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바둑 명언- 2022. 10. 28.

jaykim1953 2022. 10. 28. 06:37

바둑은 두뇌 스포츠라고 합니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인지 바둑을 잘 두지 못합니다. 군대 제대 말년에 심심하여서 바둑 책을 조금 보면서 배운 실력이 10급 정도이니 어디에 가서 바둑을 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형편은 못 됩니다. 그래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바둑 관련 이야기는 제법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바둑에 관련된 명언(名言) 가운데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빈삼각을 두지 마라’는 말이 있고, 또 역설적으로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고수(高手)’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말을 들으면 빈삼각을 두어야 하는 것인지, 또는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헛갈립니다. 바둑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 명언을 음미하면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바둑을 사실 잘 두지는 못하나, 이 두 가지 명언들의 서로 상충되는 듯한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원칙적으로 빈삼각은 두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빈삼각을 두게 되면 다음 행보가 둔해지고 빈삼각으로 인하여 내 말의 모양새는 안 좋아지고 반대로 상대방의 모양새가 좋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고수라는 말은; 빈삼각으로 인한 좋지 않은 모양을 역으로 이용하여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라면 빈삼각을 두어도 어려움을 자초하지 않고 바둑을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명언들을 곰곰 되새겨 보면 바둑에서 빈삼각을 두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 가는 데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으나 그 원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면 원칙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격언으로 들립니다.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원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안다면 원칙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변칙을 사용하려면 그 분야에서 고수(高手)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역으로 변칙을 사용할 줄 알면 고수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을 금융에 비추어 보겠습니다. 금융에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만기 일치(一致)의 원칙, 영어로 maturity match discipline 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단기 유동 자산 운용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은 단기 유동 부채 자금으로 조달하고, 장기 고정 자산을 위한 자금은 장기 고정 부채로 조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기업이 문을 닫게 되어 팔려 나가게 된 사례가 지난 1997년 IMF 사태 때 한보철강의 경우입니다. 그 당시 뉴스를 종합해 보면 한보 그룹은 사세를 확장해 가면서 1992년 한보 철강의 당진 제철 공장을 착공합니다. 그리고 그에 소요되는 자원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당좌 대월로 충당합니다. (관련기사: 한보청문회, 産銀 92년 12월 대출 의혹투성이_donga.com_1997. 4. 18.) 제철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최소한 수 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이러한 장기 프로젝트를 하루 만기인 당좌대월로 충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장기 자산을 도입하기 위한 자금을 단기로 조달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 자산과 매칭되는 장기 자금의 도입이 약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실제 자금 지원이 늦어지는 경우, 당장의 유동성 부족을 충당하기 위하여 장기 자금 지원이 실행되기까지 임시로 단기 자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브리지 파이낸싱(bridge financing)이라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장기 자산은 장기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여야 하나, 자금 집행 시기가 어긋나는 경우 자금의 수요와 공급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의 간격을 메꾸기 위하여 단기간 브리지 파이낸싱을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빈삼각을 두어서는 안 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고수가 되는 사례로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최근에 국내 채권 시장에서 일어난 레고랜드 채권의 부도 사태를 들여다 보면 금융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관련기사: 레고랜드 ABCP 뭐길래…'돈맥경화' 대책, 50조원도 모자란다?_joongang.co.kr_2022. 10. 25.)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하였으나 지급을 거절하여 부도가 났다고 하는 레고랜드 채권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채권이 아니고 기업어음- CP (Commercial Paper)입니다. 기업어음은 최장 90일 동안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상품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CP는 그냥 보통 CP가 아닌 ABCP입니다.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입니다. Asset Backed 라 함은 자산을 바탕으로 발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ABCP의 바탕이 되는 자산은 금융사들이 레고랜드 건설에 지원하여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입니다. PF를 바탕으로 ABCP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고랜드의 건설은 90일 만에 끝나지 않습니다. 수 년이 소요되는 레고랜드 건설기간 동안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바탕으로 90일 짜리 자금을 조달하는 ABCP를 발행한 것입니다. 전형적인 만기불일치(Maturity mismatch)입니다. 아마도 그 동안에는 90일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연장 발행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계속 조달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강원도 지방자치 단체의 장이 바뀌면서 새로운 지사가 이 ABCP의 보증을 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렇게 장기 자산을 바탕으로 발행한 90일 짜리 단기 기업어음은 투자자가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방자치 단체가 지급 보증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기 일치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ABCP를 발행하려면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을 충분히 감당하고 이러한 변칙을 사용할 능력이 있는 고수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원칙은 지키지 않았으나 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칙을 지키지 않은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레고랜드 뿐 아니라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금융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 고지식하고 답답한 늙은이 취급을 당합니다. 요즘 그런 케케묵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며 원칙을 양보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마음은 편치 않지만 원칙을 고집하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 주변은 이미 원칙이 무너진, 원칙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금융 분야에도 금융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켜본 바로는 원칙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원칙을 모르는 사람들이 목소리는 더 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원칙은 무시되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레고랜드 ABCP건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강하게 의심이 듭니다.
세상 일을 하다보면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은 지켜져야 하고, 지키려고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원칙을 이해하고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는 원칙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이 주류가 되어 원칙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예전에 TV에서 바둑을 해설하던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바둑의 정석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둑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대국자는 서로 한 수 씩 번갈아 가면서 두어야 하지, 한 사람이 두 수를 두어서는 바둑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빈삼각은 안 두는 것이 좋겠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빈삼각을 둘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한 사람이 두 수를 연이어 둘 수는 없습니다
금융에서도 꼭 지켜야할 원칙들은 반드시 지켜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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