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금융이 보조 수단? - 2020. 12. 18.

jaykim1953 2020. 12. 18. 05:44

 

약 2 주일쯤 전 언론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제목은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도발적이었습니다. ‘금융이 보조 수단?…구닥다리 인식이 `K금융` 가로막아’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관련기사: mk.co.kr_2020/12/06_CEO_금융이 보조 수단?)

이 기사는 국내 은행 가운데 SC 제일은행의 은행장이 3 연임을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은행장과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첫 마디가 “금융산업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40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금융은 다른 산업을 키우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라는 1970~1980년대식 사고에서 벗어나야 K반도체, K팝에 이은 K금융, 즉 한국 금융의 세계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라는 매우 도발적이기까지 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분의 경력을 살펴 보면 제가 금융 산업에 입문한 직후에 은행 경력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금융 산업을 경험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970년대의 개발 지상주의, 수출 드라이브 등으로 대변되는 산업 발전과 1980년의 도약기를 몸으로 겪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글로벌화 (global 化)를 거쳐 IMF 외환 위기라 불리는 경제의 어려움도 겪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의 경제 회복과 다시 세계 금융위기 (Global Financial Crisis)도 겪었을 것이고, 그로부터의 회복에 매진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금융에 관한 변하지 않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도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의 금융은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인정 받기 보다는 제조업 등의 기간산업을 위한 보조 기능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특히나 1970년대에는 고도성장을 위한 경제 계획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국가가 설계하고 기획하는 경제 운용을 위하여 금융이란 자금을 제 때에 필요한 금액만큼 제공해 주는 하나의 보조 역할로 인식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금융은 산업 발전에 얹혀서 금융 비용이나 유발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금융을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전형적인 상품이 차관(借款)입니다. 정부가 기획하는 개발 사업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정부 (당시의 경제기획원- EPB, Economy Planning Board)가 주도하여 해외로부터 도입하여 조달하는 금융의 방법이 차관이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차입 금액, 기간, 조건 등을 조율하여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이라면 그 당시에 극장에서 상영하는 ‘대한 뉴우스’를 보면서 ‘박종세’ 아나운서의 코 맹맹이 소리가 곁들인 낭랑한 목소리로 ‘정부는 이번에 미국의 퍼스트 내쇼날 씨티 은행으로부터 1천만 달러를 도입하여 울산 지역의 항만 시설을…’ 하는 코멘트를 들으면서 해당 사업이 진행될 예정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걸어 나와 좌우에 관련 인사들을 도열 시킨 채 기공식 테이프를 자르는 광경을 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나라에 차관을 공급하였던 주요 은행들은 미국의 퍼스트 내쇼날 씨티 은행 (First National Citi Bank, 현재의 Citi Bank- 씨티은행), 뱅크 오브 어메리카 (Bank of America), 체이스 맨핫탄 은행 (Chase Manhattan Bank, 현재의 J P Morgan Chase)였습니다. 물론 그 밖에도 여러 은행들이 있었으나 미국계 은행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차관을 제공하였습니다.그리고 일본계 은행들이 1964년의 한일협상 결과물로 받게 된 대일 청구권 자금의 공급 창구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보다 더한 사례는 소위 전대차관(轉貸借款)이라 하여 경제기획원의 인가를 받아 국내 국책은행들-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외환은행 등이 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여 이를 재원으로 하여 국내 기업들에게 외화대출을 하여 주었습니다. 전대차관의 거래 향태를 보면 국내은행들은 단순히 경제기획원의 산업자금 재원조달 과정에서 자금의 통로로 이용되는 집행기구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상황은 금융이란 그저 보조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하나의 독립된 산업 대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여신 심사, 적정한 가격과 거래 조건 등에 대한 경쟁이나 비교 등을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봉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금융기관들이 정상적인 금융산업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양적 성장만 하여 오던 국내 은행들에게서는 제대로 된 금융 산업에 대한 이해 조차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위의 기사에 언급한 은행장은 이러한 과정을 지켜 보고 1998년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은행이 외국계 사모 펀드에게 팔려 나가는 것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계 자본이 점령한 은행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금융에 대한 달라진 시각을 갖게 될 기회가 생겼을 것입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 가운데 아프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금융 산업도 많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산업으로 인정 받지도 못하고 무시 당하기도 하였고, 나라 전체가 경제의 어려움에 빠지면서 가장 먼저 외국 자본에 팔려 나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커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지난 1970년대, 1980년대를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성장하였습니다. 위의 기사에서 K 금융이라는 용어까지 인용할 정도로 이 은행장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아직은 선진국의 금융 산업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고 제도와 규정도 미흡하기만 합니다. 아직도 정부기관과 감독기관이 앞서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법을 만드는,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의 금융이 앞으로 발전해 나가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각종 규제와 제약, 금지 사항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시장에 나가서 살아 남기는 쉽지 않습니다.

금년 초 대통령이 지방 순시 중에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이 대통령 면전(面前)에 대고 “경기가 거지 같아요” 라고 말하자 대통령 지지자들이 벌떼 같이 달려 들어 그 상인을 비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상인의 말에 더 가깝습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느끼기에 경기가 거지 같으면 실제 경제는 많이 안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고관대작 경제관료들이 각종 통계와 지표, 자료를 들이밀면서 우긴다 하여도 시장에서 상인들이 느끼는 경기가 좋지 않다면 경기는 안 좋습니다. 정부가 애써서 경기를 살리려고 노력도 하여야 하겠지만, 경기가 살아나는 것은 시장 상인들의 노력과 지혜로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빅 힛트 라는 연예 기획사가 나서서 방탄소년단을 키워내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 것이 대단히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현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행여 정부가 나서서 훌륭한 가수를 키우는 양성소를 세우겠다고 하면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나온 역사는 마치 정부가 직접 가수 양성에 나서듯이 금융시장에서 정부가 모든 것을다 하였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정부기관과 금융감독당국이 우리나라의 금융이 나아갈 길을 움켜 쥐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상품 개발, 마케팅, 리스크 관리 등이 쉽사리 허용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홍콩의 치안과 경제, 통치 상황이 불안해 지자 현지에 진출해 있는 외국금융기관들을 상대로 홍콩 대신 한국으로 옮겨올 의향을 타진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쉽게 한 마디로 ‘노’ 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_2020. 8. 21. 참조)

이 기사에서는 K 금융이라는 말로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K 금융이라는 이름 조차도 언급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몇 발자국 뒤쳐지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발전하였고,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픈 만큼 성장해 왔습니다.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금융산업도 언젠가는 세계 시장에서 어깨를 견줄 만한 규모와 실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올 때까지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한층 더 분발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