금 상품은 당분간 팔지 말아야겠어요."


이미 생명보험 상품의 고객들 생명은 지금보다 더 길어졌는데 다만 보험료 계산의 근거가 되는 생명표의 도입만 늦어진 상황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보험료는 평균 80세를 수명으로 계산하였으나 실제로는 평균 수명이 100세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닫. 80세를 기준으로 사망시까지 연금을 지급하게 될 줄 알고 상품을 팔았다가 100세까지 연금을 계속 지급하면 손실이 발생할 것입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 길어진 만큼 연금 상품의 보험료를 새로이 계산하여야 하나 미쳐 새로운 생명표를 도입하기 전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생명보험회사의 책임자 입장에서는 평균 수명이 길어졌는데 가격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편할 것입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 일단은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무병장수(無病長壽)에서 최소한 한 가지- 장수는 조금씩 이루어 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찍이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은 더욱 가슴 아프고 아쉽게 느껴집니다. 더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각 개인의 삶보다는 전염병의 희생자 숫자로 기억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번 사태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 가운데 제가 직접 아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들 한 분 한 분이 모두 주위 분들로부터 그들의 삶이 값진 것이었다고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국이 우한 코로나 사태로 우울하고, 모든 이가 마스크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확진자의 숫자가 기록되고 또 사망자의 숫자도 보도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마치 객관적인 숫자의 보도로만 인식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생명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오늘은 조금 무거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쳐 존 캔디를 기억하지 못하셨던 분들인 이 기회에 그도 한 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