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제 2의 인생 경력- 2012. 4. 27.

jaykim1953 2012. 4. 27. 08:56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제가 미국 Los Angeles에 있는 Bank of America 남가주(South California) 본부의 외환 딜링 룸 (Foreign Exchange dealing room)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외환 딜링 룸에 Wayne Bissel 이라는 친구와 Henry Chan 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Wayne은 좋은 대학에서 MBA를 마쳤고 당시 30살이 아직 안 된 저보다 2~3살 아래의 백인이었고 갓 딜링 룸에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많지 않은 Swiss Franc 거래를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Henry 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은행에 취직하여 경력을 쌓은 뒤 딜링 룸으로 옮겨 그 당시 이미 딜링 룸 경력이 6~7년 되어서 주요 통화 가운데 하나인 영국 파운드화 거래를 담당하고 있었던 저보다 1살 위인 홍콩에서 온 중국계 이민자였습니다. 이 둘은 출신과 성장 배경이 다른 만큼이나 많은 차이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Wayne은 거의 항상 아침 5시 이전에 사무실에 도착하였습니다. Henry 6시가 조금 넘어서야 헐레벌떡 사무실에 뛰어듭니다. (미국의 서부에 있는 은행 딜링 룸은 출근 시간이 아침 6시입니다. 미국 서부의 아침 6시는 미국 동부- 뉴욕의 아침 9시이므로, 미국의 서부에 있는 은행 딜링 룸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침 6시 이전에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Wayne은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지난 밤에 있었던 전세계 금융 시장의 뉴스를 모두 읽어 내려가고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기사들을 스크랩하여 둡니다. Henry는 사무실에 들어오면 우선 브로커들에게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Wayne은 근무 시간에 별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거래를 합니다. Henry 는 브로커들과 농담을 하고 떠들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합니다.

Wayne은 점심 식사 때에 주로 패스트라미(훈제 소고기) 샌드위치와 페리에(Perrier)를 먹습니다. Henry는 중국식 비프 라이스, 치킨 라이스 혹은 각종 중국식 누들(국수)종류와 코카 콜라를 먹습니다. (딜링 룸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자리를 비울 수 없으므로 은행에서 점심을 제공합니다. 출근 시간이 아침 6시 이므로 미리 주문을 받아 놓았다가 오전 10 30분경에 배달하여 줍니다.)

Wayne은 소형 스포츠 카인 마즈다 (Mazda) Rx-7을 운전하였고, Henry 는 패밀리 세단인 퓌조 (Peugeot) 604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퓌조 604 1980년 경에 우리나라 기아자동차에서 수입하여 조립 판매하였던 차종입니다.)

Wayne은 딜링 룸 책임자로부터 조금 더 나은 실적을 내기 위하여 분발해 줄 것을 자주 요청 받았습니다. Henry는 성과가 좋아서 딜링 룸 직원들에게 최고의 실적을 낸 직원으로 광고되면서 심심치 않게 전 직원의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 다른 면이 많았고, 그 당시에 보기에는 Henry 는 성공적이 커리어를 쌓아 나중에 훌륭한 은행가가 될 것으로 보였고, Wayne은 머지 않아 은행을 떠나야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2년쯤 전에 제가 모처럼 미국의 서부를 방문하여서 오래 전 친구들의 소식을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Wayne은 어느 작은 지방 은행 (local bank)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만나 보지는 못 하였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제가 떠난 이후로도 수 년간 계속하여 실적이 좋지 않아 결국 Bank of America를 떠났고, (제가 들은 표현은 ‘asked to leave’ 였습니다) 다른 은행에서 받아 주는 곳이 없어 규모가 작은 은행에서 operations 분야의 일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직장을 옮겨 지금의 은행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Henry는 한창 잘 나갈 때에는 몇몇 은행에 스카우트 되어 돈도 잘 벌고 좋은 시절을 즐겼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순발력도 떨어지고 판단력도 예전만 못해지는 것을 느껴 은행을 그만두고 LA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Henry는 저와 일할 때에 이미 이혼을 한 상태였으며, 그 후 지금의 부인- Lanny-와 재혼하여 딸, 아들 낳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Lanny 30년 전에는 Bank of America에서 외환 딜링을 하고 있었으나 Henry와 결혼 후 Union Bank로 옮겨 지금까지 Union Bank에서 Risk Management 분야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만난 Lanny Henry는 반갑게 저와 포옹을 하였으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Wayne Henry가 어떤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봉급 생활자들의 인생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우리나라에는 그 동안 제2의 인생 경력을 갖는 것을 어색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의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직장에서도 조기퇴직, 명예퇴직이 낯 설지 않게 되었고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직장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Wayne 처럼 자신이 일하던 분야에서 조금 눈 높이를 낮추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 Henry처럼 전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시작한 경력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일생을 길게 보고 다양한 경력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갈 수 있는 미국과 같은 사회 분위기가 부럽게 느껴집니다.

1998 IMF구제금융의 위기 속에서 당시 제일은행이 구조조정을 위하여 직원들을 내보낼 때에 만들어진 일명 눈물의 비디오’ (제일은행_눈물의_비디오)가 있습니다. 이 비디오는 약 25분 여 동안 지속되는 조금은 긴 내용입니다. 그 당시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한꺼번에 많은 직원을 내보낸다는 것에 익숙치 않았지만,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던 제일은행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였던 직원들이 떠나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이야기가 이 비디오의 내용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 당시 제일은행을 떠났던 많은 직원들이 제2의 인생 경력을 새로이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 제2의 경력에 대한 인식이 생긴 첫 사례가 아닌가 보여집니다.

이제는 1998년 당시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제2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제2의 인생 경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이따금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제일은행 눈물의 비디오에 등장하는 이상억 차장이라는 분은 1998년 제일은행을 떠난 2년 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상억 차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때문에 한 동안 이 눈물의 비디오가 더욱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들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이제는 1998년처럼 떠나가는 사람들을 눈물로 작별하는 아쉬움보다는 그들이 새롭게 시작할 제2의 인생 경력을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해피 엔딩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설사 어려움이 닥치고 힘든 시간을 맞닥뜨리더라도 이를 이겨내고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특히 금융계는 전 세계적으로 평균 근속년수가 상대적으로 짧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계의 조기 퇴직 바람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관련기사: 서울경제_2011.10.25) 현재의 직장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지금의 일자리에서 떠나게 되더라도 조금도 실망하지 말고 제2의 인생 경력을 설계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기 퇴직을 하였다고 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안이 프랜차이즈 창업, 또는 시, , 구청 등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취업 알선 (관련기사: 실버취업-2012.4.25)이 고작입니다.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에 의지하기에는 아직 이른 조기 퇴직자들에게 새로운 제2의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다양하게 제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재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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