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善한 因緣, 惡한 因緣 - 2020. 12. 4.

jaykim1953 2020. 12. 4. 05:45

정영희 선생님, 이순영 선생님. 강금자 선생님, 김준석 선생님, 최창기 선생님, 조종규 선생님.

이상의 6 분은 저의 국민학교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선생님 성함입니다.

 

이 분들 가운데 저를 끔직히 예뻐해 주셨던 선생님이 두 분 계십니다. 1 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정영희 선생님과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강금자 선생님입니다. 이 두 분 선생님은 공교롭게도 제가 5학년으로 진급할 시기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셨습니다. 제가 두 분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4학년 끝 무렵 2월 말 봄 방학식 날의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각반 교실에서 간단히 담임 선생님들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운동장에 각반 별로 열을 맞추어 섰습니다.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단상에 여러 선생님들이 올라 오셨습니다. 단상의 선생님들께서 우리학교를 떠나서 새로운 학교로 가시게 되었다고 교장 선생님께서 인사를 시키셨던 것입니다. 그 선생님들 가운데 어느 한 선생님께서 대표로 작별 인사를 하셨고, 일부 여학생들은 흐느껴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방학식 행사를 마치고 각 반별로 뿔뿔이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단상에서 내려오신 선생님 가운데 저의 1 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정영희 선생님과 3 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강금자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두 선생님은 번갈아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두 분이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것이 반갑기도 하였지만 고맙기도 하였습니다. 특히나 정영희 선생님은 제가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으니 이미 3년이나 시간이 흘렀고, 한 반에 100 여 명씩이나 되던 시절이니 몇 해 전에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강금자 선생님은 제게 오셔서 저를 꼭 안아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제게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제게는 그 두 선생님께서 저를 끔찍히 예뻐해 주셨던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반장을 하고 어린 나이에 제법 똘똘해 보였고 공부도 비교적 잘하는 축에 끼어서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으나, 사실 그 선생님들께서 맡으셨던 반에는 매 해 반장이 있었을 것이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것이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특별히 기억해 주시는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으나 아무튼 그 두 분은 저를 각별히 기억해 주셨습니다. 제게는 각별히 기억에 남는 어린 나이에 있었던 선(善)한 인연(因緣)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히 즐겁지 못한 사건을 만들었던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2. 27. 참조) 지금도 그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영희 선생님이나 강금자 선생님과 저와의 관계가 선연(善緣)이었다면, 제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만들었던 선생님은 아마도 저와 일종의 악연(惡緣)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기억 속에도 특별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는 선연으로 남아 있고, 그런가 하면 악연으로 남았을 수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의 아니게 악연으로 남아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한 가지 해 보겠습니다.

 

1990년 대 초반이었습니다. 국내 금융기관 가운데 정부 투자 은행 한 곳에서 제게 강의 의뢰를 하였습니다. 국제 금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대리, 과장급 진급 예정자들을 위한 교육이었고, 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험문제도 출제하여 줄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였고, 금융기관에서 국제금융 업무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정리하여 시험문제로 출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의 시간에 넌지시 시험에 출제한 내용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식으로 암시를 주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며칠 지나자 그 은행에서 답안지 묶음을 제게 보내서 채점을 부탁하였습니다. 진급 시험 대상자의 이름은 모두 가리고 묶어서 보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100 여 명 또는 그 이상의 상당히 많은 사람이 시험을 치렀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 대부분의 답안은 제가 강조하였던 내용을 잘 숙지하고 비교적 정확한 답을 써 냈습니다. 제가 점수를 박하게 준 것으로 인하여 진급에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겠다는 생각에 저는 가급적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답안지를 제 앞에 놓고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답안지에는 제가 출제한 문제의 답은 적혀 있지 않았고 장문의 편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내용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저는 집 안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바로 은행에 입사하였습니다. 실무를 배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공부를 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담당분야 이외의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국제금융은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여서 답을 쓰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진급에 여러 번 누락하였고, 이번에도 누락하면 직급 정년에 걸려 1~2년 안에 은행을 그만 두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런 내용을 간곡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제가 출제한 문제는 읽어 보지도 않은 듯 하였습니다. 사정은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은행의 인사부서에 문의하였습니다. 진급시험의 답안지는 얼마 동안이나 보관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인사 관련 자료는 각 개인의 인사 파일에 영구 보존합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이 답안지에 후한 점수를 준다면 이 답안지는 당사자의 인사자료 파일에 영구 보존 될 것입니다. 만에 하나 이 사람의 인사 파일을 누군가가 보게 된다면 이 사람이 써 놓은 편지를 보게 될 것이며, 출제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편지를 보고 제가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 적라라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답안지를 “0” 점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써 놓은 내용 대로 1~2 년 후에 그 은행을 그만 두게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정신 차리고 공부하여 그 다음 기회에 진급에 성공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사람과 저와의 관계는 악연이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저로 인하여 이직(移職)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경우도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5. 3. 13. 참조,  *주: 이 글은 꼭 한 번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저 나름의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면접을 하고, 심사를 하다 보면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와는 너무나 다른 배경과 경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불행하게도 그 사람과 저는 악연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가 하면 제가 미국의 증권회사에서 새로운 분야- 소매 금융-에 뒤늦게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할 때에 제 주변에는 모두 서양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으로 젊은 한국 사람이 한 사람 나중에 합류하였고, 또 한 사람의 한국 사람이 가까운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보다 소매 금융 경력은 앞서고, 실적도 저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저는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맺어 진 인연으로 지금도 그들과는 자주 연락하고 이런저런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선연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많은 주변 사람들과 인연이 맺어지게 됩니다. 바람직하기는 모든 사람들과 선한 인연이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간혹은 악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악연은 가급적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면 이를 당당히 헤쳐 나가는 지혜와 용기도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