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치매 (癡呆)- 2021. 2. 10.

jaykim1953 2021. 2. 10. 11:30

지난 주말 우리나라 언론에는 느닷 없이 유명 여배우가 치매에 걸려 외국에 방치 되었으니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청원으로부터 비롯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관련기사: 윤정희-“치매 배우 방치” 청원_joins.com_2021/2/8)

 

그로 인하여 제 주변의 친구들도 두 갈래로 찢어져 갑론을박, 각기 다른 정보와 의견이 홍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저와 중학교 동창이고, 과는 다르지만 대학도 함께 다녔던 친구가 그 여배우의 동생이다 보니 제 주변에서도 그 친구와 가까운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그 여배우가 방치된 상태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이런 갈등이 있을 때에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 보아야 한다며,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잘 못을 저질러서 벌어진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신문 기사도 처음에는 청와대 청원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마치 유명 여배우가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사 논조가 양쪽의 주장을 모두 담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양쪽이라 함은 그 여배우 동생측과 여배우의 남편측입니다. 여배우의 남편측에는 여배우의 딸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여배우는 멀리 프랑스에 있고 우리는 여기 한국에 앉아서 그녀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또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도 이번 일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릴만큼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서 이번 일로 흥분하고 열변을 토로하는 친구들을 보면,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대체로 그 여배우의 동생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청와대 청원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며 여배우의 남편과 딸이 부당한 행동을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 반면 여배우의 남편과 딸의 행동에 동조하는 듯한 생각을 보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 여배우의 동생과는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으나 이번 상황을 바라보는 제 주변 사람들의 시각은 그 여배우의 동생과 친소(親疏)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를 보면서 마치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의 상황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상황의 옳고 그름이나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자신과 가까운 집단, 또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편을 들고 그에 따른 논리를 폅니다. 이러한 경향의 극치로는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자칭 언론 작가라는 사람이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증거를 은닉하려는 행위를 ‘증거보존’이라고 강변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유시민 "정경심 PC반출은 증거보존, 검찰 장난칠 경우 대비"-joins.com_2019/9/24) 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억지 주장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이러한 유사한 주장을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 아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이 하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라고 펄펄 뛰지 않았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상식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고 어느 집단에서 일으킨 일이냐에 따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유불리를 먼저 판단하고 그에 맞추어 억지 논리를 만들어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정치판에서는 이러한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엉뚱한 논리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멀쩡하게 잘 살아남고 오히려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합니다.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곳이 정치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반면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아무리 위세 있는 사람이 고집을 꺾지 않고 억지를 부려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고 소비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런 비즈니스는 도태되게 마련입니다. 2004~5년에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최대 자동차 제조사에서 2004년 신형 중형 승용차를 발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뒷모습도 깔끔하게 잘 만들어져서 디자인에 대한 시장의 평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해외 시장- 특히 미국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잘 팔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회사의 오너인 회장님이 그 차의 뒷모습에 대한 코멘트를 하였습니다. 낮에 보이는 뒷모습이 예쁜 것은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어두워지면 테일 램프가 들어오게 될텐데 그 때의 모습이 낮에 보는 모습과 조금 다르게 비치면 더욱 신비롭고 멋 있을 것이라며 디자인을 일부 수정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회장님의 지시사항인 만큼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디자인을 바꾸었습니다.

 

 

디자인 변경 전 원래의 뒷모습

 

디자인 변경후 달라진 뒷모습

 

테일 램프에 마치 반창고를 붙인 것 같아 보인다는 소비자들의 조롱 속에 새롭게 변경된테일 램프는 반창고 테일 램프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디자인 변경후 이 차의 판매고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외국 시장- 미국에서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처음 디자인을 보고 차를 구매하였다가 인도 시점에 뒷모습이 달라진 차를 받게 되면 반품을 요구하는 소비자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현지 자동차 딜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잘 팔리는 차의 디자인을 왜 변경하여 판매를 어렵게 만드느냐는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자동차 디자인을 담당한 직원들은 조심스럽게 테일 램프 모양을 초기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똑같지는 않게 수정하였습니다.

 

테일 램프를 재수정한 뒷모습

 

회장님이 질책한 초기의 테일 램프로 돌아가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고, 회장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최대한 초기 디자인에 접근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시 판매량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오너인 회장님의 지시가 준엄하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회장님도 물러서게 됩니다.

 

이번에 보도된 여배우의 치매 상황은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분쟁의 당사자들은 알 것입니다. 누군가는 거짓 혹은 과장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고 다른 한 쪽도 조금은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각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욕심에 조금씩 말을 더 하고, 조금씩 수정하다가 점점 진실로부터 멀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즈니스의 세상에서는 그나마 소비자와 시장이 잘못된 상황을 수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줍니다. 시장을 왜곡하고 소비자를 무시하면 그런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의 세상도 이렇게 정상적이고 순리에 따른 사람들만 밝은 모습으로 살아남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바람직하였을 상황은 그 여배우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들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미리미리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여 예방할 수 있는 데까지 예방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