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 2023. 10. 20.

jaykim1953 2023. 10. 20. 06:04

미국의 예금 보험 공사인 FDIC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failed bank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Failed bank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실패한’ 은행을 말합니다. 즉 은행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여 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면 ‘망한’ 은행입니다. 그 리스트를 보려면 FDIC 홈페이지의 Resources 칼럼에서 Resolutions칸으로 가면 ‘failed bank’를 볼 수 있습니다. (FDIC: Failed Bank List 참조) 여기에 가보면 금년 초에 한창 언론에 오르내리던 Silicon Valley Bank도 금년 3월 10일에 문을 닫았으며 First–Citizens Bank & Trust Company가 인수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리스트에는 567개의 은행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리스트에서 가장 오래 된 은행은 2000년 10월 13일 문을 닫은 Bank of Honolulu이고 이 은행은 Bank of the Orient가 인수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은행들이 망하고 다른 은행이 이를 인수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에서 발행한 자기앞수표를 ‘보증수표’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3. 15. 일광절약시간 참조) 그렇지만 이제는 은행도 망할 수 있고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학습되어서인지 더 이상 은행이 발행한 자기앞수표를 보증수표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 동기는 1997년의 외환, 경제위기였던 소위 'IMF' 사태입니다. 그 당시에 제일은행이 많은 직원을 정리해고하면서 외국의 PE(프라이빗 에퀴티, Private Equity)에 팔렸습니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은행이 망해서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은행도 망할 수가 있다는 것을 피부로 체험한 것은 1984년입니다. 제가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그 당시 미국내 자산 기준 서열 7위이던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 CINB (Continental Illinois National Bank)가 문을 닫게 되었고, 이 은행을 Bank of America 가 인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 당시의 미국내 은행 서열을 살펴보면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씨티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 체이스 맨하탄 은행이 부동의 톱 3 은행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매뉴팩츄어러스 하노버 트러스트 (Manufacturers Hannover Trust, 일명 Manny Hanny), 케미컬 은행 (Chemical Bank), 뱅커스 트러스트 (Bankers Trust)의 3개 은행이 있었고 바로 그 다음 순위가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었습니다. 그 밑으로는 페스트 내셔널 시카고 은행 (First National Bank of Chicago), 모건 개런티 트러스트 (Morgan Guaranty Trust), 시큐리티 패시픽(Security Pacific) 등이 톱 10 은행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체이스 맨하탄과 모건 개런티 트러스트가 합병하여 현재의 미국내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 은행이 되었고, 씨티 은행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제외하면 나머지 은행들은 모두 합병, 폐쇄 등으로 이름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1998년 네이션스 뱅크 (Nations Bank)에 합병되어 이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합병한 네이션스 뱅크 입장에서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일반 대중들에게 훨씬 더 어필한다는 것과 은행의 역사는 100년이 넘지만 그 동안 여러 은행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이름이 계속 바뀌어 왔고 네이션스 뱅크라는 이름은 실제로 1991년부터 사용되어 이름 자체의 역사가 매우 짧다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름을 사용한 역사가 길고 대중에게 이름이 더 잘 알려진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은행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매뉴팩츄어러스 하노버는 일찍이 케미컬 은행에 흡수되었고, 케미컬 은행은 다시 체이스 맨하탄에 흡수 합병되었습니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도이치 뱅크로 넘어 갔으며, 시큐리티 패시픽 은행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인수하였습니다. 퍼스트 내셔널 뱅크 오브 시카고는 뱅크 원 (Bank One)에 흡수되었고, 뱅크 원은 다시 JP모건 체이스에 흡수 합병되었습니다. 이렇게 흡수 합병이 이루어지면서 대형은행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자 1984년의 리스트에는 있지도 않던 웰스파고(Wells Fargo)은행이 지금은 미국의 4대 대형은행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에 열거한 1984년 당시의 대형 은행들이 흡수 합병을 통하여 이합집산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으나 대체로 경영상의 여러 문제점과 그로 인한 자산의 부실, 수익성 악화 등이었습니다.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경우에는 조금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 문을 닫기 불과 2년 전에 펜 스퀘어 은행 (Penn Square Bank)을 인수 합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인수한 펜 스퀘어 은행은 자산의 부실이 심하였다고 합니다.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에서는 펜 스퀘어 은행의 자산을 실사(實査, due diligence)하는 과정에서 부실 대출들을 일부 간과하였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 젔습니다. 그런데 이 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부실 대출들의 규모가 크고 그에 따른 부실이 심각하였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인수 2년 뒤에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존립을 위협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자산의 부실 그 자체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펜 스퀘어 은행도 지금의 표현을 빌면 failed bank였던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failed bank를 인수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부실 자산을 인수하게 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실 자산을 인수하면서 그 대가를 얼마나 지불하느냐는 것입니다. 부실자산을 전액 상각하여야 할 수준이라면 이 부실자산을 인수하면서 대가를 지불하여서는 안 됩니다. 즉, 이런 부실자산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부실자산으로부터 회수되는 원리금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은행에 더 이상 손실을 끼치지 않도록 자산을 인수하면서 대가를 지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산을 상각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자산 가치를 인정한 부실 자산에 대하여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렇지만 지불한 금액만큼 부실 자산의 원리금이 회수되지 않는다면 이는 회수 되지 않는 금액만큼 은행에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당시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에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 은행의 주요 임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존 라이틀 (John Lytle)이 펜 스퀘어 은행의 부실 대출을 실사하는 과정에서 50만 달러가 넘는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법원에서 3년 형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예금주들은 믿을 수 없는 은행이 되어 버린 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 런(bank run)이 일어났습니다. 이 당시 인출된 예금 금액은 100억 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은 유동성이 부족해지고 예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약 50만 달러의 뇌물로 인하여 자산 규모가 400억 달러가 넘는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 넘어가는 사태로 번지고 만 것입니다. 실제로 존 라이틀이 눈감아준 부실 대출은 약 2백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이 대출 전액이 손실 처리된다 하더라도 은행 전체가 흔들릴 수준의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존 라이틀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이 은행에 대한, 그리고 이 은행의 직원들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깨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예금 인출 사태가 야기되었고 급기야는 은행 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 은행이 부실화 되어 문을 닫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문을 닫은 은행 중에는 실제로 전반적인 부실을 겪었던 은행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작은 신뢰를 잃는 것에서 비롯되어 예금 인출로 이어지는 뱅크 런이 유발되면서 유동성이 부족해지고 결국에는 은행 문을 닫고 제3자에게 은행이 넘어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존 라이틀이 실형 선고를 받은 것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은 시카고를 대표하는 대형 은행이었습니다. 자산 기준으로 미국내에서 일곱 번째로 큰 은행이었고 수익성도 좋은 건실한 금융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4백 억 달러 자산 규모의 은행에서 2백만 달러가 조금 넘는 부실 자산을 눈 감아 주면서 존 라이틀이 받은 50만 달러 남짓의 뇌물로 인하여 일종의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금융기관이라는 곳은 여수신(與受信)을 업(業)으로 하는 곳입니다. 여수신이란 신용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용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신용을 잃게 되면 여수신이라는 업은 깨어지게 됩니다. 기본적인 업의 본질이 깨어지게 되면 그로 인한 파급효과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주변에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과 같은 사례가 또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소한 일, 작은 금액이라고 무심코 간과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엄청난 파급효과를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여수신을 업으로 하는 금융기관에서는 행여 신용이 깨어지는 일이 없도록 더욱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미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과거의 일이지만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사례는 지금도 잊지 말고 유의하여야 할 교훈입니다. 우리 주변에 행여라도 제2의 컨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 될 조짐을 보이는 금융기관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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