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2023. 4. 28.

jaykim1953 2023. 4. 28. 06:17

어렸을 때 저의 선친께서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어느 구두쇠의 집으로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사랑채 바깥에서 구두쇠 주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인양비백입니다.” ‘인양비백’이란 한자로 ‘人良 比白’을 말하며 앞의 두 글자와 뒤의 두 글자를 합하여 글자를 만들면 ‘食 皆’로 ‘밥 식, 다할 개’입니다. 즉, 밥이 다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구두쇠 주인은 친구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아까웠는지 “월월산산 후에”라고 말하였습니다. ‘월월산산’이란 한자로 ‘月月 山山’이며 이 또한 앞의 두 글자와 뒤의 두 글자를 합하여 글자를 만들면 ‘朋 出’로 ‘벗 붕, 날 출’입니다. 즉, 친구가 나간 후에 밥을 먹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구두쇠의 친구는 언짢은 표정으로 “정구죽천일세”라며 혀를 끌끌 차고 방을 나갔다고 합니다. ‘정구죽천’이란 한자로 ‘丁口 竹天’ 이며 이 또한 앞의 두 글자와 뒤의 두 글자를 합하여 글자를 만들면 ‘可 笑’로 ‘가할 가, 웃을 소’입니다. 즉, ‘가소롭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글자를 쪼개어 읽는 것을 파자(破字)라고 합니다. 글자를 부수었다는 의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든다면 강(姜)씨 성을 팔-왕-녀 (八-王-女), 이(李)씨 성을 십-팔-자 (十-八-子)와 라고 글자를 쪼개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연산군을 축출하고 왕권을 차지한 중종이 기묘사화를 통하여 조광조(趙光祖)를 제거할 때에 소위 ‘주초위왕’ (走肖爲王)이라는 말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초위왕이란 ‘走’와 ‘肖”를 합하면 ‘趙’ 자가 되므로, 즉 ‘趙’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조광조가 왕위를 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광조가 왕이 되려는 역모를 꾸몄다고 수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월월산산’과 연관된 이야기를 더 해 보겠습니다. 사실 우리 말에는 ‘붕’이라는 말보다는 벗 우(友)자가 더 익숙합니다. 친구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붕우유신’ (朋友有信)이라는 말에는 ‘붕우’라는 단어에 ‘붕’이 쓰이나 그 밖의 단어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 글자입니다. 그래도 한자어로 쓰인 문장에는 꽤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논어에 있는 문장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도 ‘붕’자가 쓰입니다. 이 글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뒤에 따르는 댓귀절입니다. 제대로 읽자면 ‘재왈(子曰)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불역낙호아’라고 읽어야 합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저와 시간을 맞춰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멀리 포항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오랫 만에 만나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사진도 여러 장을 찍었습니다. 포항에 사는 친구가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그의 블로그에 함께 찍은 사진과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였습니다. 오랫 만에 먼 곳에서 찾아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나니 정말로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그 친구뿐 아니라 사실 저도 많이 즐거웠습니다. 포항을 찾아갔던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친구와 저, 그리고 포항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50년이 넘었지만 다행히도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당일 치기로 포항을 찾아갈 만한 여유가 있었고, 또 포항에 사는 친구들도 자기들을 찾아온 친구들을 반기며 데리고 다니며 함께 산책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어린 시절 학교 다니던 때에는 우스갯 소리로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불역호아’라고도 하였습니다. 친구가 있어서 먼 곳에서 찾아 왔으니 그 또한 (돈이 없으니) 하지 아니한가’라는 것입니다. 친구가 찾아와도 반겨줄 경제적 형편이 안 된다면 그 또한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와 줘서 즐겁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기에는 경제적인 현실이 딱한 상황을 만들고 맙니다. 실제로 주변의 친구들 가운데에는 경제적인 여유를 갖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서울 생활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 지방으로 내려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 온다면 참으로 딱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젊은 시절 한창 왕성하게 일하던 시절에는 친구가 찾아와도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두들 은퇴하고 시간적 여유는 있는데 불행히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친구가 찾아오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은퇴한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을 어찌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나이는 들었고 경제활동을 하기에는 많이 늦었습니다. 그러기에 젊었을 때에 노후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합니다. 노후대비는 일찍 시작할 수록 좋습니다.
저의 칼럼에서는 여러 차례 노후대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었습니다. 이자율이 연 3%일 때에 월 50만 원씩을 20년간 저축하면 원리금 합계가 1억 6천만 원이 넘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노후대비 저축- 2014. 4. 4. 참조) 30년을 저축하면 2억 9천만 원이 넘습니다. 만약 월 2백만 원씩 30년을 저축한다면 30년 후에는 11억 6천5백만 원이 됩니다. 이 정도 노후대비를 한다면 30년 후에 은퇴한 다음 친구가 찾아와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경제력이 될 것입니다.
노후 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단순히 경제력에 의하여서만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경제력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음을 느끼고 무엇인가 수익을 창출하려고 주식 투자를 한다던가 하는 일은 자칫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저의 칼럼에서 썼던 글을 한 귀절 인용하겠습니다.
주어진 은퇴 자산이 넉넉지 않으면 부족한 상황에서 생활 규모를 줄이고 절약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허황되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새로운 투자를 시도하는 일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은퇴자들의 지혜로운 재산관리는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는 노력보다는 남은 여생을 보내면서 주어진 은퇴 자산을 아끼고 절약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행복수명- 2017. 10. 20. 참조)
은퇴후 경제적인 여유가 부족하다면 그 때 가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시도보다는 있는 가운데 아끼고 절약하여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할 것입니다. 혹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 하더라도 분수에 넘치게 대접하려 하기보다는 분수에 맞게 조촐하게 대접하고 마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하여 더욱 즐겁게 될 것입니다.
은퇴후의 노후대비는 일찌기 시작하고 잘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은퇴할 때까지 만족스러운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아끼고 절약하는 생활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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