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무소식이 희소식- 2021. 3. 19.

jaykim1953 2021. 3. 19. 05:30

지난 주 금요일에는 뜻하지 않은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소식은 아니었으나 저에게는 뜻 밖에 충격적인 보도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밴드 음악을 하던 ‘남상구’ 라는 음악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야생마 남상구 간암 투병 별세 mk.co.kr_2021/03/12)

 

남상구라는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입니다. 1980년대에 밴드 음악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혹시라도 ‘야생마’ 라는 이름의 밴드를 기억할 지 모르나 남상구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그렇게 유명한 음악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낯익은, 반가운 이름이었습니다. 남상구는 저와 함께 군대 생활을 하였던 저의 전우(戰友)였습니다. 그는 저보다 약 2 년 여 늦게 입대하여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 배치 되었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파견대에 근무하며 같은 내무반 생활을 하였고, 그가 맡은 일은 병참, 보급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무반에서 고참병들이 후배 병사들을 구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다행히 제가 소속되어 있던 내무반에서는 그러한 일이 자주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내무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화목하였습니다. 제가 남상구를 처음 만났을 때에 저는 제대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병장이었고 남상구 일병은 이병으로 전입 와서 한 달 여 만에 일등병으로 진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역할 때 쯤에 남상구는 상병으로 진급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상구는 군에 입대하기 전 사회에서 음악을하였다면서 내무반에 있는 기타를 자주 연주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때에 저희 내무반에는 또 한 사람의 밴드 출신 음악인이 있었습니다.그의 이름은 ‘이혁섭’ 이었습니다. 그는 남상구보다 6 개월 정도 먼저, 저보다는 1년 반 정도 늦게 군에 입대하였으나 나이는 저보다도 한 살 위였습니다. 이혁섭과 남상구는 사회에서 전문 음악인으로 연주활동을 하였던 프로 연주자들이었습니다. 한 내무반에 두 명이나 프로 음악인을 가지게 된 저희 내무반은 거의 매일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연주 솜씨도 수준급이어서 주변의 다른 내무반 병사들이 구경을 오기도 하였습니다.

 

제대를 약 6 개월쯤 앞 두고 저는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군 복무의 마지막 기간을 비교적 편히 보내고 전역을 하였습니다. 저는 공식적인 전역 전 날에 전역 신고를 하러 부대로 들어가서 예전의 내무반에서 하루 저녁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소주룰 곁들인 찌개와 마른 오징어 등으로 내무반에서 간단히 저의 송별 회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남상구 상병과 이혁섭 상병의 기타 반주를 곁들인 멋드러진 음악 연주가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하였던 전우들이 먼저 군복무를 마치고 떠나는 저를 부러워 하며 전역 후의 희망찬 장도(壯途)를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먼저 떠나는 저도 남아 있는 후배 병사들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남상구 상병을포함하여 남아 있는 병사들과 헤어졌습니다. 1977년 4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44 년 동안 저는 남상구 라는 이름을 거의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지나간 44년의 대부분 그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였던 것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처럼 그저 그가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도 죽기 전 말년에는 간암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44 년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그의 마지막 순간에는 무소식이 반드시 희소식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무심히 지내는 것은 종국에는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음을 각오하여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남상구의 사망 소식이 그렇습니다.

 

여수신(與受信)을 주요 업무로 삼는 금융업에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방치하여서는 안 됩니다. 여신업자는 차주(借主)의 신용상태를 수시로 점검하여 여신이 부실화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기본을 무시하는 금융상품을 제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도 지사가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기본대출이라는 이름 아래 일천만 원을 10 년간 빌려 주되, 이자는 만기시에 받고 중도에는 이자를 받지 않고 유예해 주는 상품을 제안한 것입니다. (관련기사: 이재명표 기본대출에 은행권위험천만”_m-i.kr_2021/03/10)

 

대출을 실행한 후 10 년 동안 이자를 받지 않고 유예하여 주면 그 동안 차주의 신용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신용도와 관계 없이 일률적으로 1 인당 일천만 원을 빌려주고 이자율도 모두 2~3%의 저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금융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한 거래입니다. 경기도 지사는 경기도 신용보증 재단을 통하여 이러한 상품의 가능성을 문의하는 공문을 관내 금융기관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언론에서 이를 문제 삼자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라고 톤을 낮추었습니다. 그렇지만 도지사가 금융기관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문의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게다가 신용보증 재단은 각 금융기관이 금융소비자와의 여신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기관에게 여신 보증을 시행하여 주는 일종의 상급기관 행세를 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공문을 보냈으면 일선 금융기관에서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대출이 부실화 되어도 경기도 신용보증 재단에서 보상하여 준다는 것은 금융기관에게 신용도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부추기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기사 가운데, 은행 관계자는 “차주의 자산 건전성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이자 납입 여부인데 (납입을 면제하는) 10년 사이 차주의 상황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라는 대목이 바로 10년의 무소식이 반드시 희소식으로 마무리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금융기관도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무소식이 종국에는 슬픈 소식이 되는 일도 많습니다. 금융기관에서는 무소식이 손실로 결말나는 경우를 미리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야 합니다. 10년간 이자를 받지 않고 유예하는 상품이 도지사의 말처럼 금융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고 금융기관에 문제가 없는 상품이었다면 도지사가 이야기하기 전에 금융기관들이 그와 같은 상품을 진작에 개발하였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상품이기에 아무리 소비자가 반기는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금융기관들이 그 동안 나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지사가 앞장서서 이런 상품을 제안하면 전형적인 관치금융(官治金融)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은 서글픈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 금융 원칙에 어긋나는 관치금융의 시도가 언론을 통하여 미리 걸러지면서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에 견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아무리 도지사의 지엄한(?) 분부가 있더라도 사리에 맞지 않는 조치가 여론을 통하여 저항에 부딪치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가 성장하고 성숙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주변에 잊혀진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잊고 있기 보다는 혹시라도 안 좋은 소식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지 미리미리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