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2026. 5. 1.

jaykim1953 2026. 5. 1. 06:00

오늘은 조금은 개인적인 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얼마전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발견한 노래입니다. 제목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입니다. (유튜브-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알리 참조) 이미 10년 전에 TV에 방영된 것을 유튜브를 통하여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어렸을 적에 라디오에서 방송한 연속극 ‘남(南)과 북(北)’의 주제가(主題歌)입니다. 그 당시에는 TV 공급이 미미하였고 라디오에서 연속극을 방송하였습니다. 화면을 보낼 수 없으니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성우들이 각기 독특한 목소리로 배역을 표현하고 효과음으로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연속극의 내용은 북한군 장교의 부인이 전쟁 중에 아들 하나를 데리고 월남하여 어렵사리 살아가며, 국군 병원에 간호원으로 취업을 합니다. 그런데 전쟁 통에 여자 혼자 아들을 데리고 사는 것이 녹록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마침 부상을 치료 받던 국군 장교와 사랑이 싹트면서 국군 장교의 도움으로 생활이 안정되고 그와 결혼하여 살림을 차린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국군 장교는 품성이 착하여서 주인공 여자가 데리고 월남한 그의 아들도 잘 돌봐 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북한군 장교 한 사람이 귀순하여 북한군의 고급 작전 정보를 국군에게 건내 줍니다. 그리고는 자신보다 먼저 남쪽으로 귀순한 자신의 부인을 찾아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북한군이 찾고 있는 그의 부인이 얄궂게도 그의 귀순을 받아준 부대의 중대장 부인이 되어 있는 여주인공 간호원입니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이 스토리는 실화를 배경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 드라마의 작가 한운사 선생은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젠가 어린 시절 제가 저희 집 앞 이발소에 갔을 때에 마침 남과 북 연속극의 재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녁 시간에 라디오 연속극을 방송하고 낮 시간에 다시 재방송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그 이발소에는 주인과 주인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월남한 이북 출신이었습니다. 이 연속극을 열심히 들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제 기억에 그 부인은 거의 눈물을 흘리며 여주인공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여자 혼자 낯선 남쪽에 내려와 얼마나 살아 가기 힘들었겠느냐며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국군 장교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발소의 주인 남자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편이 있는 여자가 불과 1 년도 안 되는 시간에 새로운 남자와 살림을 차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면 주인 부부의 이 라디오 연속극을 둘러싼 논쟁을 종종 들어야만 했습니다. 남편과 이런 논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발소의 여주인은 아마도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발소 남자 주인이 부인과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자기 부인이 눈물 흘리는 것을 예방하는 지혜였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지난 1983년 KBS-TV에서 이산 가족 찾기를 하면서 다시 한번 크게 히트하게 됩니다. 이산 가족 찾기의 취지가 한국 전쟁 전후로 흩어진 가족을 찾는 것이다 보니 남과 북을 사이에 두고 흩어진 가족 이야기를 노래한 이 곡이 이 프로그램에서 매일 방송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가족의 신상을 설명하면서 ‘누가 이 사람을 모르니사요?’라고 묻는 것이 이 노래와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저도 사실은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이 노래를 자주 들어보게 됩니다. 제가 이 노래를 들으며 서글픈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저의 어머니도 이북에서 월남한 이산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원산의 대지주(大地主)셨다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7남매 가운데 막내셨고, 해방 직후에는 서울에서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교편을 잡고 계셨습니다. 1948년 결혼하셨고, 그 때부터 이북에 있는 가족들과는 연락이 원활치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중에 형제분들 가운데 오빠 세 분이 월남하셨고, 그 이전부터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계셨던 바로 위 언니- 저의 세째 이모님-과 저의 어머니까지 5 남매와 그 식구들은 남한에, 나머지 가족은 이북에 계시는 이산 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대지주라는 신분으로 인하여 북한 정권 아래에서 말 못할 고초를 겪으셨다고 합니다. 집과 땅을 다 뺏기고 머슴들이 기거하던 뒷 채에 겨우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저의 외할아버지께서는 걸핏하면 여러 사람들 앞에 끌려 나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비판하고 반성하도록 강요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몇 다리 건너 전해 들을 때마가 저의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시곤 하였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제게 직접 손으로 적으신 두 장의 쪽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저의 외갓집 주소입니다. (아래 사진 참조)

 
일제 시대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 번호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께서는 ‘홍관청’이라 불리셨다고 합니다. ‘관청’이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곳, 고을에서 제일 높은 공공기관이라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제일 신망 있고 학식이 있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일종의 별칭이었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적어 주신 주소- 덕원군 적전면 송중리 243번지가 지금의 북한 행정구역에서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북한이 모든 행정구역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심지어는 원산이 과거 해방 이전에는 함경남도에 속하였으나 이제는 강원도의 도시 원산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또 한 장의 쪽지에는 저희 어머니 7 남매의 이름과 배우자 이름, 그 후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제게 부탁하신 말씀은, “나는 이제 가망이 없고, 혹시라도 너나, 네 아들, 네 손자라도 북한에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내 고향이 어떻게 되었는지 꼭 한 번 가서 봐 주렴. 그리고 내 언니들, 그 후손들을 찾아볼 수 있으면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찾아보아라.”였습니다.
저는 이따금 TV에서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봅니다. 그들도 자유를 찾아서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왔지만 아련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곤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어려서 유복하게 자라셨다고 하니 더욱 더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 것입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노래를 들으며 오늘은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북에 계신 부모님, 언니들과 그 가족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많이 그리우셨을 것입니다.