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우회상장- 2022. 7. 22.

jaykim1953 2022. 7. 22. 05:15

얼마 전 국내 경제전문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제목은 ‘美증시 스팩 짝짓기 취향 변했나’입니다. (관련기사: 美증시 스팩 짝짓기 취향 변했나_hankyung.com_2022. 7. 5.)

이 기사는 스팩(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에 관한 내용입니다. 스팩은 지난 2010년에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제도입니다. 미국의 경우 스팩의 존속 기간은 2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존속기간이 3년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다르기는 합니다. 스팩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업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 법인입니다. 일종의 페이퍼 컴패니(paper company)입니다. 위의 신문 기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지난 수년간 스팩의 주요 합병 대상 기업들은 신기술을 가진 스타트 업(start-up)에 가까운 기업들이었습니다. 기업을 시작한 지 오래지 않고 신기술의 시장 진입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적자를 기록하며 누적적자로 인하여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인수 합병하여 자금을 지원하고 기업 가치를 올려 투자금과 이익을 회수하려는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오히려 이러한 신기술의 스타트 업보다는 제조업 등 전통적인 산업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라 마땅한 투자업체를 찾지 못하여 초거대 스팩이 청산하였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Bill Ackman to wind up SPAC, return $4 billion to investors_cnbc.com_7/11/2022)

스팩은 전형적인 우회상장(back door listing) 방법을 사용하는 기업공개입니다. 흔히들 기업공개를 IPO라고 합니다. IPO란 Initial Public Offering의 약자로 최초 공모(公募)를 의미합니다. 스팩을 통한 기업공개는 IPO는 아니고 우회상장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는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의 경우 존속법인은 스팩이 되고 우회상장을 통하여 합병된 기업은 소멸되도록 하였으나 금년 초 관련 규정이 개정되어 합병된 기업이 존속법인으로 남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같이 스팩이 존속법인으로 남게 되면 소멸되는 기존 기업이 가지고 있던 각종 계약 관계에서 기술적인 부도(technical default, 금요일 모닝커피 2012. 10. 19. 참조)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존의 기업이 존속법인으로 남게 되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계약이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효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스팩을 통하여 우회상장한 기업의 숫자는 100여 개에 달합니다. 그러나 성공확률은 약 반에도 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관련기사: 11년간 스팩 합병 성공률 절반 못 미쳐…45곳은 상폐_eDaily_2021. 6. 2.) 스팩을 통하여 우회상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절반이 넘는 숫자의 기업들이 상장폐지가 되는 등 성공적으로 살아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회상장이 아닌 정면돌파를 택하여 IPO를 감행한 일부 초대형 기업들은 발행 후 IPO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체면을 구기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한화생명, 공모가 70% 밑으로_chosunbiz_2019. 9. 6.)

우리나라와 같은 기업환경에서는 대기업이 비상장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창업주가 사망하게 되면 유족들이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는데 상속세는 기업의 장부가치를 기준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고 세무 당국이 산정한 ‘공정한 시장 가치’(FMV, fair market value)로 평가하여 그에 대한 50~ 60%의 상속세를 부과합니다. 제 아무리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업 가치의 50~ 60%를 납부할 만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상속세 납부를 위하여 기업의 지분을 매각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비상장 기업의 경우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원매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가격을 산정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창업주가 살아 있을 때에 탈세를 하지도 않았고, 꼬박꼬박 세금을 착실히 냈음에도 기업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는 우리나라 상속세 제도에 대하여서는 이미 수없이 많은 기업들이 부당함을 토로하였고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입법권을 틀어쥐고 있는 위정자들은 끄떡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불합리한 제도인 줄 알면서도 그 제도 안에서 살아남을 방도를 강구하여야 합니다.

상속세 제도가 우리나라 기업의 상장과 공개를 압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하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끝까지 기업공개를 하지 않고 주식회사의 형태마저도 거부한 채 개인기업으로 남아 있었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하여 강제 헌납, 해산된 동명목재 상사가 바로 끝까지 개인기업의 형태를 유지하였던 회사입니다. 1970년대에는 수출도 잘 되었고 강석진 사장의 소득세도 랭킹 1, 2위를 달렸습니다.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여러 가지 상도 받고 수출 입국(輸出 立國)에 기여한 공을 높이 평가받았으나, 신군부가 권력을 잡고 나서 졸지에 부패 기업인으로 낙인 찍혀 전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각서에 서명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보면 주식회사의 형태로 기업이 공개된 회사는 국가가 나서서 그 회사의 대주주 지분을 빼앗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으나 개인 기업의 경우에는 오히려 기업주가 헌납 각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쉽게 재산을 빼앗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Conair Corporation이라는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한 회사가 비공개 기업입니다. 이 기업은 Leandro Rizzuto라는 창업주가 1959년에 설립하여 창업주 자신이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가 201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회사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나 주식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주식시장에 상장되지도 않았습니다. 창업주가 한 때 탈세 등의 혐의로 안 좋은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으나 두피 관리 제품, 미용 제품 생산 기업으로서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상속세 제도는 우리나라처럼 가혹(?) 하지 않아서인지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별 어려움이나 문제없이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Conair Corporation은 적어도 당분간은 기업공개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업공개의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상속세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환경이 주식이 상장된 기업에 더 유리합니다. 자금 조달을 위하여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상장 기업이 더 유리합니다. 자본시장에서의 인지도면에서 상장기업이 비상장기업보다 훨씬 우세합니다. 한동안 비상장 기업으로 남아 있던 생명보험회사들도 여러 곳이 상장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부 과격한 단체에서 비상장 생명보험사는 상품의 운영형태로 보아 주식회사보다는 오히려 상호회사(mutual company)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배당 상품은 전형적인 상호회사의 형태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상호회사가 주식회사로 전환하려면 기존의 내부 유보금을 보험계약자에게 분배하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거의 모든 보험회사가 ‘XX 생명 보험 주식회사’와 같이 법적인 상호(商號)를 주식회사라고 명기하였기에 주식회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식회사라 하더라도 IPO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일부 생보사는 상장 후에 즉시 지분을 매각할 것이 자명한 일부 주주들이 드러나 주식 공개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IPO 가격이 얼마가 되었든 IPO 후에 바로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 주가는 맥을 못 추고 하락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비 매도 물량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IPO가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IPO 후 가격이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주식의 공모에 참여하려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기업에게는 우회상장이 매력적일 것입니다. 자본 규모가 크지 않아 스팩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스팩을 통하여 우회 상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예비 매도 물량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 규모가 뒷받침되는 기업과의 M&A를 통하여 우회상장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때 함량 미달의 기업들이 성장 가능성만을 내세우며 기존 기업들과의 합병을 통하여 우회 상장하던 경우와는 달라야 합니다. M&A를 통하여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기업끼리 윈-윈 전략을 구축하면서 우회상장을 한다면 M&A의 효과를 더욱 높이면서 기업공개의 이득도 챙길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진정성 있는 IPO 전략의 대안으로 우회상장이 이용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