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Hearan Choi - 2024. 4. 26.

jaykim1953 2024. 4. 26. 06:00

우리나라에서는 축구와 함께 야구도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인기 있는 스포츠가 있기는 하지만 축구나 야구만큼의 인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미국에는 소위 빅 4라고 불리는 프로 스포츠가 있습니다. 프로 야구, 프로 풋볼 (아메리칸 풋볼), 프로 농구, 프로 아이스 하키의 4 종목입니다. 이들 스포츠는 각기 30여 개의 팀이 속해 있으며 각 지역, 리그 등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종목별로 훌륭한 선수들을 선발하여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에 헌액하기도 하고, 그 선수의 등번호를 해당 팀에서 영구 결번(retired number)으로 지정하여 그 선수 이후에는 그 선수와 같은 번호를 가지는 선수가 없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 불스 농구팀에는 마이클 조던을 기리며 그의 등번호인 23번이 영구 결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팀에는 23번의 등번호를 가진 선수가 있습니다.  현재 LA 레이커스의 수퍼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 선수의 등번호는 23번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프로 야구에서는 전 프로 구단에 동일하게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가 있습니다. 42번입니다. 미국의 프로 야구선수 가운데에는 42번 등번호를 가진 선수가 없습니다. 등번호 42 번은 1997년 모든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번호는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등록된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의 등번호였습니다. 이 선수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습니다. (https://baseballhall.org/hall-of-famers/robinson-jackie 참조)
재키 로빈슨은 1919년생입니다. 그가 미국 야구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7년이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1962년입니다. 처음 그가 그라운드에 나섰을 때에는 흑인과 함께 운동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일부 백인 선수들의 반발도 없지 않았으나 그의 뛰어난 야구 실력에 매료된 그의 동료들이 그와 어깨 동무하며 그라운드에 나서기도 하면서 어렵사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어쩌다가 실수를 범하면 그에 대한 비판은 더욱 혹독하였습니다. 각종 차별을 견디고 이겨내면서 그는 명예의 전당에까지 헌액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 그라운드에서 흑인 야구 선수로 발을 들여 놓은 이후 그의 후배 흑인 선수들이 하나 둘 그의 뒤를 이었고, 이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흑인 선수들이 미국 스포츠계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5일은 미국 메이저 리그가 지정한 재키 로빈슨 데이입니다.  이 날은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 리그의 무대에 처음으로 출전한 날입니다. 이 날을 기려서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한 것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그만큼 미국의 야구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는 미국 스포츠 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흑인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파이오니어(pioneer)였습니다.
재키 로빈슨은 혹독한 인종 차별 속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명예의 전당에까지 헌액된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훌륭한 선수였기에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인종 차별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처음 출전하였던 캐스린 스윗처 (금요일 모닝커피-2018. 10. 12. 참조)도 있었고, 여성들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미국의 하원의원으로 당당하게 당선되어 첫 여성 정치인이 되었던 쟈넷 랜킨 (금요일 모닝커피-2021. 3. 12. 참조)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시련 속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차별의 벽을 깬 선구자들이었습니다.
재키 로빈슨이나 캐스린 스윗처 또는 쟈냇 랜킨만은 못할는지 모르나 제가 아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의 선구자가 있습니다. 그녀도 여자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 여성입니다. 그녀의 허락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감히 그녀의 이름을 밝히고자 합니다. “Hearan Choi”입니다. 추측컨데 한국 이름은 “최혜란”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제가 미국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던 시절인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聯準, Federal Reserve)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업무는 외환 시장의 동향을 관찰, 분석하여 연준이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외환 딜러였습니다. 연준은 일반 은행과는 달리 연준과 외환 거래, 또는 자금 거래를 할 수 있는 대리인(Agent) 역할을 하는 은행들을 미리 지정하여 놓습니다. 그리고 시장 개입을 할 때에는 지정 은행들을 통하여 외환 거래 또는 자금 거래를 하게 됩니다. 외환 거래를 통하여 외국환을 직접 사고 파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단기 (주로 하루만에 사고 파는 overnight) 스왑(swap)거래를 많이 합니다. 또는 자금 거래로서 거래 당일에 채권을 팔았다가 다음 날에 되사는 repurchase 거래, 일명 Repo, 또는 그 반대로 당일에 채권을 샀다가 다음 날 되파는 matched sale, 일명 Reverse Repo 거래를 합니다. Repo 거래를 하게 되면 Fed가 채권을 팔면서 당일에 시장에 있는 유동성을 거두어 들이는 효과가 나므로 단기 이자율이 상승하고 외환 시장에서는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게 됩니다. 그 반대로 matched sale 거래를 하게 되면 거래 당일 Fed 가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해 들이면서 유동성을 공급하게 되어 단기 이자율이 떨어지고 외환 시장에서 미국 달러 화의 환율은 하락합니다.
제가 미국의 LA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던 시절 어느 날 브로커 한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제게 “Hearan Choi is in the market.” (헤란 초이가 시장에 들어와 있다.)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Hearan Choi”가 누구인지 몰라서 브로커에게 “Hearan Choi”가 누구인지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브로커는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Hearan Choi”가 시장에 떴다는 것은 Fed 가 조만간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시장이 갑자기 요동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저에게 한가하게 “Hearan Choi”가 누구인지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그 브로커는 제게 다시 와서 “Hearan Choi”가 누구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Hearan Choi는 Fed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는 첫 한국 여성이다” 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Hearan Choi”는 미국의 외환, 자금 시장에 공포의 존재였습니다. 그녀가 뜨면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그녀의 다음 행동이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하곤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0 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가 그 당시에 하던 일은 지금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도 아마 지금은 은퇴하여 Fed를 떠나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당시 저는 미국의 서부 LA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녀는 뉴욕에서 근무하고 있어 서로 얼굴을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한낱 상업은행의 외환 딜러가 감히 Fed의 외환 딜러를 만나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외환, 자금 시장을 호령하는 Fed의 외환 딜러가 한국 여성이라는 것에 저 혼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도 또 한 분야의 선구자- pioneer 였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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