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先驅者 - 2021. 3. 12.

jaykim1953 2021. 3. 12. 05:25

쟈넷 랜킨 (Jeannette Rankin) 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880년 생인 그녀는 36살의 나이에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국회의원 (하원의원)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의원이 바로 쟈넷 랜킨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당시 미국에서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투표권도 없는 여성이 피선거권은 다행히 주어져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최초로 의원직에 당선된 것은 1916년이고 미국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한 미국 헌법의 19차 개헌은 1920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이 투표권을 부여 받기 4년 전에 자넷 랜킨은 국회의원으로 당선 되었던 것입니다. 그야 말로 용감하고 진취적인 선구자라 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쟈넷 랜킨과 같이 역사에 남을 선구자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한 분야의 일을 그 분야의 초창기부터 40년이 넘게 하여 온 사람도 있습니다. 언론에도 몇 번인가 보도 되었던 5성급 호텔의 도어맨 (door man) ‘권문현’ 이라는 사람입니다. (관련기사: 43 전설의 수문장 호텔 도어맨 권문현_ichannela.com_2019/08/16) 이 분은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나이가 동갑입니다. 제가 이 분을 처음 본 것은 1980년 대 초반 그가 조선호텔에서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분은 도어맨들 가운데 서열이 그리 높지 않았었습니다. 이 따금 제가 조선호텔을 방문할 때에 저의 차 문을 열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이 분보다 고참 도어맨이 두 어 분 계셨는데, 그 분들도 매우 노련하여서 좁은 호텔 정문 앞에 차가 밀려 들어도 용케 길이 막히지 않게 차량 소통을 시키면서 손님들을 잘 모셨습니다. 권문현 씨는 도어맨들 중에서도 가장 인사를 공손히 하여서 제가 기억합니다. 그 당시 제가 30대의 젊은 고객이어서인지 다른 분들은 고개를 깊이 숙이지 않고 목례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권문현 씨는 고개를 깎듯이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 이 분은 조선호텔에서 가장 고참 도어맨이 되었고, 2000 년대 초반 이 분이 더 이상 조선호텔 정문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여의도에 새로운 5 성급 호텔인 콘래드 (Conrad) 호텔이 생기고, 저도 우연히 그 곳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호텔 정문에서 차에서 내리자 그 분이 저를 알아보고 다가와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깜짝 놀라, ‘언제부터 이리로 옮기셨어요?’라고 묻자, ‘조선호텔에서 정년 퇴직하고 나서 여기로 왔습니다.’ 라고 답하였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경험을 묶어서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호텔밥 44 도어맨 권문현의 호텔 인생 담긴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씨와 연배는 비슷한데 호텔 도어맨으로 더 일찍 명성(?)을 얻은 분이 있습니다. 신라호텔의 도어맨이었던 ‘조세웅’ 씨입니다. (관련기사: 외제세단도 차별없이 모십니다_문화일보 2003/01/16) 제가 1999년 제 고객 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게 되어 신문의 인사 동정란에 자그마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가 나간 다음 날 제가 신라호텔을 방문하였습니다. 조세웅 씨는 제 차의 문을 열어 주며 ‘상무님, 신문에 난 기사 보았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조세웅 씨는 수 백명에 가까운 호텔 손님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객의 차량도 상당히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점심 시간이 끝날 때 쯤이면 호텔 현관에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북적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태우려는 차량이 줄지어 현관에 도착합니다. 조세웅 씨는 그 차의 주인을 정확히 찾아 내어 차 앞으로 안내하면서 차 문을 열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도 그런 대접을 그 분으로부터 몇 번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제 차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프라이빗 뱅킹이라는 개념의 비즈니스가 도입되기 전인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찾는 금융기관으로는 단자회사(短資會社)가 첫 번째로 손 꼽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단기간을 맡겨도 이자를 지급할 뿐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에 비하여 상당히 높은 이자를 지급하였습니다. 기업 어음, CP (Commercial Paper) 등을 발행하고 매입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예수된 자금을 고수익으로 운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객에게도 상당히 높은 금리의 수익을 돌려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금 자산이 많은 고객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당시에 단자회사들 가운데 선두 주자의 하나로 꼽히던 T 사는 고액 자산가 고객을 위한 VIP룸을 따로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상품은 기업어음을 취급하였으나 마치 최근의 프라이빗 뱅킹과 유사한 고객 서비스를 하였습니다. 고객과 직원이 별도의 방에서 1 대 1 로 마주 앉아 거래를 하였습니다. T 사에서 고액 자산가를 상대하던 C 는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T 사에 입사하여 5~6 년 동안 창구에서 대고객 업무를 수행하던 직원이었습니다. 그 녀는 성격도 밝고 인상도 귀여워서 고객들이 좋아하였습다. T 사에서 고액 자산가를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는 저의 대학 1년 선배인 L 부장이였습니다. 그는 이따금 저와 만나 식사를 하기도 하면서 비즈니스에 관한 조언을 주고 받던 사이였습니다. L 부장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L 부장은 자신의 회사에서 고액 자산가를 특별히 모시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C 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C 는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때 상대방이 ‘여보세요’ 한 마디만 하면 바로 전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L 부장이 보아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첫 마디, 한 마디에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알아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T 사의 고객 가운데 고액 자산가들의 전화는 모두 C 가 받게 되는데 단 한 마디에 상대방을 알아내며, ‘안녕하세요 OOO 사장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고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여 응대를 잘하여서 고객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관리하는 고객은 약 200 여 명 정도 되는데, L 부장이 관찰한 바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C 는 전화 상대방을 단번에 알아차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도 신기하여 저도 한 번은 직접 C 에게 전화를 하였고, 어김 없이 그녀는 저의 ‘여보세요’ 한 마디에, ‘안녕하세요 김재호 부장님.’ 하고 저의 목소리를 알아냈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를 잘 알아냈습니다. 그녀가 지금과 같이 프라이빗 뱅킹이 큰 비즈니스로 자리 매김한 이후에도 계속하여 일을 하였다면, 고객을 맞이하는 최전선에서 전화를 받으며 고객을 응대하는 데에 커다란 한 몫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프라이빗 뱅킹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C 는 이미 고객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그녀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쟈넷 랜킨은 역사에 남을 미국의 첫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선구자였고, 권문현 씨나 조세웅 씨는 일찌기 우리나라의 호텔 도어맨 서비스가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하던 시절부터 최고급 호텔의 정문을 지켜온 또 다른 의미의 선구자들이었습니다. C 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프라이빗 뱅킹이라는 비즈니스가 소개도 되기 전에, 비록 제대로 된 프라이빗 뱅킹 상품은 갖추지 못하였더라도 프라이빗 뱅킹 못지 않은 훌륭한 고객 대응으로 금융에서 앞서 가는 서비스의 선구자였습니다. 이렇게 각 분야에 선구자들이 있어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발전하고 또 살기에 좋은 세상이 되어갈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선구자들이 새로운 분야에서 그들의 능력을 키워 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에 갈채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