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촉(觸) - 2021. 4. 16.

jaykim1953 2021. 4. 16. 05:27

2007년에 저는 메릴린치 증권회사의 뉴욕 지역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지점에는 인도(India) 출신의 여직원 A가 있었습니다. A는 두뇌도 명석하고 언어에도 재주가 있어서 일본어를 잘 하였고 증권 거래 업무도 능수능란하게 잘 처리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소위 얼리 어답터 (early adopter)였습니다. 그녀의 자동차는 그 당시 미국에 하이브리드 승용차로 갓 소개되었던 토요타의 프리우스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발매된 첫 날 아이폰을 구입하였습니다. 바로 2007년 7월의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아이폰을 가지고 사무실에 출근한 첫 날, 그녀는 사무실 안에 있는 직원들에게 아이폰을 보여 주면서 매우 만족스러워 하였습니다. 그 때 저와 함께 팀을 이루던 C는 A의 아이폰을 구경하고 와서 제게 대뜸, ‘애플주식(코드 AAPL)을 사야겠어요. A가 가지고 온 아이폰을 보니 대박 나겠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LG 전자의 초콜렛 폰에 이어서 모토롤라(Motorola) 사의 레이저 (Razr) 폴더 폰이 크게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없던, 못 보던 물건인 아이폰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C의 표현을 빌면 ‘아이폰은 기존의 휴대폰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창작품’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본 C의 첫 반응은 ‘이런 물건은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할 것이고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의 주가는 당연히 크게 오를 것’ 이라고 유추하였습니다. 그리고 C는 곧바로 애플의 주식을 매입하였습니다.

 

문제는 저의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이폰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저런 물건을 쓸 수 있으려는지 의문이 가기도 하였지만, 젊은 층에게 크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를 따라서 애플 주식을 사는 것에는 동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 저는 뜨거운 애사심(愛社心)을 발휘하여 임직워들의 자사 주식 매입 프로그램을 통하여 메릴린치 주식(코드 MER)을 매입하였습니다. 그 당시 메릴린치 주가는 주당 $90을 돌파하여 거의 $100 에 근접하는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4 년이 지난 오늘 그 때의 결정을 뒤돌아보면 극명하게 운명(?)이 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C가 애플 주식을 매집하던 시기의 애플 주가는 $110 ~ $120 수준이었습니다. C의 애플 주식 평균 매입 단가는 약 $115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애플의 주식은 그 이후 2014년에 7:1 , 그리고 2020년에 4:1 로 두 번의 주식 분할이 있었습니다. 주식 분할을 감안하면 C의 매입 단가는 약 $4 ($115 / 7 / 4 = $4.11) 일 것입니다. 지금의 애플 주식 단가는 $130 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30배가 넘는 가격 상승이 있었습니다. C가 아직도 그 때 매입한 애플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애플 주식을 선택하여 매입한 시점은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그야 말로 촉(觸)이 제대로 발동하였던 것입니다.

 

그 반면 제가 매입하였던 메릴린치 주식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Global Financial Crisis) 속에서 뱅크 오브 어메리카 (Bank of America)가 메릴린치를 인수하였습니다. 메릴린치 주주에게는 1 주당 뱅크 오브 어메리카 주식 (코드 BAC) 0.85 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뱅크 오브 어메리카의 주가는 약 $40 수준입니다. 제가 매입한 메릴린치 주식의 단가는 약 $95 정도였습니다. 이 주식은 뱅크 오브 어메리카 주식 0.85주로 바뀌었으므로 그 주식의 현재 가치는 0.85 X $40 = $34 이 되어 있습니다. 1/3 로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4년 후에 그 결과를 극과 극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C의 선택은 30배가 넘는 수익을 낸 반면 저의 선택은 1/3 로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고백할 것은 저의 메릴린치 주식은 2008년 뱅크 오브 어메리카와 합병 직후 주가가 $16 수준일 때에 모두 처분하였습니다. 제가 $95 에 매입한 주식을 $13~$14 에 매도하였던 것입니다. 꾹 참고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 보다는 더 나은 매입가 대비 1/3의 가격에 팔 수도 있었을텐데 금융 위기 속에서 뱅크 오브 어메리카의 주가도 계속 하락하는 것을 보고 손절매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교훈은 자명합니다. 투자를 하려면 저 같은 사람에게 묻기 보다는 C 에게 자문하여야 합니다. C에게 자금을 맡기고 운용을 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한 마디로 C가 저보다는 시장의 촉이 훨씬 더 좋습니다. 촉이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항상 촉이 무뎠던 것만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날카로운 촉이 발동하였던 경험도 있습니다. 1997년의 일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여 미국 달러화를 매각하고 우리나라 원화를 사들였습니다. 목적은 환율 방어였습니다. (관련기사: 1997/03/12_경향신문 _한은 외환시장 본격 개입) 이 기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외환 시장에서 미국 달러화가 달러당 877원에 거래가 되고 있었으나 한국은행의 개입- 한국은행의 달러화 매각/ 원화 매입- 으로 환율은 859원으로 떨어졌습니다. 한국은행이 무리하게 달러 대 원화의 환율을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_2015. 10. 16. 참조)

 

1997년에는 우리나라의 GDP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관련기사: 1997/08/29_매일경제_경상 GDP 작년보다 $24 감소) 이를 감지한 정부는 통계 숫자가 나빠지는 것을 미리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원화 기준의 GDP가 작년과 같아서 10만 원이라고 하면 이를 미국 달러화로 환산할 때에 환율이 달러당 877원인 때에는 달러화 표시 GDP가;

100,000 원 / 877 = $114.03

이 됩니다.

그런데 만일 달러당 환율이 859 원이 되면 달러화로 표시한 GDP는;

100,000 원 / 859 = $116.41

이 되어 $2.38 만큼 더 많아 보이게 됩니다.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고 그 당시 정부는 환율을 떨어뜨리려 하였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눈 앞에 두었다고 선전하였는데 오히려 GDP가 줄어들게 되면 정부가 무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 달러화로 환산한 GDP가 늘어나 보이도록 만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외환보유고를 동원하여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를 매각하고 한국 원화를 매입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원화 가치는 올라가면서 달러화 표시 GDP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는 줄어들기 시작하여 종국에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IMF 외환 위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환율을 끌어내리게 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차납니다. 제일 먼저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보다 중앙은행의 개입에 의하여 움직인 환율은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를 실제 가치보다 더 높아 보이게 만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니 높은 원화 가치와 낮아진 달러 가치로 인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서 소비하는 씀씀이가 커졌습니다. IMF외환 위기 직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에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과소비가 만연하였습니다. (관련기사: 1997/03/19_동아일보-"과소비 망국"-해도 무한다) 정부가 나서서 달러 대 원화의 환율을 떨어뜨리면서 우리나라 통화의 가치를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치보다 높게 만들어 국민들의 과소비를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 결과 전국민이 부담하여야 하였던 댓가는 혹독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때 저의 촉이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였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_2014. 6. 27. 참조) 고객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중 이러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머지 않아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가 우리나라 정부를 움직여 그런 무모한 움직임을 막을 능력은 없었습니다. 저 처럼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사람의 촉이 발동하여 보았자 별 쓸모가 없습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시장의 촉을 가지고 있어야 경제 전반에 무리가 가지 않고 순리대로 잘 꾸려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금융시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촉이 필요합니다. 촉이 좋으면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습니다. 혹시라도 촉이 둔한 사람은 이런 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더구나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은 스스로 촉이 없을 때에는 시장에 있는 여러 시장 참여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보다 많은 분들이 예리한 촉을 보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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