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야구 선수 김주원 - 2025. 8. 22.

jaykim1953 2025. 8. 22. 06:07

요즈음 적지 않은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이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정후, 한국 선수 첫 두자릿수 3루타-ichannela.com- 2025. 8. 15.) 메이저리그에 한국 선수가 진출한 건 1994년 박찬호가 최초라고 합니다. 그 뒤로도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대다수는 투수들이었습니다. 김병현, 김선우 등이 있었고, 마이너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도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유제국, 이대은, 송승준 등 많은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 리그의 원대한 꿈을 안고 미국으로 향하였으나 마이너 리그의 경험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이너 리그에서 내일의 큰 꿈을 꾸면서 땀에 젖은 훈련을 계속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타자로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였던 선수로는 2002년 최희섭 선수가 첫 발을 디뎠습니다. 그 후 추신수 선수가 2005년에 뒤를 이었고, 2015년의 강정호 선수 이후로는 타자들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박병호, 이대호, 최지만, 김현수(이상 2016년), 황재균(2017년), 김하성, 박효준(이상 2021년), 배지환(2022년), 이정후(2024년), 김혜성(2025년) 선수 등이 줄줄이 빅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야구 선수들에게는 미국의 메이저 리그는 꿈의 무대입니다. 과거에는 일본의 프로 야구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초 백인천 선수가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입단하자마자 일본의 프로 야구 토에이 (東映) 플라이어즈에 스카우트 되었었고, 이원국 선수는 196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스카우트 되어 일본으로 건너 갔다가 1968년 미국의 마이너 리그로 진출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에르네스토 카를로스- 2015. 5. 22. 참조) 그리고 1980년 박철순 선수가 미국의 밀워키 브루어즈(Milwaukee Brewers)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 입단하였고 (관련기사: 박철순 미 프로야구 입단- 1980년 1월 29일- 경향신문) 2년 후인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우리나라의 OB베어즈 팀으로 돌아와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야구 선수들에게는 미국의 프로 야구, 특히나 메이저 리그는 꿈의 무대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의 메이저 리그 구단에서 또 다시 눈여겨 보는 선수가 한 사람 있다고 합니다. NC 다이노스의 유격수인 김주원 선수입니다. (관련기사: NC 김주원, 뉴욕 메츠 스턴스 앞에서 3안타- spochoon.com- 2025. 8. 15.) 뉴욕 메츠 구단에서 이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주원 선수)
 
김주원 선수(위 사진 참조)는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저는 김주원 선수를 볼 때마다 예전에 축구 국가 대표 풀 백 최종덕 선수가 생각이 납니다.
 

(故 최종덕 선수)
 
최종덕 선수는 1954년 생으로 충남 서산군 해미읍 출신입니다. 해미 중학교를 1년 다니고 난 후에 서울의 중앙중학교에 스카우트되어 다시 1학년을 다니면서 또래보다 1년 늦어졌습니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풀 백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프리 킥의 달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지난 2022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실물을 보면 김주원 선수와 최종덕 선수는 하관이 각지고 햇볕에 검게 그을린 건강한 모습이 닮아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종덕 선수는 성실한 선수였고, 제가 듣기로는 김주원 선수도 매우 성실한 선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두 선수는 인상도 착하고 미남형의 얼굴에 건강미를 구비한 성실한 운동선수입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타고난 운동 재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타고난 재능에 더하여 엄청난 훈련과 연습만이 그들의 실력을 완성하여 줍니다. 과거 최종덕 선수는 성실한 연습 벌레였습니다. 그 보다 더 열심히 스스로를 훈련하는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에 그는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되었고, 후에 축구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도 가능하였습니다.
김주원 선수도 성실한 선수라고 합니다. 그도 이미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의 성실함이 지속되면 미국의 메이저 리그라는 커다란 꿈의 무대가 그의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실함은 스포츠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통하는 덕목입니다.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면 제게는 저와 함께 BOA 서울 지점에 입행하였던 L이 생각납니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장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어서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는 그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BOA 서울지점에 20년을 근무하였으며, 근무하는 동안 그의 어머니의 집과 형님의 집을 장만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은행에서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자금분야의 총책임자 자리까지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성실함은 외부에도 잘 알려져 그가 BOA에서 명예 퇴직하자 바로 정부 투자 기관에서 그를 재무담당 특별 고문으로 영입하였습니다. L은 그 곳에서 10 여 년을 더 일하였습니다. 비록 장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성실함은 그가 BOA라는 외국은행에서 일할 때에는 물론 그 후 정부 투자 기관에서 일할 때에도 늘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습니다.
금융계에서의 L도 성실함을 바탕으로 그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고 최종덕 선수도 성실함으로 국가대표뿐 아니라 지도자 경력을 잘 수행하였습니다. 이제 김주원 선수도 성실함으로 그의 앞 날이 더욱 밝게 빛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