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公約 - 2021. 1. 29.

jaykim1953 2021. 1. 29. 05:31

 

얼마 전 고등학교 1 년 후배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그 후배는 제게 대뜸 물었습니다. “형,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 중에 허X영 선생님 아시죠?” 저는 그 선생님을 잘 알기에 대답하였습니다. “응, 잘 알지.” 그러자 제 후배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 선생님 동생이 ‘허경영’이래요.” 그 후배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선생님과 기인(奇人)이라고 알려진 ‘허경영’이라는 사람의 얼굴이 비슷하게 닮았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허경영은 지난 주에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며 특이한 공약(公約)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허경영 또 파격 공약 “매월 연애수당 20만원 지급” _2021/1/20)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 허X영 선생님과 얽힌 추억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 때에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을 하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습니다. 시범수업이 그 한 예입니다. 어느 한 선생님이 시범수업을 진행하고 관련과목 선생님 몇 분과 교무주임, 그 밖의 주요 직책을 맡고 계셨던 선생님 몇 분이 수업시간에 들어와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참관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허X영 선생님께서 시범 수업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시범수업을 하려면 대체로 수업 내용을 차트로 그려서 칠판에 걸어 놓고 수업을 진행합니다. 평소에는 차트를 쓰는 일이 전혀 없으나 시범수업을 할 때면 곧잘 차트를 사용하곤 하였습니다. 허x영 선생님은 실제 시범수업은 다른 반에서 진행할 예정이었고, 시범수업 직전 시간에 저희 반에서 시범수업의 리허설 겸 차트를 칠판에 펴 놓고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날의 차트에는 뜻하지 않은 실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차트의 내용에는 동사의 과거, 과거분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규칙 동사에는 끝에 ~ed 를 붙이면 되는데, 이를 읽을 때는 경우에 따라 /d/ 로 읽기도 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t/, 또는 /id/ 로 발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단어의 끝 글자가 유성음이면 /d/, 무성음이면 /t/, 마지막 글자가 d 또는 t 로 끝나면 /id/ 로 발음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각 글자로 끝나는 단어들을 나열해 놓고 일일이 ~ed 를 붙여서 발음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설명하였습니다. 문제는 끝에 b 로 끝나는 단어의 예로 bomb (폭격하다)을 써 놓고 그 뒤에 ~ed 를 붙여서 bombed 라고 써 놓고는 bomb 의 마지막 글자가 b 로 끝나는데 b 는 유성음이므로 ~ed 는 /d/ 라고 소리가 난다는 설명을 하셨습니다. 저희 반 친구들은 선생님의 시범수업 리허설에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심드렁하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신기하게 잘 못 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Bomb 이라는 단어의 마지막 b 는 발음이 되지 않는 묵음 (默音, silent)입니다. 그래서 비록 철자는 끝에 b 로 끝나지만 발음은 마지막에 m 으로 끝납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교실을 나가시는 선생님께 제가 다가가서 조용히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 bomb의 마지막 b 는 묵음이어서 발음이 나지 않지요, 그러니 단어 bomb 의 마지막 발음은 b 가 아닌 m 이 됩니다. 따라서 마지막 발음이 b 여서 ~ed 의 발음이 /d/ 로 읽는다는 설명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의 말을 듣고 계시던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금세 얼굴이 하얘지시면서 “아, 그렇네….” 하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허X영 선생님은 제게 “2학년 X반 OOO 좀 불러 와라. 걔가 이 차트 그렸는데 좀 고쳐야겠다.” 라고 황망히 제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교무실로 뛰어가셨습니다. 저는 그 차트를 그린 학생을 찾아서 데리고 교무실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급한 마음에 제게 “끝에 발음이 b 로 끝나는 규칙 동사 단어가 뭐가 있지?” 하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Rub. Stab. 이런 것들이 있죠.”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급히 차트를 수정하여 bomb 을 stab (찌르다) 으로 교쳤습니다. 처음에는 rub (문지르다) 으로 바꾸려 하였으나 글자 수가 4 개에서 3 개로 줄어들면서 기존의 차트 구성과 줄이 잘 안 맞아 bomb 과 같은 글자 수를 가진 stab 으로 바꿨습니다. 그 다음 시간에 시범수업은 별 일이 없이 진행 되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저와 마주친 허X영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제게 고맙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별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선생님으로 근무하셨던 형님에 비하면 그 동생인 허경영이라는 분은 참으로 여러 가지 기행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도 몇 번인가 출마하였었고, 정당도 여러 번 만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번에도 서울 시장에 출마한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각종 허황되어 보이는 공약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허경영 파격 공약 “매월 연애수당 20만원 지급” _donga.com_2021_1_21) 그의 공약들을 보고 있으면 그는 서울 시장이나 대통령이 되면 마치 전제국가의 왕이나 황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여러 언론에서 비판하듯이 그의 여러 공약들은 재정 수요가 큰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재정 수입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의 공약들을 실행에 옮기려면 그런 정책들을 뒷받침할 헌법과 법률의 제정과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가 서울 시장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듯이 한 나라의 경제가 그리 단순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많은 구성원에 의하여 복잡한 관계를 이루어 가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입니다. 전반적인 경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예측이 있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지난 정권에서 일하던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직원남용이라는 죄목으로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행하였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에는 정상적인 법 절차 또는 행정절차를 밟지 않고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허경영이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섣불리 아무 일이나 벌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권에서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을 벌이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듯 합니다. (관련기사: 단독 은행 오피스 빌딩 대출 조여라_與 금융당국 압박_hankyung.com_2021_1_22) 정부가 금융기관의 경영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지난 정권에서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권한을 넘어서는 요구에 응하였다가 혼이 난 여러 기업과 관계자들이 이제는 몸을 사리기도 합니다. (관련기사: 정부 사업마다 불려간 은행들_참다참다 “돈 못내겠다”_chosun.com_2021_1_25) 지난 정부에서의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위 공직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은 헌법과 법률, 규칙 등으로 정하여져 있으며 그 한도 안에서 행사하여야 합니다. 이를 벗어나지 않도록 업무를 처리하여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공무원들의 보신(保身)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일찌기 수십 년 전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독려할 때 금과옥조 처럼 사용하던 ‘건실한 중소기업을 선별하여 적극 지원하도록 할 것’ 이라는 지시는 공무원들의 보신을 반영하는 지시의 압권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1. 8. 참조) 만약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하지 않으면 중소기업 지원을 회피하여서 지시사항을 불이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중소기업에 대출한 것이 부실화하게 되면 이는 ‘건실한’ 중소기업을 선별하여 지원하라는 지시사항을 간과하여 문제를 일으킨 것이 됩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아직도 건실한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하라는 식의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여러 가지 경제 상황이 안 좋고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때에 정부가 나서서 슬기로운 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어 놓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다만 너무나 의욕에 넘쳐서 월권 행위를 하거나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안 됩니다. 50 년 전 허경영의 형님이 시범 수업을 하듯 보여 주기식 정책이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 기업과 경제 구성원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고통을 제대로 덜어주고 힘든 상황을 확실히 벗어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때일 수록 슈퍼 맨과 같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인 양 신출귀몰한 대책으로 단 칼에 우리나라 경제를 구해 주겠다는 의욕을 보일 수 있습니다. 허경영도 자신을 슈퍼 맨인 양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슈퍼 맨과 같이 단 칼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재정지출을 늘이는 정책을 내어 놓습니다. 재정 지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재원의 조달 등에 대한 용의주도한 검토가 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분히 인기 영합을 위한 공약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제 구성원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우리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잘 지켜 나가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막연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현금을 쏟아 붓는다고 경제가 살아는 것도 아닙니다. 경제정책의 효과를 높여야 기업과 국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촘촘하고 면밀한 재정 정책으로 지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허황된 공약으로 국민을 혼란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