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분야별 전문가- 2023. 10. 13.

jaykim1953 2023. 10. 13. 06:34

어제 아침 국내 일간지에 실린 경제 관련 기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금리와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관한 내용입니다. (관련기사: , 고물가에 재정적자도 겹쳐 국채금리 고공행진 -chosun.com- 2023. 10. 12.) 기사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신 S박사와의 인터뷰입니다. 분은 연세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일종의 조기 유학생입니다.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조기 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는 미국 행정부의 대통령 경제 자문 기구에서 일하기도 하였고 현재 미국의 4 은행 가운데 곳인 웰스 파고 (Wells Fargo)은행에서 수석 에코노미스트(Economist)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웰스 파고 은행은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서부 지역에 () 축적하기 시작하고, 동부 지역과 금전, 서류, 귀중품 등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이를 대행하던 사업으로 시작한 은행입니다. 1800년대 초에 세워져서 지금까지 200 년을 이어온 역사 깊은 은행입니다. 그리고 서부 영화에서 역마차가 강도들에게 털리는 장면들을 조금 유심히 살펴보면 마차 위에 Wells Fargo Co. 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있습니다. 당시에 강도들에게 털리던 역마차가 바로 웰스 파고 은행이 송금 서비스를 하는 데에 사용하던 마차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전신환이라던가 계좌 이체 등의 방법이 없었으므로 송금을 하려면 현금을 보내는 방법 밖에는 없었고, 웰스 파고 역마차에는 현금이 실려 있다는 것이 뻔히 알려져 있으니 강도들의 타겟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역경을 겪고 각종 사고와 리스크를 무릅쓰고 웰스파고 은행은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웰스파고 은행은 JP 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씨티 은행과 더불어 미국의 4 은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웰스 파고 은행은 미국의 10 은행에 겨우 들어갔으며, 이전에는 10 은행에 조차도 끼지 못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성장하고 리스크 관리를 성공적으로 하여 사고 없이 자산과 수익을 지키면서 드디어는 미국의 4 은행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은행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에코노미스트로 있었던 S 박사는 2007 LA 있는 한인 커뮤니티 은행인 한미은행의 행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에코노미스트로서 웰스파고 은행에서 EVP까지 경력을 관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미은행으로 자리를 옮기자 마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은행 실적은 지지부진하였고 여러 가지 지표가 내리막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IR(Investor Relations)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한미은행은 지주회사인 한미 파이낸셜 코퍼레이션(Hanmi Financial Corporation) HAFC라는 거래 코드로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한미 파이낸셜을 매입하는 투자자들은 중소형주인 스몰 (small cap) 투자하는 펀드들이 대부분입니다. S박사는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 보스턴 등지로 스몰 투자 펀드 매니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요즈음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IR 주로 투자자와 1:1 만나서 미팅을 하였습니다. 스몰 투자 펀드 매니저들은 경력이 짧은 새내기 펀드 매니저부터 오랜 경력을 가진 스몰 전문 고참 매니저까지 다양한 경력을 가진 펀드 매니저들입니다. 당시 이미 60대에 들어선 S 박사의 눈에는 나이가 많아야 40 후반, 기껏해야 50 정도 밖에 되어 보이는 펀드 매니저들, 또는 그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펀드 매니저들을 조금은 얕잡아 보았던 것만 같습니다. 당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펀드 매니저들이 질문을 하면 S박사는 질문에 답을 하기 보다는 펀드 매니저들이 주식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던가 그들의 생각이 되었다는 것을 시정해 주고 가르치려 들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미은행의 수익지표가 떨어지고 대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면 S박사는 펀드 매니저에게 그런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보지 말고 우리 은행의 성장 가능성을 봐야 한다. 앞으로 보다 펀드에서 대형 주식들을 상대로 투자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우리 은행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지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에 주목하여야 한다.’ 식으로 일장의 훈시를 하기 일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S박사는 스몰 펀드 매니저들은 대형 펀드 매니저로 가는 길목에서 연습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거나 혹은 대형주 펀드 매니저가 되지 못한 실패한 펀드 매니저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S박사의 그런 모습을 지켜본 펀드 매니저들은 S박사와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S박사가 IR 미팅을 하러 방문하겠다고 하면 기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펀드 매니저 자신들이 운용하는 펀드에 한미 파이낸셜을 포함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오히려 가지고 있던 물량도 처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한미 파이낸셜의 주가는 떨어졌습니다. 당시 제가 스몰 펀드 매니저에게 들은 내용 가운데 가지를 이야기하면, ‘S박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은행 경영에 관하여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행장으로 있는 한미은행의 주식은 파는 것이 당연하다.’ 것이었습니다.

S박사가 오기 직전의 한미은행은 서울에서 외국은행에 다니다가 국내은행으로 옮겨서 은행의 LA 지점장을 하였던 Y 씨였습니다.  Y씨는 IR미팅에서 펀드 매니저의 시각을 존중하고 그들의 비판을 귀담아 들으면서 자신의 시각과 펀드 매니저의 시각이 다른 부분에 대하여 메모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앞으로의 경영 개선 방향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펀드 매니저들과의 관계가 좋았었습니다. 과거 Y 씨와의 IR 미팅 경험이 있던 펀드 매니저들은 S 박사와의 IR 미팅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뀐 한미은행의 IR 방향을 발견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S 박사의 IR 미팅 진행 방법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2 년여의 세월이 지난 3 임기를 미쳐 채우지 못하고 S 박사가 한미은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스몰 펀드 매니저가 제게 하여준 이야기입니다;

한미은행에는 1982 창업 이래20 년의 기간 동안 쌓여온 자그마한 전통이 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이면 부서별, 지점별로 근처 빵집에서 도넛과 빵들을 사다가 부서의 직원들이 모두 둘러 앉아 조각 먹으며 커피를 마시면서 직원들 사이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이야기하기 보다는 조각, 커피 같이 나누면서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회식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용은 은행의 communication expense 지불하였습니다. 그런데 S 박사가 부임한 이후 경비 절감을 내세우며 금요일 아침의 모임을 없앴다고 합니다. 그런데 S박사는 일년에 2 한국 방문을 하였고 비용을 한미은행이 부담하기로 계약하였습니다. S박사는 한국으로 때에는 당연히 1등석 비행기를 탔습니다. S박사가 없앤 금요일 모임의 비용은 일년에 기껏해야 1십만 달러가 되지 않는 비용이었습니다. 오히려 S 박사 사람의 서울행 왕복 비행기 값만 수만 달러, 밖에 그의 여행비용을 더하면 십만 달러가 훌쩍 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적한 펀드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S박사는 에코노미스트로서는 훌륭한 에코노미스트일는지 모르겠으나 경영자로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은행의 경영자로서는 낙제점을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S박사는 웰스파고 은행을 다니기는 하였으나 은행의 경영에 참여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S박사에게 은행장의 역할을 기대한 한미은행의 주주와 이사회 이사들이 이러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 아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모든 분야에서 모든 일을 수는 없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옆에서 훈수를 때는 바둑이 9단이지만 막상 자신이 바둑돌을 쥐고 있으면 초단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KBO총재를 맡고 있는 허구연 총재가 우리나라 야구 해설가로서는 상당히 이름을 날려 왔습니다. 그런 허구연 총재도 자신이 직접 야구 감독으로 팀을 맡았을 때에는 처참하도록 연패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었습니다. (관련기사: `최연소 감독 허구연의 흑역사`→승률 273-mydaily.co.kr) 그는 감독으로서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한번 감독을 맡은 이후 다시는 어떤 팀도 그를 감독으로 청빙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야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가 야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면 KBO 총재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그는 감독으로서의 능력에서 남다르게 잘하는 것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S박사도 에코노미스트로서, 경제에 관한 지식과 식견은 훌륭하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은행 경영에 있어서는 결코 적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에게 적합한 일과 자리가 있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으며 맡은 일을 수행하도록 하여야 것입니다. 남들이 하는 일이 쉬워 보여도 그렇지만은 않을 있습니다. 분야별로 전문가가 따로 있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분야에 따라 전문가가 전문가로 인정받고 존중 받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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