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정치는 생물’이라느니 혹은 ‘정치 9단’ 등의 용어를 들먹이며 정치라는 행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협치’, ‘상생의 정치’ 등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협치라는 미명 아래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상대방의 등에 비수를 꽂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난 뒤 여야가 합의하여 이태원 특별법을 처리하자마자, 야당측에서 무더기로 각종 특검을 들고 나섰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민주 '줄특검 몽니' 에 국가 경쟁력 법안 구석으로… 나라 미래는 안중 없나-newdaily.co.kr- 2024. 5. 6.) 이 기사를 보면서 문득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이 글은 어느 나이 든 사람이 독백처럼 한탄하듯 써 놓은 것입니다. 그 내용은;
정치인은 자기의 잘못을 절대 시인하면 안 되고, 남의 잘못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야 잘 된다.
순천자는 망하고 역천자는 흥한다.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스러워야 출세한다.
속이 검고 사기를 찰 쳐야 부자 된다.
탐욕이 지독하고 이기주의를 신봉해야 똑똑한 사람이다.
툭하면 화를 잘 내고 유치한 짓을 잘해야 권력을 잡는다.
사람이 많이 죽은 사고를 잘 이용하는 시체팔이들이 인기를 얻는다.
국민 혈세를 제 돈처럼 마구 펑펑 퍼주어야 권력을 잡고 유지한다.
이 글은 그 내용을 일일이 검증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나 ‘사람이 많이 죽은 사고를 이용한다’는 표현은 각별히 공감이 갑니다. 이들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 대하여 특별 검사를 고용하여 조사하자고 하는 이유는 진실을 찾아내서 교훈으로 삼겠다는 말은 명분뿐임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압니다. 무엇인가 이슈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여러 주변 사람들에게 일자리도 만들어 주고, 사건의 원인 분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임은 삼척동자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여야가 합의하여 처리한 이태원 특별법은 2 년 전 10월 말 할로윈 데이에 이태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파헤치자는 것입니다. 아마도 특검을 진행하면서 여러 공직자들이 불려 다니면서 혼이 나고 또 처벌을 받는 사람도 나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다 하지 못하여 사건을 크게 번지도록 한 책임을 물을 만한 공직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보다는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고 당일에 이태원에 모여 있던 사람들 자신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와 가깝게 지내는 옛 메릴 린치 뉴욕에서 함께 일하였던 동료가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때마침 2년 전 할로윈 데이 즈음에 서울에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왔습니다. 그는 친구 몇 사람과 함께 할로윈 데이에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 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곳에 꽉 들어찬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이는 골목에 사람들이 계속 밀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그 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다른 장소에서 저녁을 먹으며 때 마침 TV에 방영되는 이태원 사고 소식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태원 현장에 가 본 사람은 누구나 곧 사고가 나고야 말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순경 몇 사람이 열심히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보려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누구도 경찰의 통제를 따르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제 동료의 아들은 그 곳이 무법 천지의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언젠가 제 후배 C가 하였던 말이 있습니다. “The people in Itaewon that night would have never listened to the police, even if evacuation order was enforced.” (그날 밤 이태원에 있던 사람들은 경찰이 해산 명령을 내렸었다 하더라도 아마 아무도 그 명령을 안 따랐을 것입니다.) 이러한 C의 지적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3. 7. 7. 참조) 누군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자신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명령하는 것은 거의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기장(機長, captain)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흔들리니 자리에 앉아 안전 벨트를 매라고 하는 기장의 명령을 묵살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기장이 안전벨트 사인의 불을 켜고 자리에 앉으라는 기내 방송을 하였으나 마침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던 대통령은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관련기사- 특전사출신 文대통령, 난기류에 기체 떨려도 스탠딩간담회 계속-yna.co.kr- 2017. 6. 29.) 그리고 언론에서는 이를 특전사 출신 대통령의 무용담쯤으로 미화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기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즉시 비행기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앞장서서 기장의 명령을 묵살하였습니다. 그러니 보잘것없는 경찰쯤의 명령이야 당연히 무시하여도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태원에서 경찰들이 아무리 열심히 통제하려 하여도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통제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경찰의 통제는 따르면 안 되는 것인 양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이번 주말에라도 서울 시내에 집회가 있는 곳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집회 참석자들은 경찰의 통제를 가급적 따르지 않으려고 하고 어쩌다 경찰 통제에 따르더라도 마지 못해 억지로 따라주는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걸핏하면 경찰에게 험한 말을 하고, 밀치고, 몽둥이나 죽창 따위를 휘두릅니다. 그러다가 그에 대응하여 경찰이 곤봉을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즉시 경찰의 과잉 대응을 탓합니다.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는 사회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고 선진국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족해 보이는 경찰관 나부랭이로 보이더라도 질서 유지를 위하여 경찰이 통제할 때에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첫 발자국이 될 수 있습니다.
특검이 능사가 아닙니다. 정치인들부터 질서를 지키고, 통제에 따라야 합니다. 법을 어긴 것을 부끄러워하고 법을 지키는 모범을 보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날이 더 빨리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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