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금융 사고- 2023. 9. 22.

jaykim1953 2023. 9. 22. 05:55

지난 수요일 국내 언론에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습니다. 국내 금융기관의 한 직원이 무려 3천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의 돈을 횡령하였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역대 최대 횡령사고'…경남은행 PF 횡령액 3천억원 육박-yna.co.kr- 2023. 9. 20.) 이 직원이 해당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한 것이 2009년이었다고 하니 거의 15년 동안 일어났던 횡령 사건이 그 동안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최근 감사를 통하여 드러난 것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은행 자체 내부에서는 지난 4월에 이 사건을 인지하였고 자체 감사를 통하여 사건을 파악하고 금융감독원에 보고하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자체 감사에서는 피해액이 5백억 원대라고 파악하였으나 이번 금융감독원 감사에서 3천억 원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의 감사 결과를 보면 이 직원이 횡령한 총액은 3천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금액을 보전하였고 실제 횡령 금액은 5백억 여 원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각은 혹시라도 금융기관의 손실 금액이 5백억 원인데 금융감독원이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총 횡령금액을 3천억 원으로 부풀려 발표한 것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본다면 이 직원의 횡령 금액은 3천억 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설사 2천5백억 원을 되돌려 놓았다 하더라도 이 직원이 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착취해 간 돈의 금액은 3천억 원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 금융기관의 관리 시스템이 발견하지 못한 횡령 금액도 3천억 원이 맞습니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작은 돈이라 하더라도 횡령의 의지가 있었다고 하면 이는 금융기관의 신용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행위이므로 엄단하여야 할 사안입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도둑은 큰 도둑으로 바뀌어 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의 시각으로 보면 바늘 도둑도 소 도둑과 마찬가지로 다 ‘도둑’입니다. 도둑은 금융기관에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도둑은 금융기관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제가 아주 초년병 시절에 Bank of America서울 지점에서 들었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1970년대 초반 Bank of America의 창구에는 주로 남자들이 텔러(teller)로 근무하였습니다. K는 텔러로 근무하는 직원이었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일을 잘하였으며, 사교성도 좋아서 직원들과 가깝게 잘 지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었습니다. 그의 근무 성적도 좋았고 고객들로부터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구 마감 시간이었습니다. K는 그날의 거래를 마감하며 자신의 캐쉬 캔(cash can, 주: 텔러들이 고객과의 거래를 위하여 현찰을 담아서 보관하는 통, 보통 업무를 시작할 때에 이 캐쉬 캔을 열고 업무를 마감하면 잔고를 맞춘 다음 캐쉬 캔을 잠그고 금고에 보관합니다.)에 3천 원이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당시 짜장면 한 그릇에 300- 500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의 돈 가치로 치면 적어도 8만- 10만원 정도는 되는 돈이었습니다. K는 몇 번을 다시 헤아려 보았지만 3천 원이 비는 것이었습니다. K는 즉시 자신의 상급자인 창구 담당 과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감사 파트의 직원이 와서 현금 실사와 거래 내역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감사 파트의 직원이 캐쉬 캔 밑 바닥에 깔려 있는 종이 조각 한 장을 발견하고 집어 들어 보았습니다. 그 뒷면에는 ‘IOU ₩ 3,000’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감사 파트 직원은 그 종이를 들어 K에게 보여주며 이 종이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K의 머리에 퍼뜩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날은 월말이어서 해외에서 송금 들어온 수표를 들고 환전하러 오는 고객들이 유난히 많았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창구가 붐비고 K도 무척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채 되기 전에 K의 친구가 창구로 찾아왔습니다. 다급한 말투로 K에게 급히 3천 원만 돈을 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한창 바쁘고 정신이 없던 K는 친구를 어서 돌려보낼 요량으로 자신의 캐쉬 캔에서 3천 원을 꺼내어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3천 원을 잊지 않고 캐쉬 캔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종이 조각을 한 장 들어서 ‘‘IOU ₩ 3,000’이라고 쓰고 캐쉬 캔에 던져 놓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급히 종이를 던져 넣다가 종이 조각이 뒤집혀 지면서 ‘‘IOU ₩ 3,000’이라고 쓰인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감하면서 K는 오전에 친구가 다녀간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현금의 잔액을 맞추다가 3천 원이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남겨 놓은 ‘IOU ₩ 3,000’이 보였더라면 그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뒤집혀 있는 ‘IOU ₩ 3,000’을 발견하지 못한 K는 그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지 못하였고, 감사 파트의 직원에게 ‘IOU ₩ 3,000’이라는 쪽지를 들키고 만 것입니다.
K는 감사 파트의 직원이 ‘IOU ₩ 3,000’ 쪽지를 보여주며 물어볼 때에서야 그의 친구가 왔었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는 감사 파트의 직원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자신이 그 돈을 다시 캐쉬 캔에 돌려 놓으려고 하였으나 깜박 잊었다고 자백하였습니다.
이 상황은 서울지점 오퍼레이션(operation) 담당 책임자 미국인에게 보고되었고, K는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캐쉬 캔 안의 돈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은 금액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matter of discipline)라는 것입니다. 원칙이 무너진 사람에게 금융기관에서 맡길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금융기관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금액의 크고 작음은 당사자가 형사 처벌을 받을 정도인가를 판단하는 데에 필요할 수는 있으나, 그가 금융기관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는 금액의 크고 작음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K의 입장에서 보면 가혹한 결정으로 보였으나 K는 그날로 바로 사직서를 쓰고 은행을 떠났습니다. 그 후 K는 다른 외국계 회사에서 총무, 차량 운행 등의 일을 맡아서 근무하였다고 합니다. K로서는 항변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캐쉬 캔의 돈을 정말로 횡령할 목적이었다면 어설프게 ‘IOU ₩ 3,000’ 이라고 쓴 쪽지를 캐쉬 캔에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IOU ₩ 3,000’ 이라는 쪽지가 나온 것은 K가 횡령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K는 횡령의 의사는 없었다 할지라도 캐쉬 캔 안에 있는 돈과 자신의 주머니 돈을 잠시나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행동은 금융기관의 직원이 하여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금융기관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당시 Bank of America가 내세운 원칙이었습니다.
금융기관 안에는 항상 돈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금융기관에서는 얼마든지 횡령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직원은 금융기관의 돈과 자신의 돈을 엄격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원이 금융기관의 돈에 유혹을 느끼지 못하도록 엄격한 관리 시스템이 잡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3천억 원의 횡령이 지난 15년 동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금융기관의 관리 시스템이 그만큼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아예 관리 시스템이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도 글로벌 파이낸셜 금융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직원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 감독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