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투자의 이론과 실제- 2012. 5. 4.

jaykim1953 2012. 5. 4. 06:11

저는 지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와 있습니다. 지난 5 1일 서울을 떠나 이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가 서울을 떠나는 날 아침에 마지막으로 받아 본 신문에는 별로 즐겁지 않은 뉴스가 실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사학 명문대학 이사장이 사임한다는 뉴스가 있었고, 사퇴 이유는 재단 적립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금액의 손실이 발생하여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관련기사: 한경_2012-5-1_고려대)

 

기사 내용을 읽다 보니 아주 낯 익은 단어와 용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금융 파생상품에 투자하였다는 것과, 투자한 파생상품도 제가 바로 2 주전에 금요일 모닝커피에서 언급하였던 ELS였다는 것입니다. ELS는 대부분 옵션 거래를 수반하게 되고, 옵션 거래는 단순히 매입하거나 매각한 다음 만기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재매각 또는 재매입을 통하여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따른 매매 전략을 수행할 만한 수준의 경험과 지식, 능력이 부족하다면 무리한 옵션 거래 또는 ELS 거래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의 상황을 제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였으나, 대학재단의 기금 운용을 담당하고 계신 분들은 이러한 시장 경험과 운용에 필요한 지식, 능력면에서 시장의 전문가들보다는 부족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리스크 관리와 수익 모델이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시장의 전문 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대학에 경영학 교수들도 많이 있고 그 중에는 재무 관리, 특별히 파생상품을 전공하신 분들도 적지 않았을텐데 왜 그런 분들의 조언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설사 파생상품을 전공한 교수가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투자를 담당한 분과 파생상품을 전공한 교수 사이에 조직 내에서의 책임과 업무 영역에 관한 갈등의 소지가 있으므로 파생상품 전공교수가 개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에, 파생상품을 전공한 교수라고 하더라도 실제 시장에서 파생상품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리는 것은 연구를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파생상품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한 사람들이 실전에서 실패하는 사례를 저는 여러 번 목격하였습니다. 그 실례를 두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 1990년 대에 국내 S 증권사에 임원 L씨가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L씨는 미국에서 재무 분야를 전공하여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의 논문은 파생상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걸음마 단계를 막 벗어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파생금융 상품 시장에서 L씨는 자신에 찬 태도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신상품과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을 거침 없이 거래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외환 시장은 과거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우며 전에 없이 큰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L씨가 거래하였던 파생상품들은 S 증권사에게 거래 금액보다도 더 큰 금액의 손실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S 증권사는 거래 상대 은행에게 ‘위험 고지 의무 태만’이라는 클레임을 걸어 법원에 제소하였고, 결국 거래 상대 은행과 합의를 이끌어내 손실 금액 가운데 상당 부분을 돌려 받기는 하였으나 S 증권사는 회사의 존립이 위태해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고, L씨는 S 증권사로부터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S 증권사에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진두지휘하던 L씨의 퇴장하는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S 증권사에서 어느 누구의 조언도 귀 담아 듣지 않으며 파생상품으로 박사학위를 딴 자신보다 파생상품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은 결국 그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의 사례는 K 금융기관의 임원 Y씨의 이야기입니다. Y씨도 미국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여 재무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논문도 금융 파생상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Y씨도 재무에 관한 확고한 신념과 그 만의 뚜렷한 소신이 있었습니다. Y씨는 자신이 새롭게 맡게 된 투자분야에서 자신의 신념과 소신에 바탕을 두고 금융상품을 팔고 사기를 지시하였으며, Y씨에게 보고하는 위치에 있던 부하 직원들은 Y씨의 시장에 대한 예상과 관점에 대하여 일체의 반론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Y씨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많은 거래를 하였으나 결국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의 손실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Y씨가 K사의 최고 경영진에게 임원회의석상에서 밝힌 변론과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만약 내(Y)가 지금까지 해왔던 거래들을 하지 않았었더라면 더 큰 금액의 손실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Y)가 여러 가지 거래를 하였기 때문에 그 나마 손실을 지금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앞으로 시장이 출렁이면 활발히 매매를 일으켜 그 동안의 손실을 만회하도록 할 것이며, 시장이 계속 움직여 손실이 만회되면 당분간 거래를 중단하도록 할 것이다>

 

Y씨의 이러한 변명과 계획은 낯 뜨겁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Y씨가 하였던 거래를 하나도 하지 않았더라면 K사에는 아무런 포지션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포지션이 없으면 손익은 발생하지 않으므로, 손실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Y씨는 다른 사람이 하였으면 자신보다도 일을 더 그르쳤을 것이라는 잘못된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Y씨가 밝힌 계획도 그의 사고 수준을 의심케 합니다. 그 동안 이미 시장이 출렁일 때에 계속 거래를 하면서 손실을 일으켰는데 새삼스럽게 앞으로 시장이 움직일 때에 또 다시 활발한 거래로 손실이 더 커지면 어찌할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장이 유리하게 움직여 손실이 만회되면 거래를 중지한다는 것은 Stop loss(손절매: 損切賣)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손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stop loss를 실행하고 더 이상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손실이 계속 더 커지게 되면 K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도 있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 시장이 K사에게 유리하게 움직여 K사의 손실은 많이 줄어들었고, Y씨는 직책이 바뀌어 투자 분야의 일에서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재무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파생상품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파생상품을 거래하고 투자하는 것은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시장은 생각하고 연구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서 시시각각으로 움직입니다. 시장의 움직임은 과거의 공식에 대입한 수치의 범위를 벗어나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의 리스크는 재무공학의 공식 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금융시장만큼 [지식+경험+능력]이 중요시되는 곳도 많지 않습니다. 지나간 사례를 연구하여 새로운 공식, 새로운 움직임을 연구하고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민첩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경험도 필요로 하고, 연구와 공부만으로는 쉽게 길러지지 않습니다.

 

금융 시장에서 회자되는 격언 가운데, Good traders are not made, but must be bor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트레이더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후천적) 공부만으로는 시장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신속 정확한 (선천적) 판단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것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겪었던 아찔한 경험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제 고객 기업 가운데 한 곳의 이야기입니다. 그 기업의 오너께서 새로운 투자 담당 임원 한 분을 영입하였는데 실적이 좋아서 아주 흡족해 하시면서 저에게 그 임원을 만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투자 담당 임원을 만나고 난 다음 제가 그 회사 오너분에게 드린 말씀입니다. “회장님 그 임원 자기의 동물적 감각에 많은 것을 의존하여 의사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융 시장은 동물적인 것이 통하는 곳이 아니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판단이 필요한 곳입니다.” 이론적인 배경이 전혀 없이 시장에 대한 감()에만 의존하여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최경주 선수, 박찬호 선수, 박세리 선수도 타고난 재능만으로 훌륭한 선수가 된 것은 아니고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뒷받침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타고난 재능도 없는 사람이 훈련과 노력만으로 훌륭한 운동선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육체적인 스포츠도 그러할 진데 두뇌를 필요로 하는 금융, 투자 분야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타고난 시장 감각은 기본으로 필요하고 그 위에 많은 지식과 경험이 쌓여져야 합니다. 단순히 타고난 재능만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 공부만으로 금융, 투자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타고난 능력에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사람들이 앞으로 금융 분야에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재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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