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대학 5년 선배인 S는 1980년대 말 즈음에 대기업의 관리 담당 임원으로 승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 또래의 입사 동기들보다 진급이 빠른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승진에 불만을 표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나 그의 승진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S의 일화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와의 술자리에서 제가 들은 이야기는 가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를 한 가지 소개합니다.
S가 일하는 회사는 세무서와 복잡한 갈등을 겪기 시작하였습니다. 법령의 해석에 따라 세금의 금액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 S의 회사는 당연히 세금이 작게 산출되는 방향으로 해석하였고, 세무서에서는 세금이 더 많이 산출되도록 법령을 해석하였습니다. 세무서와 이러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고 싶었으나 세무 담당 직원들이 몸을 사리고, 또 섣불리 민원인과 어울리려 하지 않아 어려움이 더해졌습니다. 관리 담당 임원인 S는 어떻게든 담당 세무 공무원과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 놓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부하 직원들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강직한 성격의 담당과장이 확고한 의견을 개진하여 세금 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과장은 S보다 3 살 어린 사람이고 세무서 경력 10년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뇌물이나 부정한 사건에 휘말린 적이 없는 대쪽 같은 원칙주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담당과장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골프도 치지 않고, 테니스도 안 치며, 교회도 안 다닌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그 과장은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자기가 사는 동네 뒷산으로 조깅을 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담당과장이 사는 곳은 S가 사는 곳에서 거리가 많이 떨어져서 아무리 교통이 원활한 새벽시간이라 하더라도 자동차로 족히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S는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다음날 새벽에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출근할 때 입을 양복을 따로 싸들고 가벼운 츄리닝 옷 차림으로 차를 타고 세무서 담당과장이 사는 동네로 향했습니다. 담당과장의 집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 쯤에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세무서의 담당과장이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깅을 시작하였습니다. 세무서의 담당과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조를 엇비슷하게 맞추어 가면서 아침 조깅을 마쳤습니다. 세무서 담당과장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S는 자기 차로 돌아와 사무실로 향하였습니다. 사무실 근처의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와 면도를 하고 출근하였습니다
이른 새벽 세무서의 담당과장 집으로 가서 조깅을 하기를 며칠 계속하면서 어느 날 세무서 담당과장에게 지나가는 인사로 ‘안녕하세요’ 한 마디를 하고 조깅을 마쳤습니다. 그 다음 날에도 다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서 얼굴을 익혔습니다. 매일 아침 인사를 하면서 얼굴을 익히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였습니다. 사실 S에게는 아침 조깅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관리 담당 임원이다 보니 저녁에 일이 늦어지기도 하고 또는 술자리에서 늦게 집으로 들어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에 일어나 차를 타고 세무서 담당과장의 집 근처로 가서 조깅을 하였습니다. 한 달이 넘게 세무서 담당과장과 아침마다 얼굴을 마주친 다음 S는 어느 날 세무서로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담당과장의 책상 앞에서 마치 우연히 마주쳤다는 듯이 ‘여기는 웬 일이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담당과장도 깜짝 놀라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S는 ‘사실은 이만저만한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하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담당과장은 ‘그 일은 마침 제가 담당하고 있는데요.’라고 웃으면서 답하였습니다. S는 ‘아 그럼 마침 잘 되었습니다.’ 라고 활짝 웃으며 자기 회사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 놓았습니다. 담당과장도 안면이 익은 사람의 어려운 고민을 귀담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S의 의견을 경청하며 메모도 하였습니다. 그는 부하직원을 불러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볼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S는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 세무서의 부하 직원과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문제 해결에는 여러 날이 걸렸고, 그 동안 S는 계속 매일 아침 멀리 세무서 담당과장의 집 근처까지 가서 조깅을 하였습니다. 이따금 아침 조깅을 하면서 세무서 담당과장은 S에게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담당 부하직원에게 일을 잘 마무리하도록 채근하기도 하였습니다. 몇 달을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세무서와 합의를 보고 문제를 해결하여 세금 금액을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S의 회사가 원하는 금액보다는 세금이 조금 늘어나기는 하였으나 처음 세무서에서 주장하던 금액에서는 크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세금 문제가 해결 되고 나자 S는 더 이상 아침에 조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세무서의 담당과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S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갑자기 요즘 들어서 얼굴이 안 보이는데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S는 사정이 좀 있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였습니다. 세무서의 담당과장은 이제 S 소속 회사와의 일도 마무리 되었으므로 흔쾌히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S는 세무서의 담당과장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신의 집은 세무서 담당과장의 집에서는 상당히 먼 곳이고 자신은 의도를 가지고 세무서의 담당과장에게 접근하려고 매일 아침 멀리서 차를 타고 와서 함께 조깅을 하였다고 이실직고 하였습니다. S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세무서의 담당과장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대단하십니다. 그 멀리서 그렇게 이른 새벽에 저희 동네까지 오시고 제가 조깅하는 거리도 처음 조깅하는 사람에게는 벅찬 거리일텐데 어떻게 그렇게 여러 달 동안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존경스럽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S가 그렇게까지 몸 바쳐서 회사를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것에 세무서의 담당과장은 감복하였습니다. 이른 시간에 멀리에서부터 와서 힘들게 조깅하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달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S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전 날 술이라도 마신 날에는 정말 죽고 싶도록 힘들었었다고 합니다. S의 그런 노력을 높이 평가한 세무서 담당과장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공연히 ‘갑’ 행세를 하면서 버럭 화를 낼 수도 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고 S가 그 힘든 일을 했다는 것에 감복하였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제게 이야기해 주면서 S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세무서 담당과장이 S에게 하여준 이야기도 제게 전해 주었습니다. 세무서의 담당과장은 ‘앞으로 조깅을 할 때에 절대로 주변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겠다’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만 하여도 조금은 어수룩하기도 하고 낭만적(?)인 면도 있어서 S가 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 통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아마도 이런 방법은 쉽사리 먹혀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전산화 되면서 처리 시간도 빨라졌습니다. 몇 달을 함께 조깅하면서 얼굴을 익히는 방법을 취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성심 성의껏 지극히 극진한 정성을 쏟아 부으면 하늘도 감동하고 상대방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식으로 대강대강 일하기 보다는 성의 있게 임하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이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 글의 독자분들은 ‘지성이면 감천’ 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성심성의껏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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