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채무- 2023. 6. 2.

며칠 전 국내 언론에 나온 기사 가운데 가계 부채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세계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1위인 나라는?-edaily.co.kr-2023. 5. 29.)

이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GDP 대비 102.2%로 세계 주요 34개 국가 가운데 금년 1/4분기 기준으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가계 부채의 총 합계가 GDP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가계 부채가 GDP 대비 100%를 넘는다는 것은 곧 1년간 국내에서의 생산 금액을 모두 쏟아 부어도 가계 부채를 다 갚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는 사실 누구도 정확하게 판단하여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면, 가계에서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고 미리 땡겨 쓴 금액이 우리나라의 1 년간 국내 총생산 금액보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가계 부채가 1년 안에 모두 상환하여야 하는 부채라면 매우 심각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계 부채라는 것이 주택 모기지라던가 여러 해에 걸쳐서 상환되는 장기 부채도 있으므로 1년이라는 단기간에 모두 상환하여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 1년 간의 국내 총생산을 다 동원하여도 상환할 수 없는 가계 부채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당장 커다란 위기를 촉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계 부채가 모두 1년 안에 상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기 의식을 갖는 데에는 보다 정확한 상황 인식이 필요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가계 부채는 생산성을 창출하기 위한 부채가 아니라는 점이 나라 전체의 경제 운용에 부담이 되기는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부채는 기업의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 혹은 운영 자금으로 쓰이므로 기업 활동에서 창출된 현금으로 기업 부채를 상환해 나갑니다. 이 경우 기업의 생산성이 기업 부채의 이자율보다 높으면 부채를 상환해 나가는 데에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계 부채는 경우가 조금 다릅니다. 가계 부채의 상환 능력은 국가 GDP라던가 이자율 등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각 개인의 부채 상환 능력이 부채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가계 부채의 상환 능력을 판단하는 데에는 채무자 재산의 담보 능력이라던가 가계의 수입(收入) 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가계 부채와 GDP의 비교는 조금은 설득력이 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GDP를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가 채무자인 국가 채무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데에 적합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4.1%입니다. (*주: 위 기사 참조) 그리고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국가채무 중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는 642조1천억원(62.1%), 대응 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는 391조3천억원(37.9%)이라고 합니다. 국가자산은 총 2천833조6천억원, 부채는 총 2천326조원,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507조6천억원이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감사원, 결산보고서 국회 제출…국가채무 1천조원 돌파-yna.co.kr- 2023. 5. 31.) 국가 채무가 GDP 대비 44.1% 라는 것은 과거의 우리나라 재정 운용 기준으로 볼 때에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더구나 최근 수년간 국가 채무의 증가가 급격히 이루어진 점과 재정 운용의 원칙이 무분별하였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관련기사: 9년 뒤 국채 78.9% 예상···文 '40% 논란' 이재명이 불붙이나-joongang.co.kr-2021. 11. 06.) 이 기사에 따르면, 정권이 바뀌지 않았었다면 2030년에는 GDP 대비 78.9%에 달하는 국가 채무가 발생하게 되었으리라고 합니다. 전 정부의 집권층이 야당이었던 시절에는 국가 채무가 GDP 대비 40%를 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집권하자 대뜸 ‘국가 부채 비율이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공무원들을 질타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국가 채무 비율은 GDP 대비 2017년에는 36%로 시작하여 2018년 35.9%로 잠시 낮아지는 듯하였으나, 그 후 37.6%(2019년)→43.8%(2020년)→47.3%(2021년)로 빠르게 상승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정권이 바뀐 후 지난 해 말 GDP대비 국가 채무를 44.1%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가 채무를 GDP의 몇 퍼센트로 운영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경우에는 국가 채무가 GDP 대비 200%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국채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거래가 잘 되고 있으며 일본의 신용도에 대하여 크게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도 거의 없습니다. 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가 잘 거래되지도 않을 뿐 더러 그 동안 국제 자본시장에 이름을 알린 역사도 상대적으로 매우 짧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국내 자본시장은 일본이나 미국의 자본시장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아주 작습니다. 그러기에 국가 채무의 크기를 단순히 GDP 대비 몇 퍼센트로 유지하는 것이 적정한가를 논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가 채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예를 보면, 국제 자본시장에서 거의 무한대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표현도 듣고 있음에도 국가 부채 한도를 증액하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합니다. 미국의 국채 발행 한도 증액은 정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경제, 사회적인 문제와 국제 자본시장의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기에 더욱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관련기사: 美 국가부채 한도 합의안, 하원 운영위 통과-dt.co.kr-2023. 5. 31.) 미국에 비하면 규모는 작다 하더라도 정부 재정 운용에 위험 요소들이 더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에 더욱 더 신중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보다 경제와 재정의 크기가 더 큰 중국의 경우 국가 채무는 GDP 대비 38%에 불과합니다.그럼에도 국가 채무의 규모가 전반적인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中경제 누르는 '3중고'…"부채증가, 소비정체, 서방과 관계악화"-yna.co.kr- 2023. 5. 31.)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적인 환경이 항상 우리에게 우호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주변 국가들이 순식간에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에 좀 더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권에서는 갖은 핑계를 찾아서 포퓰리즘을 지향하는 확장 재정을 노리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박광온 “경제적 어려움에 서민들 불안…당장 추경 논의하자” -hani.co.kr- 2023. 5. 30.) 이미 짜여진 예산으로도 모자라 선거를 앞두고 선심 행정을 유도하는 정치권의 확장 재정 유혹으로부터 나라의 곳간을 지키는 건전한 정부의 재정 운용이 절실합니다. 민간 부문의 가계 채무, 기업 채무를 모니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라 전체가 부채에 휩싸여 모든 생산성이 부채의 원리금 상환에 쓰이게 되는 것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으로 인한 국가 채무의 증가는 더욱 단단히 감시하고 제대로 운영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선거 표몰이를 위한 선심성 재정 운용으로 국가 채무를 늘리는 어리석음은 지나간 몇 해 동안 어설프게 "재정 쌓아두면 썩는다"며 국가 재정을 파탄 냈던 것으로 충분합니다. (관련기사: 고민정, 재정 쌓아두면 썩는다-ichannela.com- 2019. 11. 12.) 더 이상 국가 재정을 어렵게 하는 어리석음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과 감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